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중구 민주노총 회의실에서 ‘대법원 판결에도 불법파견 지속, 강제전환 배치로 노동자를 극단적 선택으로 내몬 기아차 규탄 기자회견’이 열렸다. 김해정 기자
기아 화성공장 조립3공장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했던 노동자 ㄱ씨는 지난해 10월 대법원에서 동료 271명과 함께 기아가 자신을 불법 파견 받아 사용했다는 점을 인정받았다. 즉 불법 파견으로 일했던 기간과 현재 기아 정규직 노동자라는 점을 인정받은 것이다. 2011년 처음 ‘근로자 지위 확인 소송’을 시작하고 11년3개월 만이었다.
오랜 법정 다툼 끝에 정규직으로 인정받고도 ㄱ씨와 동료가 겪는 ‘차별’은 끝나지 않았다. 회사는 부품 공급 업무를 해왔던 ㄱ씨를 낯설고 노동강도가 센 조립 부서로 발령냈다. ㄱ씨는 지난 13일 이에 항의하며 극단적 선택을 시도했다. ㄱ씨는 18일 현재 병원에서 치료받고 있다.
ㄱ씨와 함께 대법원 판결을 받았던 동료들은 이날 기자회견을 열어, 인사 발령 문제 등을 두고 정규직 인정 이후에도 끝나지 않는 기아의 차별을 지적했다. 노사 분쟁을 조정하는 경기지방노동위원회(경기지노위)도 지난 5월 “이 사건 인사 발령은 부당하다”고 판단했다.
기자회견에 나온 노동자 증언과 경기지노위 판정서를 모아 보면, 기아는 정규직 인정을 받은 노동자들을 노동강도가 센 조립 부서로 강제 발령했다. 통상 불법 파견이 인정된 노동자는 원직 혹은 유사 업무로 배치되지만, 이들은 낯설고 강도 높은 업무에 놓인 것이다. ㄱ씨 동료 이상언씨는 “기아의 기존 단체협약상 조립 라인에는 신입사원이 배치된다”며 “우리는 불법 파견 인정으로 사실상 17~18년 근속을 인정받았는데 이런 점이 고려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기아 쪽은 일방적인 인사 발령이 “경영 판단 영역에 속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경기지노위는 “(새로 정규직으로 인정된) 근로자가 차지하는 비율이 1%도 채 되지 않는 점을 고려한다면 (인사 발령 때 노동자와 합의하는 것이) 사용자에게 회복할 수 없는 (경영상) 손해를 초래할 것으로 인정하기 어렵다”고 했다.
정규직 인정 당사자를 뺀 채 회사와 이들의 인사 배치를 합의한 노동조합의 한계도 경기지노위 판정서에 드러난다. 노조와 회사가 정규직으로 인정받은 노동자 인사를 두고 지난해 12월 “노사 관행에 따른다”고 합의했기 때문이다. 여기서 ‘관행’은 앞서 비정규직에서 정규직으로 특별 채용된 노동자들이 조립부에서 업무를 시작한 것 등을 의미한다. 법정 싸움을 거쳐 새로 정규직 인정을 받은 노동자는 상대적으로 업무 강도가 높은 조립부에서 일하고, 기존 정규직 노동자들은 좀 더 쉬운 공정으로 이동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든 셈이다. 금속노조 기아차지부는 <한겨레>에 “별다른 입장이 없다”고 말했다.
기아 쪽은 경기지노위의 판정에 불복하고 중앙노동위원회(중노위)에 재심을 청구했다. 회사가 중노위 판정에도 불복할 경우 또 긴 법정 다툼이 시작된다. ㄱ씨의 동료들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대법원 판결이 나와도, 지방노동위 판정이 나와도 기아 사용자 측은 아무런 처벌을 받고 있지 않다”며 “11년 만에 정규직 인정을 받았는데, (인사 발령 문제를 두고) 10년을 또다시 싸워야 할 상황”이라고 말했다.
김해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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