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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노동

전임자 임금 주면 처벌 강제…노조 88%에 ‘족쇄’

등록 2009-11-30 14:47수정 2009-11-30 14:49

한국노총 서울지역본부 소속 노동자들이 28일 오후 서울 여의도 산업은행 앞에서 ‘총파업 승리 결의대회’를 열어 노조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와 복수노조 교섭창구 단일화 방침 철회를 촉구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한국노총 서울지역본부 소속 노동자들이 28일 오후 서울 여의도 산업은행 앞에서 ‘총파업 승리 결의대회’를 열어 노조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와 복수노조 교섭창구 단일화 방침 철회를 촉구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재계 “외국선 조합비로”…노동 “임금금지 나라 없어”
정부 연착륙 시도 불구 소규모 노조에 치명타 예고
내년부터 사용자는 노조 전임자에게 임금을 줄 수 없다. 국회가 올해 말까지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동조합법)을 손질하지 않으면, 이 법의 24조2항이 내년 1월1일부터 효력이 생기기 때문이다. 이 조항은 “노조 전임자는 사용자로부터 어떠한 급여도 지급받아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조항을 어기는 사업주는 부당노동행위로 처벌받는다.

노동계에선 노조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가 기계적으로 적용될 경우, 무엇보다 전체 노조의 90%에 가까운 중소 규모 노조가 엄청난 타격을 입을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 ‘임금 금지’가 세계적 기준? 외국에선 전임자 임금을 조합비로 충당하는 게 일반적이다. 이런 이유로 정부와 재계는 전임자 임금을 사업주가 주는 관행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주장한다. 재계는 이런 논리에 덧붙여 우리나라의 노조 전임자 수가 지나치게 많다고 말한다. 한국노동연구원이 지난해 7~8월 427개 업체를 표본 조사한 결과, 전임자 1명당 조합원 수는 149.2명이었다. 반면 일본노동조합총연합회의 2005년 통계를 보면, 일본의 전임자 1명당 조합원 수는 570.9명에 이른다.

하지만 단순 논리로 따지기에는 고려해야 할 변수가 많다. 외국과 달리 우리나라는 기업별 노사문화가 강해서 전임자가 회사 업무인 노무·산업안전 관리 등의 일을 수행하기 때문이다. 회사가 노조를 지배·개입할 목적으로 돈을 주는 것과, 노조가 임단협에서 요구해 전임자 급여를 ‘쟁취’하는 것은 구별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노동계는 세계 어느 나라에도 급여 지급 자체를 법으로 금지하는 나라는 없다며, 이번 기회에 24조2항을 없애야 한다고 주장한다. 김종각 한국노총 정책본부장은 “다른 나라에서도 지배·개입을 목적으로 하는 경우만 급여 지급을 금지하고, 노사가 자율 결정할 경우엔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국제노동기구(ILO) ‘결사의 자유 위원회’ 등 국제기구도 전임자 임금은 법으로 강제하지 말라고 여러 차례 권고했다.

■ 중소 노조 시험대에 정부는 재계와 태도가 비슷하다. 다만 중소 노조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대기업과 공기업에서 우선 시행하고, 중소기업에는 유예 기간을 준다는 방침이다.

내년부터 전임자 임금지급이 금지됐을 경우, 노사관계에 미칠 파장은 크다. 특히 조합원 수 300명 미만의 중소기업 노조 등 소수 노조는 치명타를 입을 가능성이 크다. 조합비로 전임자 임금을 줄 여력이 없어 결국 기존 전임자를 없애야 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노조의 교섭력이나 영향력은 위축될 수밖에 없다. 지난해 우리나라 전체 노조 5099곳 가운데 조합원 수 300명 미만의 중소 규모 노조는 4503곳으로 전체의 88%를 차지한다.


최근 들어 조직화되고 있는 비정규직 노조나 하청업체 노조의 걱정은 더 크다. 이들은 노조 설립 과정에서 투쟁으로 전임자를 ‘쟁취’했다. 박점규 전국금속노동조합연맹 미조직정규부장은 “그동안의 투쟁 성과가 단 하나의 법률 조항 때문에 무너진다는 것은 청천벽력에 가깝다”고 말했다.

노동부는 중소 규모 노조의 피해 예측이 과장됐다며 점진적으로 시행하면 연착륙이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조합원 수 기준으로 보면, 300명 미만 노조의 조합원은 전체의 16%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상대적으로 약자인 중소기업 노조, 비정규직 노조, 간접고용 등 하청업체 노조에 전임자 임금 금지는 큰 족쇄가 될 가능성이 크다.

■ 해결책 없나 김상희 민주당 의원은 노동계 의견을 반영해 전임자 급여를 노사 자율로 결정하도록 하는 내용의 노동조합법을 지난 26일 발의했다. 한나라당의 개혁 성향 의원 모임인 ‘민본21’은 사업장 규모별로 전임자 수를 제한하자는 타협안을 내놓았다. 노사정위원회의 노사관계선진화위원회는 지난 8월 전임자가 인사와 노무 등 노사 공동 업무를 하는 시간을 근로시간으로 인정해 일정 급여를 지급하는 ‘타임오프제’를 제안한 바 있다. 이 방안은 법 개정 없이 시행할 수 있지만, 지금과 같은 월급 형태의 임금 지급은 원천적으로 금지된다.

그러나 국회에서 노동조합법 개정안이 본격적으로 논의될지는 미지수다. 특히 한나라당이 정부 방침을 거스르면서까지 법을 개정하기에는 난관이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노조 규모에 따라 점진적으로 전임자 임금 금지를 도입하고 타임오프제를 시행하는 등 연착륙을 시도할 방침이다. 하지만 노사관계 현장에서는 전임자 임금 문제가 노사갈등의 불씨가 되면서 혼란의 폭풍이 휘몰아칠 것으로 예상된다.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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