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태 전국철도노조 위원장(가운데)이 3일 오후 6시 서울 영등포구 민주노총 회의실에서 파업 철회를 알리는 기자회견문을 발표한 뒤 자리에서 일어서고 있다. 왼쪽은 김종인 운수노조 위원장, 오른쪽은 공공운수노련 김도환 위원장. 김경호 기자 jijae@hani.co.kr
철도노조 파업 왜 철회했나
‘파업중 대화 불용’에 파업 무력화
코레일 “노조 사실상 항복 선언” 평가
“정부 강경드라이브 한층 강화될 것”
‘파업중 대화 불용’에 파업 무력화
코레일 “노조 사실상 항복 선언” 평가
“정부 강경드라이브 한층 강화될 것”
전국철도노동조합이 3일 전격적으로 파업을 철회한 데는 회사와 정부의 전방위적인 압박에서 일단 숨을 돌리자는 생각이 담긴 것으로 보인다. 사실상 퇴로 없는 막다른 길에 몰린 상태에서 피해를 최소화하자는 현실적인 선택을 한 셈이다.
하지만 철도노조 파업은 이명박 정부의 ‘공공기관 선진화’에 맞선 상징적 투쟁의 성격을 띠었다는 점에서, 이번 파업 철회는 정부의 공세 강화 등 적지 않은 파장을 가져올 것으로 전망된다.
■ 대통령까지 나선 파업 철회 압박 지난달 26일 철도노조가 파업에 돌입한 직후 회사는 유례없는 강경 대응으로 일관했다. 파업 참가자 800여명을 직위해제했고, 김기태 위원장 등 노조 간부 197명을 업무방해 혐의로 경찰에 고소했다. 성공리에 파업을 마쳐도 조직의 후유증을 피할 수 없는 규모였다.
여기에 정부가 파업을 불법으로 규정하고 압박에 나서면서 노조의 입지는 더욱 좁아졌다. 경찰은 지난 1일 서울 용산구의 노조 사무실 2곳을 전격 압수수색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달 28일 “공기업 노조가 파업을 하는 것은 국민들이 이해하기 힘들고 이해해서도 안 될 것”이라고 말한 뒤, 지난 2일에는 코레일 서울본부 비상상황실을 방문해 직접 파업 대응 상황을 챙기기도 했다.
대통령부터 시작해 정부가 전방위적으로 철도 파업을 압박하다보니, 회사가 노조와 대화를 재개하기 어려운 상황이 됐다. 노조는 ‘조건 없는 대화’를 요구했지만, 회사는 ‘파업 철회 뒤 대화’라는 태도에서 한 발도 물러서지 않았다. 코레일 관계자는 “24일 마지막 교섭 이후 물밑교섭도 없었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노조는 파업이 장기화할 경우 승산이 불투명하다는 현실적인 인식을 한 것으로 보인다. 철도노조 관계자는 “파업을 하면서 회사를 대화의 자리에 끌어내기가 불가능하다는 판단이 있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결국 노조는 파업을 일단 접어 조직을 보전하고, 다음 단계의 투쟁을 준비하는 전략을 선택했다.
■ 공공부문 압박 강화될 듯 노조의 파업 철회 직후 코레일은 “사실상의 항복선언”이라고 평했다. 또 끝까지 민형사상 책임을 묻고 관련자를 징계하겠다고 밝혀, 이른바 ‘무관용 원칙’을 고수할 뜻을 분명히 했다.
정부는 앞으로 코레일의 경험을 공기업 노사관계의 모범으로 삼으려 할 가능성이 크다. 철도노조가 사실상 아무것도 얻지 못한 채 파업을 접은 것은 강경 대응이 통했기 때문으로 해석하는 것이다.
이병훈 중앙대 교수(사회학)는 “이번 철도노조 파업을 계기로 앞으로 정부의 공공기관 선진화 드라이브가 한층 더 강화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렇게 될 경우, 우선 공공기관과 공기업을 중심으로 단체협약 개정을 둘러싼 마찰이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인사·경영권 등을 침해한다고 지적받은 단협이 있는 사업장에서는 회사 쪽이 선제적으로 단협을 해지하려 할 수 있다. 또 전국공무원노동조합에 대한 정부의 개입도 강도가 더 거세질 것으로 전망된다. 아울러 공공부문에서 조직력이 좋은 곳으로 꼽히는 철도노조의 파업이 무력화됨에 따라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이 이달 중순으로 예정해 놓은 총파업도 동력을 일부 상실할 것으로 보인다.
이번 파업은 또 노사 간 대화 없이 파업이 무력화됐다는 점에서 정부가 이런 ‘파업 중 대화 불용’ 원칙을 앞으로 고수할 것인지도 주목 대상이다. 기존에는 파업 중에도 대화가 지속됐지만, 이번에는 물밑교섭조차 없이 힘에 의한 굴복으로 끝났다.
하지만 정부의 강경기조는 노조와 사쪽 사이의 힘에 의한 대결 관계를 강화시킬 게 분명하고, 이 때문에 당분간 여기저기서 노사관계 파열음이 커질 것으로 우려된다.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철도노조 파업 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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