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창협 키친아트 대표이사(오른쪽)가 11일 오전 서울 구로구 가산동 기륭전자 비정규직 농성장을 찾아 노조원들에게 추석선물을 전달하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노동자 기업 ‘키친아트’
농성장 찾아 냄비전달
단식 분회장엔 밥솥도
농성장 찾아 냄비전달
단식 분회장엔 밥솥도
“이제야 찾아뵙게 돼 죄송합니다.”
11일 오전 서울 금천구 가산동 기륭전자 정문 앞.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천막 농성장을 찾은 전창협 키친아트 사장이 쑥스러운 표정으로 마이크를 잡았다. 정문 앞에는 전 사장과 임직원들이 정성을 모아 가져온 냄비 세트 130여개가 높이 쌓였다.
해고자 복직과 정규직 전환 등의 요구 사항을 내걸고 1100여일째 투쟁 중인 기륭전자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키친아트의 냄비 세트는 ‘동병상련’의 애정이 담긴 뜻깊은 추석 선물이다. 전 사장은 “우리도 1980년대 후반 여러분들과 같은 고통을 겪으며 수많은 눈물을 흘려야 했다”고 말했다.
60년 경동산업이라는 이름으로 출발한 키친아트는 숟가락과 포크 등을 전세계에 수출하면서 사세를 크게 확장했다. 그 이면에는 저임금과 가혹한 노동조건을 감내한 노동자들이 있었다. 노조 설립에 사쪽은 해고와 폭력으로 대응했고, 이에 항의하며 김종하·강의신 두 노동자가 분신 자살하는 비극을 겪어야 했다. 경동산업은 이후 부실 경영으로 부도를 맞았고, 2000년 법원으로부터 파산 선고를 받았다. 박선태 전무이사는 “당시 경영진은 회사를 버렸지만 노동자들은 그럴 수 없었다”고 말했다. 남은 노동자들은 체불임금, 퇴직금, 위로금 등 76억원을 모아 회사를 인수해 사명을 ‘키친아트’로 바꿨다. 노동자 기업으로 탈바꿈한 뒤 연 매출 700억원대의 탄탄한 기업으로 성장했다. 키친아트는 해마다 주식 배당금 10%를 사회에 환원하고 있다.
이날 선물은 애초 촛불 이후에도 기륭전자 농성장을 찾아 ‘연대 단식’을 벌여 온 인터넷 카페 ‘82쿡닷컴’ 회원들을 위한 것이었다. 회원들의 모습에 감동한 이갑용 전 민주노총 위원장 등이 평소 친분이 있던 키친아트 쪽에 ‘추석 선물’을 제안하자 이를 흔쾌히 받아들인 것이다. 나아가 키친아트 쪽은 “비정규직 노동자의 고통이 남의 일 같지 않다”며 “추석에도 외로운 싸움을 이어가야 하는 기륭전자 농성 노동자들과 서울역에서 고공 농성 중인 케이티엑스(KTX) 여승무원들에게도 선물을 전달하고 싶다”는 뜻을 알려왔다.
93일째 단식 중인 김소연 기륭전자 분회장에게는 ‘건강하게 단식을 마치고 맛있는 밥을 지어 먹으라’는 뜻에서 따로 밥솥 세트가 전달됐다. 냄비 선물을 받아 든 우석순 조합원은 “그동안 회사는 명절 때도 정규직들한테만 선물을 돌려 서운한 적이 많았다”며 “오랜 단식과 투쟁으로 지친 조합원들과 따뜻한 밥 한 끼 나누는 게 한가위 소원”이라고 말했다. 길윤형 기자 charism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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