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총과 공공운수노조가 20일 오전 서울 중구 민주노총 교육장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노정교섭 실시와 공공기관운영법 개정을 촉구하고 있다. 참석자들은 현장에서 벌어지는 국제노동기구(ILO) 제소 사례를 증언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공공기관 노동자들의 실질적인 노동조건에 영향을 미치는 예산편성지침, 공공기관 경영성과평가 기준 마련 등에 있어 노동자가 참여해야 한다는 내용의 국제노동기구(ILO·노동기구) 권고를 받아든 노동자들이 정부에 대화와 교섭을 촉구하고 나섰다. 이번 권고가 인력감축, 자산 매각 등 공공부문에 대한 정부의 긴축 기조에 일정한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는 20일 ‘노정교섭 실시 및 공공기관운영법 개정 촉구 기자회견’을 열어 “공공기관 민영화, 직무성과급 임금체계 개편을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공공기관 혁신 가이드라인을 폐기하고, 노정(노동자-정부)교섭과 산업별 교섭을 제도화하라”고 요구했다. 노동기구가 한국 정부에 지난 18일(한국시간) “중앙정부 차원에서 발표된 지침이 공공기관의 단체교섭에 실질적으로 개입하지 않도록 지침 수립 과정에 공공기관 노동자를 대표하는 (노동조합 등) 단체가 완전하고 의미 있게 참여”할 것을 권고한 데 따른 것이다.
그동안 공공기관 노동자들은 각자 속한 기관과 교섭 했지만 실질적으로는 공공기관 경영평가, 예산편성지침이 정한 총인건비 등에 묶여 교섭 자체가 유명무실하다고 주장해 왔다. 이재강 공공운수노조 국민연금지부장은 “어제부터 국민연금 노동자들도 임금 및 단체 협상을 시작했지만 올해도 사측은 ‘기재부 경영지침에 어긋난다’, ‘기재부 혁신지침에 어긋난다’는 답변만 앵무새처럼 반복할 것”이라고 말했다. 노동기구의 권고처럼 노동 조건을 결정할 실질적인 권한이 결국 기획재정부가 만드는 공공기관 관련 지침에 있다는 의미다.
노동기구의 이번 권고를 정부가 실제 이행할 경우, 단순히 노동 조건 뿐만 아니라 공공부문에 대한 정부의 긴축 기조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강철 공공운수노조 공공기관사업본부장은 “윤석열 정부는 경영평가에서 사회적 가치 배점을 줄이고 재무 평가의 배점을 올리고, 공공기관 자산매각, 인력감축, 임금체계 변동을 노조와 단 한번도 협의 없이 추진해왔다”며 “이는 노동기구 권고에 어긋난 것”이라고 짚었다.
특히 정부는 그간 직무 성과급제, 임금 피크제 도입같은 민감한 노동 개편의 경우 정부의 입김이 닿는 공공기관을 주요 대상으로 삼아왔는데 이런 움직임에도 제동이 걸릴 수 있다. 강철 공공운수노조 공공기관 사업본부장은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극복하는 임금 체계 개편에 대해서는 노동자들도 반기지만 현재 정부는 기관(기업) 별로 임금체계 개편을 추진해 양극화 해소에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한다. 실제 노동시장 불평등을 줄일 임금 체계를 함께 이야기 하자고 요구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기재부는 전날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가이드라인이나 지침이지 우리가 (공공기관 교섭에) 개입하는 게 아니다. (노동기구가) 무슨 말을 해도 현재 크게 변화가 있을 상황이 아니다”라며 노동기구 권고에 선을 그었다. 이에 대해 이석 공공운수노조 법률원 변호사는 “노동기구는 정부에게 이번 권고와 관련해 지속적으로 보고할 것을 요청했고 이행되지 않는다면 같은 권고가 반복될 것”이라며 “세계 10위권의 경제 규모에 걸맞게 정부는 국제 규범을 준수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말했다.
방준호 기자
whoru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