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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노동

벌금내고 해고당하는 택배기사
“글쎄, 우리보고 사장님이래요”

등록 2009-05-11 13:32수정 2009-05-11 14:45

지난 9일 오후 대전시 법동 중앙병원 앞에서 ‘복직 투쟁’ 55일째를 맞은 최학렬(55·왼쪽)씨는 “월급 받고 벌과금 내는 사장은 없다. 우리는 노동자”라고 말했다. 집회 현장에서 어버이날을 보낸 고영태(45·오른쪽)씨가 초등학교 5학년인 딸이 “아빠, 힘내세요”라고 보낸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를 보고 있다.
지난 9일 오후 대전시 법동 중앙병원 앞에서 ‘복직 투쟁’ 55일째를 맞은 최학렬(55·왼쪽)씨는 “월급 받고 벌과금 내는 사장은 없다. 우리는 노동자”라고 말했다. 집회 현장에서 어버이날을 보낸 고영태(45·오른쪽)씨가 초등학교 5학년인 딸이 “아빠, 힘내세요”라고 보낸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를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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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차하면 ‘계약해지’…“노동자로 인정을”
‘사장님’들은 “노동자로 인정받고 싶다”고 말했다. 일하는 모습은 영락없는 봉급노동자인데, 불리할 때만 사장님으로 ‘대우’받기 때문이다. 특히 최근 택배노동자들 편에 섰던 박종태(38) 화물연대 광주지부 제1지회장이 수배중 숨진 채 발견된 뒤, 이들은 물류 중심지인 대전에 모여 박씨를 추모하는 집회 등을 열고 있다.

지난 9일 대전 추모집회에 참여한 택배기사 고영태(45)씨는 한때 꽃가게를 운영했던 ‘진짜 사장님’이었다. 불황으로 가게 문을 닫고 400만원짜리 중고 트럭을 구입해 2006년 시작한 택배 일은 다섯 식구를 위한 마지막 보루이다.

고씨는 노동자이면서도 사장님이다. 그는 계약서에 따라 출퇴근 시간도 지정돼 있다. 매일 아침 7시 출근해 택배 물품을 분류하고, 바코드를 붙인 뒤 배달 예상 시각을 입력한다. 그런데 교통이 막히는 등 어쩔 수 없이 발송이 늦어지면, ‘벌과금’을 물어야 한다. 건당 배송수수료가 920원인데, 벌과금은 수수료의 50%인 460원에서 최고 1000원까지 이른다. 택배기사들은 끼니도 거르면서 밤 9시까지 뛰어다니는 것도, ‘몇 시간 뒤에 가져다 달라’는 손님의 요청을 들어줄 수 없는 것도 벌과금 때문이다.

이밖에 고씨는 매주 월요일 조회시간엔 단체로 친절교육을 받는다. 손님에게 인사하는 법도 배우니 직원과 다를 게 없다.

반면, 돈을 써야 할 때는 얘기가 달라진다. 택배회사 마크로 차량을 도색하는 비용과 계절마다 바뀌는 유니폼 값 등은 ‘사업자’의 몫이다. “회사에서 광고를 의뢰받아 차에 ‘○○ 홈쇼핑’ 광고를 할 때도 도색 비용은 저희가 부담합니다. 광고 수익은 회사 몫이겠지요.”

물건이 파손·분실되었을 때는 택배기사한테 책임이 돌아가기 일쑤다. 중소기업에서 노무관리도 했던 택배기사 최학렬(55)씨는 지난해 12월 ‘월급 명세표’에서 벌과금으로 13만2000원이 빠져나간 것을 발견했다. 발송 검사를 통과했던 물품인데도, 파손 책임은 최씨한테 돌아왔다. 최씨는 “고객이 놓고 가라는 자리에 두고 갔다가 없어졌다며 60만원을 물어낸 동료도 있다”며 “고객 요청을 들어주지 않아 인터넷 고객 불만이 접수되면 벌과금이 부과되니 거절할 수도 없다”고 말했다.

택배노동자들은 보통 하루에 100여건, 한 달에 3000건 정도의 물품을 배달한다. 월수입은 300만원에 가깝지만 벌과금에 기름값, 차량 관리비, 휴대전화 요금 등이 빠지는 것을 계산하면 실제 월소득은 200만원에 못미친다. 주 6일 근무에, 병가나 휴가도 따로 없다. 택배기사 김아무개(29)씨는 “예비군 훈련이 돌아올 때가 가장 난감하다”고 했다.

그래서 노동계는 택배기사들을, 회사의 통제를 직접 받는 ‘특수고용직 노동자’라고 일컫는다. 그러나 현행법에서는 노동자가 아니다. 정부는 개인 차량을 가진 사업자라며 ‘특수근로형태 종사자’로 분류한다. 그래서 이들에게 ‘계약 해지’는 실질적인 해고 통보이다. ‘위탁 사업자’이기 때문에 퇴직금도, 실업급여도 없다.


지난 3일 숨진 채 발견된 박종태 지회장은 이런 택배기사들의 ‘복직 투쟁’을 이끌었던 사람이었다. 배송수수료 문제로 ‘노사 다툼’이 벌어지는 와중에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로 계약 해지 통보가 날아왔던 것이다. 김성용 대한통운 광주지회 분회장은 “화물연대 등 대형 물류배달 쪽은 일찍부터 노조가 설립돼 있었지만, 영세한 택배산업은 이제 갓 노조가 탄생하는 단계”라며 “1997년 계약직 택배기사는 건당 1000원을 받았지만 현행 배달료는 보통 850원 안팎이라 외려 후퇴했다”고 말했다.

대전/글·사진 정유경 기자 ed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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