덴마크의 ‘유연안정성 모델’은 양호한 거시경제 실적과 고용창출이라는 두마리 토끼를 잡는 성과를 거둬 유럽 각국의 발전 모델로 떠올라 있다. 사진은 덴마크 코펜하겐 공공고용센터에서 구직정보를 얻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 코펜하겐/이종찬 선임기자 rhee@hani.co.kr
[표류하는 일자리 대책] MB 고용정책 긴급점검 ④
올해만 16조원 지원…‘실효성 미미’ 지적 이어져
“정책영향 면밀 분석 통해 새 패러다임 만들 때”
올해만 16조원 지원…‘실효성 미미’ 지적 이어져
“정책영향 면밀 분석 통해 새 패러다임 만들 때”
지난 4월 공공기관의 건설공사 발주액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무려 35.1%가 늘었다. 그러나 같은 달 건설업 취업자 수는 올해 들어 가장 큰 폭(-12만8000명)으로 줄었다. 정부가 고용사정 악화를 막으려고 ‘일자리 대책’에 16조원이 넘는 예산을 쏟아붓고 있지만 실효성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고용효과 분석이 결여된 주먹구구식 재정지출의 결과다.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새사연)의 이상동 경제연구센터장은 “정부 재정 투입에 힘입어 올해 1분기에 건설업만 두드러진 성장률(5.9%)을 기록했지만 건설업의 취업자 수 감소세는 멈추지 않고 있다”고 진단했다. 공공발주 공사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토목 부문에선 기계화의 진전으로 일자리 창출 효과가 미미하다.
재정지출의 고용유발 효과가 높은 사회서비스 분야 일자리는 안정성이 문제다. 정부가 올해 약속한 사회서비스 일자리 16만6000개는 참여정부에서 제도화한 노인요양보험 등에서 파생된 일자리가 대부분이다. 민주당 집계에 따르면 올해 초 보건복지부가 마련한 사회서비스의 새 일자리 7만2000개 중 7만개가 이미 지난해 만들어진 일자리다. 그것도 한 달 급여가 50만원도 안 되는 저임금 일자리가 많다. 이 때문에 월 80만원을 주는 ‘희망근로’로 옮겨가는 이들도 나오는 실정이다. 또 6월 취업자 수 증가에 크게 기여를 한 희망근로사업의 일자리는 6개월 뒤엔 다 사라질 예정이다.
전문가들은 이명박 정부 일자리 대책의 일차적인 문제점으로, ‘컨트롤 타워 기능의 부재’를 꼽는다. 조준모 성균관대 교수(경제학)는 “각 부처의 이해 충돌, 청와대의 전문성 및 조정 역량 부족, 정당의 포퓰리스트적인 정책 등이 맞물려 예산 투입 대비 정책효과가 반감된다”고 지적했다. 200여가지가 넘는 일자리 대책이 쏟아졌지만, 도토리 키 재기 식 나열에 그치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해 9월까지만 해도 정부가 주도하는 일자리 정책은 사실상 전무했다. 규제 완화와 감세 등 친기업정책에 힘을 쏟으면 일자리는 자연스레 늘어날 것이란 인식 탓이었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몰아친 뒤인 지난해 12월23일 관계부처 합동으로 ‘고용 및 사회안전망 대책 태스크포스(TF)’를 꾸렸지만, 각 부처의 재정투입 현황을 점검하는 수준에 그치고 있다. 참여정부에서는 각 부처 장관들과 노사 및 시민단체 대표까지 참여하는 ‘일자리만들기 위원회’를 상설 운영하며 수시로 정책 집행의 성과를 점검하고 다양한 의견을 모았던 것과 사뭇 대조적이다.
지난 9일에는 한국노동연구원 주관으로 진행하는 정부 일자리대책 평가 토론회조차 돌연 취소됐다. 공식 사유는 준비 부족이었지만, 일부에선 “정부 입맛에 맞는 평가 결과가 나왔다면 토론회를 취소했겠느냐”는 의혹도 나왔다.
경제부처 위주로 일자리 대책이 수립되는 과정에 대한 비판도 나온다. 최영기 전 한국노동연구원장은 “지난 1년여간 노동부가 고용대책의 중심 부처라는 정체성을 상실한 것 같다”며 “정부 일자리 정책이 단기대책 위주로 돌아가는 것은 지속적 재정투자를 꺼리는 경제부처가 주도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한나라당 김성태 의원은 “청와대 사회정책수석은 복지부 출신이고 고용노사비서관도 정치적 인맥으로 선임돼 청와대에서 고용문제에 대해 대통령에게 조언할 전문가가 없다”고 말했다. 이렇다 보니 이미 외환위기 때 시행착오를 겪은 실업대책도 버젓이 되풀이되고 있다. 단기적인 생계지원 대책일 뿐이라는 비판을 받았던 ‘공공근로’와 흡사한 ‘희망근로’가 그런 경우다. 고용유지지원금도 순고용효과가 평균 22.5%에 그친다는 연구 결과가 나온 바 있지만, 별다른 개선방안 마련 없이 올해 확대 시행됐다.
우리나라의 경제력은 선진국 문턱에 이르렀지만, 고용 구조는 여전히 후진적이다. 경기에 따라 일자리 증감의 기복이 아주 심하다. 주요 선진국에 견준 한국의 대기업 및 공공부문 고용 비중은 3분의 1 수준인 데 반해, 자영업 취업자 비중은 3배에 이른다. 이런 고용 구조에서 벗어나려면 중장기 국가 고용전략의 수립과 꾸준한 집행이 중요하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이상동 새사연 경제연구센터장은 “정부의 재정지출이나 주요 경제·산업정책 수립 과정에서 고용효과를 면밀히 따지는 고용영향평가제를 도입하는 등 고용 친화형 경제구조로 전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노동시장 유연화 확대에 치우친 고용전략을 유지해온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2006년 ‘유연성’에 ‘안정성’을 보완하는 신고용전략을 수립한 사례는 국내에도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고용에 긍정적 영향을 주는 거시경제 정책 수립과 적정한 실업급여와 재취업 기회를 보장하는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 등이 뼈대다. 전병유 한신대 교수(경제학)는 “대표적 유연안정성 모델로 알려진 덴마크의 경우 급속한 고용 창출, 실업률의 급감, 양호한 거시경제 실적 등을 달성해 많은 나라들이 벤치마킹에 나서고 있다”고 소개했다.
황보연 기자 whynot@hani.co.kr
황보연 기자 whyn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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