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백일 이상 장기투쟁을 벌이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기륭전자에만 있는 게 아니다. 이랜드·코스콤·케이티엑스(KTX) 등의 비정규직 노동자들도 오랜 투쟁을 힘겹게 계속하고 있다. 이른바 ‘비정규직 장기투쟁 사업장’으로 불리는 곳의 노동자들이다.
300일 넘게 서울 여의도 증권선물거래소 앞에서 천막농성을 하고 있는 코스콤 비정규지부는 지난달 법원에서 “비정규직 66명은 코스콤 직원에 해당한다”는 판결을 받고 회사에 여러 차례 교섭을 요청했다. 하지만 회사는 “항소했다”는 이유를 내세워 교섭을 거부하고 있다.
지난해 비정규직법 시행을 앞두고 이랜드의 대규모 계약 해지와 ‘계산업무 외주화’로 촉발된 이랜드·뉴코아노조의 파업도 벌써 400일을 넘겼다. 하지만 홈에버가 홈플러스로 넘어가면서, 이랜드일반노조는 사태 해결을 위해 이랜드와 삼성테스코 양쪽 회사를 상대로 ‘대화’를 요청해야 하는 이중고를 겪게 됐다. 노조는 11~16일을 집중 투쟁기간으로 정해 홈에버와 홈플러스 각 지점 앞에서 집회를 벌이고 있다.
케이티엑스 승무원들은 870여일째 “직접고용”을 요구하며 회사와 싸우고 있다. 현재 30여명은 서울역과 부산역 앞에 천막을 치고 농성 중이다. 지난해 회사가 이들을 “철도공사의 매표 업무를 담당하는 비정규직으로 고용하는” 방안을 내놨다가 막판에 태도를 바꾼 뒤로, 이들의 앞날은 막막해졌다.
이런 비정규직 장기투쟁 사업장의 공통점은 이들이 ‘법·제도의 사각지대’에 놓인 파견·용역 등 ‘간접고용 노동자’라는 점이다. 기륭전자나 코스콤처럼 ‘불법 파견’ 판정을 받더라도, 회사는 벌금을 내면 그만이다. 이랜드처럼 법망을 피해 ‘외주화’하게 되면, 마땅히 제재할 방법도 없다. 노동부도 해마다 ‘장기투쟁사업장 태스크포스(TF)팀’을 꾸리긴 하지만, 뚜렷한 해결책을 내놓지 못하는 형편이다.
이 때문에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점거·고공농성과 단식 같은 극단적 방식을 써서라도, 회사를 교섭장으로 끌어낼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배규식 한국노동연구원 노사관계본부장은 “법률로 보호받지 못하는 비정규직들이 파업이나 단식 등을 유일한 힘으로 삼는 현실을 바꾸기 위해, 사회적으로 머리를 맞대야 한다”고 지적했다. 황예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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