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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의료·건강

건보 흔드는 의료 영리화 신호탄…‘뱀파이어 효과’ 우려

등록 2018-12-05 21:11수정 2018-12-06 14:50

내국인 이용 엄격 금지한다지만
운영난 땐 내국인 진료도 요구
실제 2016년 제주도 홍보 자료엔
“내국인도 진료 받을 수 있다”

상업적 진료행태 일반병원 확산
의료비 올라가 건보체계 흔들어
의료 공공성 악화·양극화 우려
원희룡 제주도지사가 국내 첫 영리병원인 녹지국제병원 개설을 조건부로 허가하기로 발표한 5일 오후 제주도청 앞에서 영리병원 개원 반대 기자회견을 마친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도청 진입을 시도하다 경비 관계자들에게 제지당하고 있다. 제주/연합뉴스
원희룡 제주도지사가 국내 첫 영리병원인 녹지국제병원 개설을 조건부로 허가하기로 발표한 5일 오후 제주도청 앞에서 영리병원 개원 반대 기자회견을 마친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도청 진입을 시도하다 경비 관계자들에게 제지당하고 있다. 제주/연합뉴스
‘국내 1호 영리병원’이 될 녹지국제병원을 둘러싼 찬반 논란이 거세다. 5일 ‘조건부 개설 허가’가 발표되자 대한의사협회와 보건의료단체 등은 “의료 영리화의 신호탄이 될 것”이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영리병원은 주식회사처럼 투자자를 모은 뒤 이윤을 배당할 수 있도록 하는 의료법인을 말한다. 현재 국내 민간병원은 모두 비영리 의료법인으로 병원에서 나오는 이익은 연구비·인건비 등 병원에 재투자해야 한다.

찬반 논리는 팽팽하게 맞선다. 영리병원을 찬성하는 쪽에서는 질 좋은 의료서비스, 외국인 환자 유치에 따른 의료산업 강화 등을 장점으로 내세운다. 반대 쪽은 공공의료체계 붕괴, 진료비 상승으로 인한 의료 양극화 등을 우려한다. 이를 의식해 원희룡 제주도지사는 내국인의 이용을 엄격히 금지하는 조건부 개설 허가이며, 이를 위반하면 허가를 취소하겠다고 강조했다.

문제는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외국인 의료관광객만 진료한다는 ‘조건’만으로 영리병원 확대를 막을 수 있느냐다. 김창엽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제주도가 지킬 수 없는 약속을 한 셈”이라며 “병원 운영이 어려워지면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내국인 진료도 허용해달라고 요구할 테고, 다른 의료 자본들이 영리병원 설립에 필요한 법·제도 변화를 요구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영리병원이 확대될 물꼬가 트이면서 한국 의료체계 전반이 무너질 가능성이 커졌다는 것이다.

실제 제주도는 2016년 발행한 자료에서 ‘녹지국제병원은 해외 의료관광객을 주로 대상으로 하지만 내국인도 진료를 받을 수 있다’고 홍보한 바 있다. 영리병원 개설 허가 근거가 되는 제주특별자치도특별법에도 외국인만 대상으로 한다는 조항은 없다. 그런데 의료법에는 ‘의료기관은 정당한 사유 없이 진료를 거부할 수 없다’고 돼 있어 사실상 내국인 진료를 허용한 것이나 다름없다고 보건의료단체들은 주장한다.

이런 불안감의 밑바닥에는 문재인 정부에 대한 불신이 깔려 있다. 보건복지부는 박근혜 정부 시절인 2015년 녹지국제병원 사업계획을 승인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 시절에 ‘병원의 영리법인 설립 금지’를 공약했다. 제주도 영리병원 설립에 반대한다는 뜻도 밝혔다. 우석균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공동대표는 “정권이 바뀌었는데도 보건복지부가 사업계획 승인 취소 등에 적극 나서지 않은 태도가 사실상 원희룡 지사를 묵인해준 셈”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복지부 관계자는 “이미 건립된 녹지국제병원을 지역 안에서 인수하는 방안 등을 이야기했으나 (제주도 쪽에서) 답이 없었다”며 “의료 영리화를 추진하지 않겠다는 게 일관된 입장”이라고 밝혔다.

첫 영리병원의 비싼 진료비 등 ‘나쁜 경영 행태’가 다른 병원에도 전파되는 ‘뱀파이어 효과’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다. 최규진 인하대 의대 교수는 “영리병원의 상업적인 진료 행태를 일반 병원이 따라가다 보면 소모적인 의료비가 더 늘어날 수 있고, 나아가 건강보험체계까지도 뒤흔들 수 있다”고 말했다. 영리병원은 진료비를 마음대로 정할 수 있다. 미국에서는 영리병원 진료비가 비영리병원보다 19%가량 비싸다. 영리병원은 인력도 적게 뽑는다. 녹지국제병원은 총 134명을 채용했는데 이 중 의사·간호사 등 의료인력은 58명에 그쳤다.

의료 양극화가 심해지리란 불안도 크다. 영리병원이 허용된 나라들의 공공의료기관 비중이 대부분 70% 이상인데 한국(5.4%)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최하위 수준이다. 김윤 서울대 의대 교수는 “국내 민간병원들의 상업성이 높다 보니, 영리병원 허가로 의료 공공성이 더 훼손되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이 더 클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황예랑 박현정 기자 yrcom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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