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오후 해외 입국자들이 버스를 타기 위해 대기하고 있다. 이날 코로나19 신규 확진자 46명 중 30명이 해외 유입 확진자로 집계됐다. 연합뉴스
코로나19 확진자가 다수 발생한 러시아 국적 냉동화물선이 입항 전 유증상자가 있다는 사실을 한국 검역당국에 알리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또 최근 러시아의 코로나19 확산세가 심상치 않았지만, 러시아 화물선은 ‘전자검역’이라는 간소화된 서류 절차만 거치면 들어올 수 있었다. 이런 검역 과정의 허점들이 대규모 접촉자 발생을 초래한 것으로 보인다.
23일 중앙방역대책본부(방대본)와 부산시 설명을 종합하면, 지난 16일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항을 출발해 21일 오전 8시 부산 감천항에 정박한 러시아 냉동화물선박 ‘아이스스트림’과 ‘아이스크리스탈’에서 각각 16명과 1명이 양성 판정을 받았다. 두 선박의 나머지 선원들(25명)과 선박에 탑승했거나 접촉한 하역·도선 노동자, 검역 절차 관계자 등 176명은 격리돼 진단검사를 받고 있다.
집단감염이 일어난 선박이 별다른 제한 없이 입항해 하역을 할 수 있었던 첫째 원인은, 아이스스트림호가 고열 등 의심 증세를 보이는 3명의 탑승 사실을 입항 전 한국 검역당국에 알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세계보건기구(WHO) 국제보건규칙에 따라 이 배가 검역당국에 제출한 ‘선박보건위생관리증명서’에는 선원들의 건강 상태가 제대로 적혀 있지 않았다. 권준욱 방대본 부본부장은 아이스스트림호 선사가 “검역법을 위반한 것이 확인되면 과태료 처분이 가능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말했다.
러시아가 지금껏 서류만 내면 되는 전자검역 대상이었던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러시아는 모스크바 등 전국 83개 지역에서 21일(현지시각) 기준 엿새째 하루 신규 확진자가 7천명대로 나왔고, 누적 확진자가 59만명이 넘어 세계에서 세번째로 많다. 그러나 검역관이 배에 직접 올라 탑승자의 감염 여부를 확인하는 ‘승선검역’ 대상국은 중국, 이란, 이탈리아 3곳뿐, 러시아는 여기에서 빠져 있다. 이 때문에 국립부산검역소는 전자검역만 마친 뒤 21일 아이스스트림호에 검역증을 발급했고, 곧이어 하역 작업이 진행되면서 대규모 접촉자가 생겼다. 권준욱 부본부장은 “늦은 감이 있는데, 러시아도 승선검역 대상으로 포함해 관리하겠다”고 말했다.
이날 부산에서는 22일 카자흐스탄과 파키스탄에서 각각 입국한 50대 남성과 30대 남성도 격리 중 이뤄진 진단검사에서 확진 판정을 받았다. 이처럼 입국 뒤 격리 중 확진되거나 검역 단계에서 확진되는 국외유입 사례는 최근 꾸준히 늘고 있다. 0시 기준 신규 확진자 46명 가운데서는 30명이 국외유입이었다. 이창준 중앙사고수습본부(중수본) 생활치료센터장은 “유일한 외국인 대상 생활치료센터인 경기 안성(우리은행연수원·정원 59명) 센터에 여유분이 10명 정도밖에 남지 않았고 이달 말엔 운영기한이 끝난다”며 “안성 센터가 문을 닫으면 중부권, 외국인 환자를 받을 수 있는 센터들을 추가로 개소할 준비를 하고 있다”고 밝혔다.
최하얀 김광수 김영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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