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업 중인 KTX여승무원들 합동문집 펴내
“오전 7시 50분/동대구로 향하는 KTX(케이티엑스)의 승강문이 닫히고/정적이 흐르던 그 시간/우리는 조용히 울었고/KTX는 그렇게 우리들의 눈앞에서 소리 없이 미끄러져 갔다//잘 다녀와/다음에 꼭 같이 갈게//2006년 4월 1일/만우절만큼이나 황당하고 어이없는/KTX 개통 2주년”(한유림 <잘 다녀와, KTX> 부분)
지난 3월 1일부터 파업투쟁을 벌여 오고 있는 KTX 여승무원들이 합동문집 <그대들을 희망의 이름으로 기억하리라>(갈무리)를 펴냈다. 한국철도공사의 직접고용을 요구하며 파업을 벌이고 있는 여승무원들은 지난 5월 15일 집단으로 정리해고됐다. 문집에는 ‘KTX 승무지부’ 이름으로 이철 한국철도공사 사장에게 보낸 편지와 여승무원 36명의 글이 실렸다. 뒷부분에는 이경자, 홍일선, 백무산, 김명환씨 등 문인 16명의 격려 글이 곁들여졌다.
“열차를 타는 시간이 늘어날수록 나의 기대와 꿈은 산산이 부서져 갔다. 그것은 마치 순식간에 정상으로 올라간 롤러코스터가 올라갈 때보다 더 빠르게 바닥을 향해 곤두박질치는 것 같았다. 꿈의 속도인 시속 3백 킬로미터로 말이다.”(윤선옥 )
초고속 열차 KTX의 승무원이 되었다는 기쁨과 자부심은 머지않아 환멸과 분노로 바뀌었다. 부당한 처우와 신분상의 불이익은 모두 그들이 철도공사 소속이 아닌 비정규직이기 때문이었다. 사복투쟁으로 시작된 싸움은 파업과 정리해고로 이어졌다. 그리고 기약할 수 없는 농성투쟁.
“가장 예쁘고 아름다워야 할 20대에 목청이 터져라 외치고 소리 지르고 울고, 10일이 넘는 단식투쟁으로 쓰러져 병원으로 후송되던 동지들의 모습. 그러나 그 모습은 세상 어느 누구보다도 아름다웠다.”(한아름 <신랑은 천리행군, 신부는 파업농성>)
그렇게 그들은 ‘동지’를 알게 됐고 “이제껏 보아 오지 못했던 세상의 이면들을 보며 현실을 직시하게 되었다.”(이혜정 <너무나도 서럽고 가슴 아팠다>)
“KTX 여승무원이 되고 나서/나는 껌을 씹지 않는다/컵라면도 통조림도 먹지 않는다/봉지 커피도 티백 보리차도/드링크도 탄산음료도 마시지 않는다/물티슈도 내프킨도 종이컵도/나무젓가락도 볼펜도 쓰지 않는다//(…)//한번 쓰고 버려지는 것들이/가여워서/눈물이 났다//(…)//KTX 여승무원이 되고서야 나는/이 세상이/한번 쓰고 버려지는 것들의/눈물이라는 걸 알았다/흐르고 넘쳐/자꾸자꾸 밀려오는/파도란 걸 알았다”(김명환 <계약직> 부분)
그러나 자신들의 싸움이 정당하다 믿으며 서로 격려하는 동지들, 전화와 문자로 격려를 아끼지 않는 가족들, 한밤중 컴컴한 농성장 마당에서 생일 케이크에 촛불을 밝히고 노래를 불러 주는 친구들이 있기에 이들은 외롭지 않다. 지나가는 KTX를 보면 어쩔 수 없이 눈물이 핑 돌지만 언젠가는 그 열차에 다시 타는 날이 있을 것을 믿는다. 그리고 그들은 이 시대 비정규직 노동자의 꽃 같은 상징으로서 싸움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2006년 우리의 희망은 어여쁜 누이들의 어깨 위에,/저 강철 레일 위에, 절망하지 말라/아 기억하자, 노동자는 언제나/깨어져서야 승리한다는, 사실을!”(백무산 <그대들을 희망의 이름으로 기억하리라> 부분)
최재봉 문학전문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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