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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2.01 16:07 수정 : 2005.02.01 16:07

아이들은 태어날 때부터 유전자로 결정된 자기 나름의 기질이 있다. 어떤 아이는 수줍음이 많고, 어떤 아이는 사람에게 잘 다가온다. 먹고 자는 것이 규칙적인 아이가 있는 반면 매우 불규칙한 아이도 있다. 이처럼 아이가 가지고 태어나는 기질은 뇌의 원시적인 구조가 갖는 정보처리 양식이다.

뇌의 깊은 곳에 위치한 편도체는 그 구조의 하나로 위험에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생리적 반응을 일으키는 기관이다. 예를 들어 편도체는 자신보다 힘센 동물을 만났을 때 흥분돼 교감신경을 자극함으로서 도망갈 수 있도록 몸을 준비시킨다.

미국 하버드대학 캐건 교수의 연구를 보면 아이들 가운데 15%는 다른 아이들에 비해 매우 민감한 편도체를 가졌다고 한다. 이런 아이들은 작은 자극에도 쉽게 편도체가 흥분해 뒤로 물러나는 반응이 많다. 뿐만 아니라 평소에도 교감신경계의 활동 정도가 높아 심장도 빨리 뛰며 스트레스 호르몬도 많이 분비된다. 반면 다른 15%는 어지간한 자극에는 전혀 반응을 보이지 않는 낮은 편도체 반응성을 보이고 있다. 이들은 매우 활발하고 위험을 잘 느끼지 못한다.

이런 기질은 상당한 안정성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백일이 지난 아이의 배를 알코올 솜으로 문질러 보는 실험을 통해 아이의 기질을 추정할 수도 있다. 알코올 솜에 대해 심하게 반응하고 우는 아이는 점차 뇌의 오른쪽이 우세하게 발달한다. 뇌의 오른쪽은 감정 가운데 우울, 불안과 같은 부정적인 감정과 연결돼 있기에 이 아이들은 두려움이 많고 예민한 아이가 된다. 반면 알코올 솜의 자극에 몸을 움직이면서 재미있어 하는 아이들은 뇌의 왼쪽이 우세하게 발달해 적극적인 아이가 된다.

이런 두려움과 적극성은 그것만으로는 장·단점이 되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아이의 기질이 곧 성격은 아니기 때문이다. 성격은 뇌의 전체 영역, 특히 앞 쪽의 전두엽 부분이 관여한다. 전두엽의 발달에 오랜 시간이 필요하기에 성격 역시 상당한 시간에 걸쳐 형성된다. 물론 유전자에 의해 설정된 프로그램이 있긴 하지만 이의 적용 과정에서 경험이 많은 영향을 끼칠 수 있다. 환경의 영향은 아예 뇌의 한 조직인 변연계를 뒤흔들어 기질 자체를 변화 시킬 수도 있으며, 같은 기질이라도 전혀 다른 적응 방식이나 성격을 나타내게 한다.

오랜 기간의 추적 연구를 해 본 결과 적어도 40%가 자신이 가진 기질의 부정적인 면을 극복하고 긍정적인 면으로 기여하도록 변화할 수 있었다.

결국 기질이나 유전자는 그 자체로 운명을 결정하지 못한다. 기껏해야 특정한 성격으로 발전할 가능성을 높여 줄 뿐이다. 기질의 양쪽 끝에 있는 아이를 가진 부모라면 ‘왜 우리 아이가 하필이면’ 하고 다소 원망스러울 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게임이 다 끝난 것은 아니다. 어떤 기질도 긍정적인 성격의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 아이의 기질을 부모가 잘 알고 받아들여야 한다.

아이의 기질이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거부할 경우 아이는 자신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과 인식이 발달한다. 아이의 기질을 인정하고 기질의 긍정적인 면을 살려 주면서 조화로운 성격으로 발전하도록 부모가 청사진을 그릴 수 있다면 더 이상 유전자는 횡포를 부리지 못할 것이다.


서천석 서울대병원 소아정신과 임상강사 soliber@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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