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양중 의료전문기자
김양중의건강과사회
1998년 의대 본과 4학년 때의 일이다. 당시 4학년은 이른바 ‘마이너’라 불리는 피부과, 성형외과, 안과, 흉부외과 등을 돌면서 실습을 했다. 치료방사선과(현 방사선종양학과)도 그 가운데 한 곳이다. 이 과에서 실습을 하고 있는데, 당시 정보에 아주 빠른 친구가 “앞으로 치료방사선과에 지원할 생각은 마라”고 귀띔했다. 그의 설명은 ‘글리벡’이라는 항암제가 곧 시판돼 암은 정복될 테니, 방사선으로 암을 치료하는 치료방사선과는 없어진다는 것이다. 지금 돌이켜보면 과장된 설명이지만, 당시에는 귀가 솔깃했다.
글리벡은 2001년 미국 등에서 사용되기 시작했다. 우리나라에서도 2003년 초부터 허가를 받아 쓰이고 있다. 그러나 아직 ‘기적의 항암제’라는 이름에 걸맞은 치료효과를 내지는 못하고 있다. 지금은 만성백혈병, 위장관기저암 등 일부 암에만 사용되고 있다. 전립선암, 일부 폐암 등에는 임상시험 중이다.
“암은 끝났다”는 소문까지 있었지만, 지금까지 밝혀진 실상은 과장된 소문과는 달랐다. 방사선종양학과도 건재하며, 방사선은 여전히 여러 암의 치료에 두루 쓰이고 있다.
의학 영역에서 치료 기술의 발전은 글리벡과 같은 사례가 매우 많다. 실험실 수준의 연구 단계에서는 질병 정복이라는 희망을 갖게 하지만, 아무런 성과를 내지 못하는 경우가 더 많다. 때문에 기초 단계의 결과를 너무 과장하는 것은 위험하다.
최근 2005년 논문 자체의 진위까지 재검증해야 한다는 지적을 받고 있는 황우석 서울대 교수팀의 체세포 복제 배아줄기세포 연구도 마찬가지다. 겨우 체세포 복제 배아줄기세포를 확립한 기초 단계에 불과하다. 치료 효과를 확인하는 임상시험조차 아직 이뤄지지 않았다. 희귀·난치 질환 치료의 잠재력이야 가질 수 있지만, 아직은 가야 할 길이 너무 멀다. 안전성과 효과성 측면에서 냉정하게 여러 검증을 거쳐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이에 희망을 걸고 있는 희귀·난치 질환자들을 우롱하는 꼴이 될 수 있다.
황 교수팀의 연구라고 해서 검증의 성역이 될 수 없다. 과학은 검증에 검증을 거치면서 발전하기 때문이다. 최근 서울대를 중심으로 젊은 과학자들이 스스로 나서서 황 교수 논문의 검증을 요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또한 한국의 과학계가 살아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김양중 의료전문기자·의사 himtra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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