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바이러스가 세상에 처음 알려지고, 얼마 지나지 않은 2020년 1월 아이가 태어났다. 전염병에 감염에 예민한 산후조리원은 입소한 지 일주일도 안돼 모자동실을 금지했고, 면회객을 제한하기 시작했다. 코로나 직격탄을 맞은 셈이다. 조리원 퇴소 후 2주간 산후도우미 도움을 받으려 했지만, 이마저도 국내 첫 확진자 발생 뉴스를 접하고 서둘러 취소했다. 하필 첫 확진자 발생지역이 집에 오시기로 한 산후도우미가 거주하는 지역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확진자 1명 때문에 산후조리 서비스를 포기했다니…. 아쉬운 선택이긴 하나, 그때는 코로나 상황 자체가 생소했기에 정말로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출산휴가와 육아휴직 기간 내내 조리원에서의 2주를 제외하고는 육아에 관해 그 누구의 도움도 받지 못했다. 아이가 5개월이 될 무렵에야 양가 부모님을 뵐 수 있었다. 그마저도 코로나19 재확산 시기가 겹칠 때는 기약 없이 만남을 미뤄야 했다. 그러다가 육아휴직 1년의 기간이 끝나고, 복직의 시기가 찾아왔다. 어린이집에 아이를 보내고 적응시킬 시간은 한 달. 그 안에 아이가 잘 적응해야 마음편히 복직을 할 수 있다.
아이가 다닐 어린이집 운영시간은 8시30분~6시30분이었다. 이 시간과 각자 출퇴근 시간을 감안해, 우리 부부는 등원은 내가, 하원은 남편이 책임지기로 했다. 그런데 그 계획이 하루 만에 틀어졌다. 도저히 내가 등원시킬 수 있는 상황이 되지 않았다. 복직 첫날, 아이를 등원시킨 후 출근하니 10분 지각이었다. 다음 날 좀 더 잽싸게 움직였지만 역시나 5분 지각. 결국 등원도 남편이 도맡고 있다.
등하원을 책임지는 남편이라고 해서, 상황이 녹록한 것만은 아니다. 우리 아이는 어린이집에서 가장 일찍 등원하고, 가장 늦게 하원한다. 그런데도 종종 교통 상황이나 업무 등으로 남편의 퇴근이 늦어지는 날에는 아이의 하원시간이 6시30분보다도 더 늦어지곤 한다. 우리 아이 때문에 퇴근이 미뤄지는 선생님을 생각하면 미안할 뿐이다. 뒤늦게 알았다. 우리 아이가 입소한 이후부터 어린이집 선생님들이 출퇴근 시간을 조정해 아침 당번, 저녁 당번을 따로 정했다는 사실을. 선생님 한 분이 8시30분부터 오후 5시30분까지 근무하고, 다른 선생님들이 교대로 9시30분에 출근해 6시30분에 퇴근한다. 매주 선생님들끼리 일정을 조율해 우리 가족의 편의를 봐주고 있는 것이었다. 아이 한 명 때문에 어린이집 선생님들의 출퇴근 시스템이 바뀐 것이다.
아이의 담임 선생님은 정말로 우리 아이를 예뻐한다. 어린이수첩에 적힌 글들만 봐도 애정이 넘쳐난다. 우리 아이가 오늘은 어떤 말을 배웠고, 어떤 행동을 했는지, 얼마나 잘 해냈는지 내가 놓친 아이의 하루를 정성스레 적어주고 있다.
코로나 거리두기 4단계 격상으로 어린이집이 긴급 보육으로 전환됐을 때, 아이 담임 선생님은 내게 “워킹맘이신 거 알고 있다. 마음 편하게 아이를 보내시라”고 했다. 그 순간 깨달았다. 그녀도 어린이집과 유치원에 다니는 두 아이의 엄마인데, 정작 자기 자녀가 아닌 다른 아이들을 돌봐야 하는 처지인 것이다. 다행히 그녀는 집안 어르신 중 한 명이 아이들을 돌봐주고 있다고 했다.
재택근무에 사용하는 노트북 대신 고장난 노트북을 주니 키보드를 뽑으며 노는 아이
나는 사회적 거리두기 4단계 격상 이후 주 2회 재택근무를 하게 됐다. 주변을 보니, 대다수 워킹맘들이 재택근무를 해도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럴 수 없었다. 어린이집에서도 보육 허용인원에 따라 선생님들의 출근 날짜와 출퇴근 시간을 조정한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아마 아이의 담임 선생님도 코로나 4단계 같은 상황에서는 자녀들을 어린이집과 유치원에 맡기기보다는 본인이 재택근무를 하면서 가정보육을 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 마음을 알기에, 재택근무하는 날은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지 않았다. 아이가 밖에 나가자고 짜증을 내고, 노트북을 박살내고, 밥을 먹지 않고, 낮잠을 자지 않아 굉장히 곤란하고 힘들긴 했다. 하지만 4단계 거리두기 시행 취지에 따라 어린이집 밀집도를 낮추는데 기여하고 싶었다. 아이의 담임 선생님에게 단 하루라도 재택근무의 기회를 주고 싶었다.
‘공적 돌봄’ 혜택에서 늘 후순위로 밀리는 돌봄 노동자
어느 날 밤 아이의 담임 선생님에게 연락이 왔다. “내일 잠깐이라도 아이를 등원시켜 주세요.” 실은 그 다음날 재택근무라 아이를 집에서 볼 요량이었다. 선생님이 직접 전화한 이유는 어린이집에서 새로운 놀이를 할 계획인데 우리 아이가 정말 좋아할 놀이여서라고 했다. “말씀은 감사하지만 긴급보육 기간이니 가정보육할 수 있는 날은 최대한 가정보육하겠다”며 거절했다. 그랬더니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사실은 아이들 다 등원하고 있어요.”
많은 가정이 나처럼 정부의 긴급보육 방침 취지에 동의하고, 실천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가정보육이 가능하다면 최대한 어린이집 등원을 하지 않고 있을 줄 알았다. 착각이었다.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우리 아이만 일주일에 3번만 등원하는 것이었다. 더 놀라운 사실은 아이의 담임 선생님뿐 아니라 어린이집 어떤 선생님도 코로나 4단계라고 해서 재택근무를 하거나, 근무시간 단축 혜택을 보지 않고 있다는 점이었다.
어린이집 하원 후 집에 안 간다고 떼를 쓰는 아이
워킹맘이라고 날 배려해 주던 워킹맘인 아이 담임 선생님은 코로나 상황에서 정작 보육과 육아 측면에서 아무런 도움을 받지 못하고 있었다. 반면 나는 어떤가. 담임 선생님이 있었기에 이 힘든 (육아의) 시기를 헤쳐나가고 있다. 담임 선생님은 무엇으로 이 시련과 고통을 감내하고 있는 것일까. 집안 어르신이 자녀를 돌봐주는 걸 천운이라고 생각해야 하나.
그러고 보니, 우리가 간과한 것이 있다. 돌봄노동의 공적인 영역으로의 전환이라는 상징적인 의미인 어린이집, 정작 이 공간에서 일하는 이들이 겪는 돌봄은 공적인 영역이 아니었다. 사적 영역에서 그 자신 아니면 양가 부모님 등 그들의 가족이 책임지거나 해결하고 있음을 이제야 깨달았다.
마음이 복잡했다. 워킹맘, 워킹대디에 대한 직장 내 배려, 돌봄의 공적영역으로의 전환을 당연시하는 시대, 돌봄 종사자 역시 공적 영역의 돌봄 혜택을 받아야 마땅하다. 그런데도 이 문제는 무시되거나 간과되고 있다. 돌봄 종사자인 직장맘과 직장대디의 돌봄 문제 해결은 늘 다른 워킹맘과 워킹대디를 위해 후순위로 밀린다.
이건 보편적인 복지는 물론 형평성에도 어긋난다. 어떻게 하면 어린이집 선생님도 나처럼 누군가에게 기대어 단 하루만이라도 육아의 버거움에서 벗어나 조금은 여유롭게 보낼 수 있을까. 국공립 어린이집 확충, 경력직 보육교사의 처우 문제 해결, 교사 한 명당 아동비율 축소 등 당면한 현안에 대해 찾아보기 시작했다. 가장 시급한 건 보육교사들이 눈치 보지 않고 휴가를 쓰고, 재택근무를 가능하게 하는 인력 풀을 확보하는 것일 테다.
내가 오늘 하루도 어린이집 선생님들 덕분에 버틴 것처럼, 그들도 그들과 같은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 조금은 더 편한 마음으로 육아에 전념하는 하루를 확보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 같은 워킹맘들의 관심과 협조뿐 아니라 관련 규정이 마련되도록 정부에 지속적으로 요구할 필요가 있다. 덧붙여 어린이집 선생님들에 대한 노고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장여진 강서구노동복지센터 교육상담팀장
평등사회노동교육원(대표 단병호, 민주노총 지도위원 및 17대 민주노동당 국회의원)은 2011년 창립한 노동자 교육기관으로, 창립 10주년을 맞아 노동의 의미를 묻고 노동자들이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확인하는 기획전시 ‘힘展'을 10월 21일(목)부터 30일(토)까지 민주노총 서울본부 3층 교육장에서 진행합니다. 별도의 신청 없이 누구나 자유롭게 관람하실 수 있습니다. 많은 관심과 성원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