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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의료·건강

의사 찾아 ‘서울행’…‘5분 진료’ 위해 기차 타는 지방 환자들

등록 2014-12-14 16:06수정 2014-12-14 22:14

[전공의 빈익빈 부익부 실태]
지방 비인기 진료과 인력 태부족
비뇨기과는 8년째 미달 ‘구인난’
환자들 ‘울며 겨자 먹기’ 서울행
“하루 통째 투자…교통비 15만원”
10일 오전 서울 종로구 연건동 서울대병원 비뇨기과 진료실 앞에서 환자들이 치료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탁기형 선임기자 <A href="mailto:khtak@hani.co.kr">khtak@hani.co.kr</A>
10일 오전 서울 종로구 연건동 서울대병원 비뇨기과 진료실 앞에서 환자들이 치료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탁기형 선임기자 khtak@hani.co.kr
“4년 전 전립선암 진단을 받았는데 충남 예산에는 수술을 할 병원이 없었어요. 천안의 대학병원이 그나마 가깝긴 하지만 기왕 움직이는 거 더 믿을 만한 서울대병원에서 수술을 받았죠. 오늘은 암이 재발하거나 다른 후유증은 없는지 검사하려고 왔고요. 새벽부터 서둘러도 병원 일 보고 예산 집으로 돌아가려면 하루를 다 보내게 돼요. 솔직히 차비도 부담이 커요.”

지난 10일 서울대병원 비뇨기과 외래진료 대기실에서 만난 김아무개(71)씨는 암 수술 뒤 추적 관찰이 필요해 병원을 찾았다. 이틀 전에도 혈액과 소변 검사를 하느라 서울에 다녀갔다. 그는 예약 시간보다 30분 더 기다려 5분가량 진료를 받고 병원 문을 나섰다. 이렇듯 많은 환자가 ‘5분 진료’에 하루의 시간과 적잖은 돈을 들여야 한다.

환자들
충남 예산 김씨·전남 순천 김씨
수술할 병원 없어 ‘철새 환자’ 돼
수년째 서울 오가는 데 부담 커

김아무개씨도 2년째 이 병원 비뇨기과에서 외래진료를 받고 있다. 하반신 마비로 휠체어에 의지해야 하는 김씨를 보살피느라 늘 남편이 동행한다. 부부는 전남 순천시에 사는데, 서울을 한번 다녀가려면 교통비만 15만원이 더 든다. “병명은 알려줄 수 없어요”라며 손사래를 치던 김씨는 “순천 주변의 병원을 모두 다녀봤지만 치료가 잘 안돼 결국 서울대병원까지 왔다”고 말했다. 같은 병원 외과에서 5년 전 간암 수술을 받은 정아무개(59)씨는 강원도 철원에 거주한다. 암 수술 뒤 추적검사차 여섯달에 한번꼴로 승용차와 지하철을 이용해 2시간30분이 걸리는 이 병원을 오간다.

비수도권 환자의 서울 쏠림 현상이 가속화하고 있다. 첨단의료시스템, 많은 병상수 따위 수도권 상급종합병원의 강한 하드웨어만으로는 온전히 설명되지 않는 추세다. 전문가들은 맨 밑바닥에 의료 전문인력의 불균형이 자리잡고 있다고 진단한다. 몸은 힘들고 돈벌이는 안되는데 수술 위험은 높은 진료과를 전공의들이 기피하는데다, 그마저도 전문인력을 서울 등 수도권 병원이 대부분 흡수해 빚어진 결과라는 설명이다.

의사들
수술 도울 전공의 없어 서울행 권유
“몇달 일하다 힘들다고 그만둬”
대전 충남 충북 전북 강원 지원자 ‘0’

예컨대 비뇨기과 전공의가 모자란 비수도권 종합병원에선 방광암이나 신장암 수술처럼 까다로운 치료를 아예 포기하고 환자한테 서울행을 권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실제 지난해 비뇨기과는 전공의 92명 모집에 24명만 지원했다. 지원율 26.1%. 진료과 가운데 최하위다. 올해엔 정원을 87명으로 줄였는데도 지원율(33.3%, 29명)이 도 꼴찌다. 그나마 소수인 지원자가 서울 등 수도권에 몰려 몇몇 비수도권 대학병원엔 1년차 전공의가 한 명도 없다. 비뇨기과는 2008년 전공의 모집 정원을 처음으로 채우지 못하더니, 2012년엔 지원자가 정원의 절반 밑으로 떨어졌다. 요즘은 정원을 채운 병원을 찾기가 더 어렵다. “암이 많이 퍼진 방광암은 수술로 종양을 제거해도 소변을 모을 인공 방광을 만들어야 한다. 수술은 8시간 이상 걸릴 만큼 복잡하고 힘들다. 신장암 수술도 4시간 넘게 걸린다. 수술 뒤 입원환자를 돌볼 전공의도 턱없이 모자란다. 그러다보니 전공의나 전임의를 일부라도 확보한 서울 주요 병원에 환자를 보낼 수밖에 없다.” 호남의 한 대학병원 비뇨기과 교수의 고백이다. 건강보험 자료를 보면, 최근 3년간 서울 거주 신장암·방광암 환자가 각각 24%, 25%인데, 서울 소재 병원에서 치료받은 환자 비율은 54%와 44%나 됐다. 지방 환자의 절반가량이 서울행을 택했다는 뜻이다.

적은 인력으로 환자를 돌봐야 하는 비수도권 병원 전공의들의 고군분투는 눈물겹고 위태롭다. “우리 병원엔 비뇨기과 전공의가 4년차까지 연차별로 2명씩 모두 8명은 있어야 한다. 그런데 실제론 나 혼자뿐이다. 환자 20명을 혼자 돌봐야 해 병원에서 살다시피 한다. 지난해엔 전공의가 한 명 더 있었는데 몇달 일하다 힘들다며 그만뒀다.” 대전의 한 대학병원에서 비뇨기과 전공의 과정을 밟고 있는 한 의사의 말이다. 사정이 이러니 야간에 응급 상황이 발생하면 제대로 대처하기가 쉽지 않다.

병원들
돈벌이 안돼 환자 붙잡지 않아
“경영진은 천덕꾸러기로 여겨”
정원 8명인데 1명뿐인 병원도

병원으로선 비뇨기과 수술이 돈벌이가 되지 않아 굳이 환자를 붙잡을 이유가 없다. 이영구 대한비뇨기과학회 보험부회장은 “신장암이나 방광암 치료는 대부분 건강보험이 적용된다. 쉽게 말해 원가 이하로 보상이 되는 수술이라는 얘기다. 결국 병원 경영진이 비뇨기과를 천덕꾸러기로 여기게 된다”고 짚었다.

환자들의 서울 쏠림 현상이 개선될 조짐은 어디에도 없다. 반면 상황이 더 나빠지리라 예보하는 지표는 많다. 대전·충남·충북·전북·강원 등의 수련병원(보건복지부 장관의 지정을 받아 전공의를 수련시키는 병원)에서는 올해 비뇨기과 전공의를 단 한 명도 구하지 못했다. 서울을 포함한 수도권 병원이라고 형편이 나은 것도 아니다. 이른바 ‘빅5’ 병원 가운데 올해 비뇨기과 전공의 정원을 채운 곳은 한곳도 없다. 사상 최악의 구인난이다. 가톨릭중앙의료원은 6명 정원에 1명, 서울대병원 4명 모집에 1명, 서울아산병원 4명 모집에 2명, 삼성서울병원 3명 모집에 2명, 세브란스병원은 5명 모집에 2명이 지원했다. 건국대병원과 경희대병원은 한 명도 확보하지 못했다. 손환철 서울시보라매병원 비뇨기과 교수는 “긴급하게 대책을 마련하지 못하면 신장암·방광암 등 각종 비뇨기 질환 환자는 제때 수술을 받지 못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외과나 흉부외과 처지도 비뇨기과와 다르지 않다. 흉부외과는 2004년 이전부터 정원을 채우지 못하다 2006년부터는 지원율이 50% 밑을 맴돈다. 지난해 62.7%로 반등하더니 올해 다시 39.6%로 꼬꾸라졌다. 외과는 2007년 지원율이 80%대로 내려앉은 뒤 올해는 59%까지 떨어졌다. 외과 전공의를 12명 뽑으려던 서울대병원에 3명만 지원했을 정도다. 이 병원 정승용 외과 교수는 “전공의 지원율엔 의사의 수입을 좌지우지하는 정부 정책이 큰 영향을 끼친다. 원가도 보상받지 못하는 수술을 의사의 책임감만으로 견디라고 하기는 어렵다. 이를 계속 방치한 결과가 외과 기피 현상으로 나타나는 것”이라고 짚었다.

김양중 의료전문기자, 박수지 기자 himtra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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