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발적 비정규직 90%”…노동·경영계 ‘신뢰성 시비’
노사정위원회가 ‘비정규직 실태조사’를 해놓고도, 조사 결과를 두고 신뢰성 논란이 불거지면서 결국 발표하지 않기로 했다. 실태조사는 지난해 7월 시행된 비정규직법 후속대책 마련을 위한 핵심 의제 가운데 하나였다.
노사정위 최병훈 상임위원은 10일 “지난 4일 노사정 고위 간부가 참석하는 상무위원회 간사회의를 열어 ‘비정규직 실태조사 결과’를 내부 참고용으로만 활용하기로 했다”며 “결과 발표를 두고 한 달 가까이 노동계와 경영계 위원들이 팽팽하게 대립했지만 끝내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고 밝혔다.
노사정위 산하 비정규직법 후속대책위는 비정규직법의 입법 효과를 알아보기 위해 지난해 12월 노사가 각각 추천한 전문가로 티에프(TF)를 구성해 설문문항을 마련한 뒤, 한국리서치에 사업체 및 근로자 실태조사를 의뢰했다. 사업체 조사의 경우 통계청의 ‘사업체 기초통계조사’를 토대로 상용직과 임시직의 수가 100명이 넘는 사업장 1400곳을 대상으로 했고, 근로자 조사는 한국고용정보원의 ‘산업·직업별 고용구조 조사’에서 비정규직으로 분류된 표본집단 가운데 579명의 응답을 받았다.
문제는 ‘근로자 조사’에서 자발적으로 비정규직을 선택했다는 비율이 90% 가량 나온 데서 비롯됐다. 노동계와 공익위원들은 이것이 전체 조사의 신뢰성을 떨어뜨리는 결과라며 ‘사업체 조사’만 발표할 것을 요구했지만, 경영계 위원들은 이를 거부했다. 한 노동계 위원은 “다른 일자리를 찾을 수 없어 비정규직을 선택한 것인지 등 구체적인 부가 항목 없이 ‘자발적 선택’ 여부만 물은 것이어서 신뢰성이 없다”고 말했다.
애초 조사 설계가 부실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승택 한국노동연구원 박사(비정규직 실태조사 티에프팀장)는 “조사 기간이 3주밖에 안 됐고 심층 조사도 병행되지 못했다”며 “직업조사를 중심으로 하는 고용구조조사(OES)가 비정규직을 대변할 표본집단으로 적절치 않았던데다, 응답률도 너무 낮았다”고 말했다.
김성희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소장은 “그동안 정부 차원의 비정규직 관련 조사가 사업체 조사에 편중돼 있다 보니 근로자 조사는 표본집단조차 찾기 어려운 실정”이라고 비판했다.
황보연 기자 whynot@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