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4년 전남 신안군 한 염전에서 지적 장애인들을 감금하고 강제로 일을 시킨 사건이 드러나 사회적 충격을 줬다. 연합뉴스
지적장애 3급인 20대 ㄱ씨의 지인은 ㄱ씨가 어머니의 남자친구로부터 성추행을 당한 것을 알고 재작년 10월 지역장애인권익옹호기관에 ‘학대가 의심된다’고 신고했다. 그러나 권익옹호기관이 타인의 개입을 꺼리는 어머니를 설득해가며 ‘72시간 안 현장조사’ 업무 매뉴얼을 지키기엔 인력이 부족했다. 권익옹호기관이 피해자에게 연락을 시도한 것은 신고 접수로부터 6개월이나 지난 시점. 이때는 이미 피해자가 가출해 소재가 파악되지 않아 이 사건은 결국 ‘비학대 사례’로 종결됐다.
장애인 학대 의심 신고 접수 뒤 72시간 안 현장조사 원칙이 지켜지는 비율은 절반도 안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김성주 의원(더불어민주당)이 보건복지부로부터 제출받아 4일 공개한 자료를 보면, 지난해 장애인권익옹호기관에 신고가 접수된 뒤 조사가 이뤄진 1721건 가운데 3일 안에 현장조사가 이뤄진 경우는 842건(48.9%)에 그쳤다. 465건(27%)이 조사까지 3∼10일이 걸렸고, 265건(15.4%)은 10∼30일 걸렸으며, 149건(8.7%)은 1달을 넘겨서야 조사가 이뤄졌다. 가장 늦어졌던 사건의 경우, 신고 접수로부터 현장조사까지 9개월이 넘는 279일나 걸렸다.
조사 착수가 늦어지면 학대 여부를 살펴보고 피해자를 지원할 기회를 잃어버리는 경우가 많다. 지난해 조사가 지연된 끝에 ‘비학대 사례’로 종결된 경우는 74건에 이른다. 재작년에는 ㄱ씨 사례를 포함해 110건이 조사지연 끝에 비학대 사례로 종결됐다. 은종군 중앙장애인권익옹호기관 관장은 “조사가 지연되면 증거 확보가 어려워지고, 피해자가 빼돌려지거나 2차 가해가 이뤄지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조사 지연의 가장 큰 이유는 권익옹호기관의 조사·상담 인력 부족이다. 권익옹호기관은 장애인복지법을 근거로 2017년 전국 17개 시·도에 설치됐지만, 복지부와 중앙장애인권익옹호기관이 지난 7월 낸 ‘2019 장애인학대 현황’ 보고서를 보면 지역별 기관 상담원은 3명 수준에 그친다. 상담원 1명당 상담·지원 횟수는 연간 459건에 이른다. 국비·지방비로 안정적인 인건비가 지원되는 상담원은 지역별로 2명씩뿐이라, 경기도 등 일부 지역에선 추가 예산을 들여 1∼2명을 더 투입하고 있는 형편이다.
은종군 관장은 “지금 같은 상황이 이어지면 상담원 보호와 폭넓은 현장조사 등을 위한 2인 1조 현장조사 원칙이 지켜지기 어렵고, 염전이나 섬처럼 배를 타고 긴 시간 이동해야 하는 현장엔 더욱 신속대응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김성주 의원은 “학대발생 수, 관할 면적 등을 고려한 조사인력 추가 지원, 제도 개선에 정부가 적극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최하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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