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대기시간, 짧은 진료, 값비싼 비용에도 불구하고 무조건 큰 병원으로 몰리는 환자들로 인해 대학병원의 접수 창구는 늘 문전성시를 이룬다. 한겨레 자료 사진
소화불량이나 감기, 합병증이 없는 고혈압·당뇨 등 동네의원에서 진료해도 될 환자를 상급종합병원(이른바 ‘대학병원’)이 동네의원으로 돌려보내지 않고 상당수 진료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상급종합병원에서 진료를 받은 환자는 긴 대기시간과 교통비 등을 빼고도 진료비를 동네의원의 3배나 냈다. 이 때문에 건강보험 재정이 한해 1500억원이 더 쓰이는 것으로 추산됐다.
15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김용익 새정치민주연합 의원과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가 함께 펴낸 ‘의료전달체계 현황 분석 및 개선방안’ 보고서를 보면, 건강보험 통계를 분석한 결과 지난해 전국 43개 상급종합병원의 외래환자 가운데 가벼운 질환자의 비중이 평균 16%로 나타났다. 상급종합병원 외래환자 6명에 1명꼴로 가벼운 질환자인 셈이다.
이번 조사에서 상급종합병원은 가벼운 질환자 1천명당 1.6명만을 동네의원으로 회송한 것으로 나타났다. 회송률이 0.16%다. 43개 상급종합병원 가운데 단 한 명의 환자도 동네의원으로 회송하지 않은 병원이 18개(42%)에 이른다. ‘빅4’로 불리는 상위 4개 상급종합병원의 회송률은 삼성서울병원(0.798%), 서울아산병원(0.041%), 세브란스병원(0.021%), 서울대병원(0.016%) 등이었다. 연구팀은 상급종합병원을 찾은 가벼운 질환자를 동네의원에서 진료하면 건강보험에서 지난해에만 1482억원의 진료비를 덜 지출할 수 있었던 것으로 추산했다.
가벼운 질환은 감기나 소화불량을 비롯해 합병증이 없는 당뇨나 고혈압 등 52개 질환이다. 정부는 환자한테는 동네의원에서 진료를 받으라고 권고하고, 상급종합병원이 찾아온 환자를 동네의원으로 돌려보내면 회송수가로 환자 1명당 1만원을 지급한다.
이처럼 가벼운 질환자마저 대형병원에 몰려 동네의원은 몰락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전체 건강보험 급여비에서 동네의원이 차지하는 비중은 2003년 45.5%에서 2014년 27.5%로 급락했다. 그사이 입원 환자를 주로 진료해야 할 상급종합병원의 외래 수입 비중은 21.5%에서 31.3%로 높아졌다. 또 300병상 미만의 중소병원이 병상 수를 크게 늘려 병상 과잉 공급을 주도하고 있으며, 실제로 2009~2014년 의원은 환자 수가 0.8% 줄어든 반면 중소병원은 13.1% 증가했다. 김용익 의원은 “대형병원이 무분별하게 외래진료를 확장하고 동시에 동네의원과 기능이 중복되는 중소형병원이 병상을 크게 늘리고 있어 의료전달체계가 붕괴됐다. 당장은 300병상 미만의 중소병원의 신설을 제한해 의료전달체계 정상화의 단초를 열어야 불필요한 의료비 부담을 줄일 수 있다”고 짚었다.
김양중 의료전문기자
himtrai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