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오전 서울 마포구 마포구보건소 선별진료소에서 시민들이 검사를 받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정부·여당이 추진하고 있는 ‘원격의료’는 지난 10년간 찬반 논란을 거듭했으나 결론을 내리지 못하다가, 코로나19를 계기로 다시 재점화된 이슈다. 그동안 역대 정부에서도 원격의료 등을 앞세워 의료서비스 산업을 육성한다는 계획을 제시해왔으나, 대면진료가 원칙이라는 의료계의 강한 반발로 번번이 좌초된 바 있다. 보건의료단체들도 원격의료가 도입되면 공공성이 강화되어야 할 의료 분야에서 영리 추구가 심화될 수 있다는 이유로 반대해왔다.
현행 의료법은 의사와 환자가 직접 만나지 않고 진료 상담, 처방을 하는 원격의료를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있다. 2003년 의료법 개정을 통해 의료인 간 원격의료가 허용된 뒤, 의료인과 환자 간 원격의료를 도입하는 방안이 본격 추진된 것은 이명박 정부 들어서다. 하지만 당시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과 의사협회 등의 반발로 무산되고, 의료법 개정이 필요하지 않은 시범사업만 여러 차례 시행됐다.
최근 다시 원격의료 도입 논의가 불붙게 된 데는 코로나19의 영향이 컸다. 지난 2월 정부가 병원 내 감염 확산 우려로 인해 일반 환자들의 병원 출입을 줄이기 위해, 한시적으로 만성질환자 등에 한정해 비대면 진료를 허용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비대면 진료를 통해 전화상담·처방을 받은 건수는 26만건에 이른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가 집계한 코로나19 전화상담·처방 현황(2월24일~5월10일)을 보면, 전체 상담·처방 26만2121건 중 11만995건(42.3%)이 의원급에서, 11만6993건(44.3%)이 종합병원과 상급종합병원에서 이뤄졌다. 김연명 청와대 사회수석이 원격의료가 도입되더라도 대형병원 쏠림 현상이 심해지지 않을 것이란 취지의 발언을 한 것도 이런 집계를 참고한 것으로 보인다.
원격의료 도입 찬성 쪽에선 의료기관·서비스가 부족한 지역에 있는 만성질환자 등이 굳이 서울로 오지 않더라도 필요한 진료와 처방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도서·벽지 등의 주민이나 거동이 불편한 고령층이 우선 대상이 될 수 있다는 논리다. 하지만 의료계의 반발은 이번에도 만만치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최대집 대한의사협회 회장은 “환자에게 최선의 진료를 제공하려면 대면진료가 원칙”이라며 “환자의 의료 이용 편의성이나 비용 효과성 기준, 즉 경제적 목적으로 원격의료가 추진되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원격의료를 강행한다면 의사협회 차원에서 강경한 투쟁에 나서겠다는 것이다.
보건의료 전문가들도 원격의료 도입 추진에 우려가 적지 않다. 김창엽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외환위기 이후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아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된 통치자들이 (진보·보수 정권을 막론하고) 의료서비스의 산업화를 핵심 구호로 내세워온 측면이 있다”며 “원격의료 도입이 본격화하면 의료 분야에서 영리 추구 경향이 훨씬 더 강해질 뿐 아니라 의료서비스가 열악한 지역에 대한 공공의료 확충 노력도 물거품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시민사회단체 쪽에서도 “대형병원 중심의 의료기기 산업이 육성될 것으로 보이는데, 의료의 공공성 강화라는 목표 대신 특정 산업의 돈벌이로만 활용될 여지가 크다”며 반발한다.
최하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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