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광장에 마련된 임시 코로나19 선별검사소에서 시민들이 검사를 받기 위해 길게 줄을 서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서울의 코로나19 확진자 ㄱ씨(64)가 병상 배정을 집에서 기다리다 지난 15일 숨진 것으로 나타났다. 고령층인데다 기저질환을 앓고 있는 코로나19 고위험군 환자인데도 바로 배정받지 못할 만큼 병상 부족 사태가 심각한 것이다. 정부는 병상 확충이 원활하게 이뤄지고 있다고 했지만, 실제 의료 현장에선 병상과 의료진을 제대로 갖추려면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진료 공백이 앞으로도 커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코로나19 사망자는 17일 0시 기준 22명이 더 늘어, 사망자 증가 곡선이 가팔라지고 있다.
서울시는 17일 정례브리핑에서 “기저질환이 있는 60대 환자가 지난 12일 확진 판정을 받은 뒤 사흘 만인 15일 병상 대기 중 숨졌다”고 밝혔다. 서울 동대문구의 설명에 따르면, ㄱ씨는 지난 4일 코로나19 진단검사에서 음성이 나왔다. 이후 11일 함께 사는 아내가 확진 판정을 받자, 다시 검사를 받고 이튿날 양성이 나왔다. 서울 파고다타운 음식점 관련 확진자로 분류된 경우였다.
ㄱ씨는 고혈압, 당뇨, 심부전증, 퇴행성 관절염 등 4가지 기저질환을 앓고 있었지만 입원 우선순위에서 밀렸다. 환자를 중증도에 따라 분류하고 병상을 배정하는 업무는 ‘수도권 코로나19 현장대응반’이 맡고 있는데, 확진 직후에는 발열 등이 없는 무증상이었고 당뇨약도 충분히 소지하고 있어 조절이 가능할 것이라는 판정을 받았다. 하지만 ㄱ씨는 14일 오전부터 가래에서 피가 나오고 기침이 심해지는 등 급격히 증세가 악화됐다. 동대문구 보건소 쪽은 “2차례나 긴급 병상 배정을 요청했으나 끝내 배정받지 못했다”고 밝혔다. 먼저 입원해 있던 아내가 연락이 끊긴 남편이 걱정돼 119에 신고한 뒤에야, 구급대가 자택을 방문해 숨진 ㄱ씨를 발견했다.
확진자가 폭증하는 서울과 경기 지역에서는 ㄱ씨와 같은 사례가 더 나올 수 있다는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위중증 환자로 분류되지 않았지만, 갑자기 증세가 악화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서울시는 이날 밤 늦게 입장문을 내어 “이달초부터 확진자 폭증에 따른 행정·의료시스템의 과부화로 병상 배정에 어려움이 있었다”고 밝혔다. 서울시의 병상 대기 확진자는 50명을 넘어섰고 생활치료센터 대기자도 200여명에 이른다. 경기도에서도 이날 0시 기준 병상을 배정받지 못한 환자는 299명, 생활치료센터 대기자도 155명이다.
상황은 더 심각해질 수 있다. 이날 0시 기준 신규 확진자는 1014명이다. 이틀 연속 1000명을 넘었고, 사망자도 22명이나 늘었다. 위중증 환자 수도 전날보다 16명이 늘어 242명에 이른다. 이상원 중앙방역대책본부 역학조사단장은 “위중증 환자 모니터링(관찰)에 잡히지 않은 사망자도 일부 있다”고 말했다. 수도권에 남은 중환자 치료병상(16일 기준)은 서울 1개, 경기 2개, 인천 1개뿐이다.
하지만 정부는 코로나19 환자 치료를 위한 병상 확충 계획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고 이날 밝혔다. 정부 발표와 일선 의료 현장에서의 준비 상황 간에 간극이 큰 셈이다. 의료 현장에선 병상을 어렵게 확충하더라도 의료인력 투입이 병행되지 않으면 무용지물이 된다는 우려도 나온다. 중앙보훈병원은 120개 감염병전담병상을 제공하기로 했지만, 인력 부족으로 일단 60개 병상만 운영할 계획이다. 근로복지공단 경기요양병원은 병상 160여개가 감염병전담병상으로 신규 지정될 예정이지만, 병원 쪽은 “의사가 3명, 간호사는 20명밖에 없어 중앙사고수습본부와 인력 지원 등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의료기관 혹은 의료진 감염이라는 변수도 고려해야 한다. 최근 서울 보라매병원에서는 인력 부족으로 코로나병동과 일반병동을 오가며 일하던 간호사가 확진된 뒤 의료진 11명이 자가격리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국립중앙의료원의 경우 최근 30개 중환자용 모듈병상을 전부 가동하기 위해 간호사 73명과 간호조무사 5명을 새로 채용했다. 그러나 이 가운데 중환자 치료 경험이 있는 이들은 34명뿐이다. 국립중앙의료원 관계자는 “나머지 간호사들은 3~4개월에 걸친 훈련을 우선 밟아야 하는 상황”이라며 “이때까지는 기존 인력으로 버텨야 해서 일반 입원병동 1개를 닫게 됐다”고 말했다.
최하얀 박태우 홍용덕 기자
chy@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