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업철회 한달간 노조원 징계·형사처벌만 착착
정규직화 논의조차 안돼…“재파업” 여론 가열
정규직화 논의조차 안돼…“재파업” 여론 가열
‘하늘엔 영광, 땅엔 평화’가 찾아온다는 크리스마스를 앞둔 지난 24일 저녁. 울산 현대자동차 공장 그랜드스타렉스 조립라인에서 일하는 황호기(39)씨는 공단 안에 있는 새마을금고 현금인출기에서 5만원을 뽑으려다 순간 당황했다. 나오라는 돈은 나오지 않고, ‘법적등록계좌’(압류)라고 인쇄된 명세표만 튀어나왔기 때문이다.
2001년 11월부터 현대차에서 일해온 황씨는 지금도 여전히 사내하청 노동자다. 비정규직 차별을 없애보고자 전국금속노조 현대차 울산공장 비정규직지회 대의원으로 활동하던 그는 지난달 15일부터 25일 동안 이어진 1공장 점거 파업에 끝까지 동참했다. 그를 비롯한 노조 간부 16명을 업무방해 등의 혐의로 고소·고발하고 162억원에 이르는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낸 회사 쪽이 이날 추가 조처를 한 것이다. 황씨는 26일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평화적 교섭 상태에서 회사가 이렇게 나오면 교섭을 파괴하는 행위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금속노조는 24일 월급계좌가 압류된 이는 황씨뿐만 아니라 이상수 비정규직지회장 등 사내하청 노동자 90여명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일부 정규직 조합원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농성을 푼 뒤 이들에 대한 회사와 정부의 처벌은 착착 진행중이다. 24일에는 전아무개 조합원이 경찰에 체포됐고, 지난달 17일 연행된 장아무개씨는 최근 법정에서 징역 2년을 구형받았다. 현대차 아산공장에서도 최근 조합원 89명이 고소·고발 및 징계위원회 회부 통보를 받았다. 현대차가 3억2000만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내자 사내하청 업체는 여기에 6350만여원을 추가했다. 이상수 비정규직지회장은 “회사가 교섭을 하자면서 고소·고발을 하고 가압류를 집행하며 노조파괴 행위를 하는 건 국민을 기만하는 비열한 처사”라고 비판했다.
반면 현대차와 사내하청 업체, 금속노조, 현대차 정규직노조, 비정규직지회 등이 진행하고 있는 협상은 여전히 지지부진하다. 여태껏 각 공장에서 진행중인 조합원 대상 징계 절차 중단을 놓고 옥신각신을 거듭했다. 핵심이랄 수 있는 사내하청 노동자의 정규직화 방안과 회사 쪽의 고소·고발 및 손해배상 청구소송 철회 등의 안건은 협상 테이블에 올려놓지도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노조 쪽에서는 “재파업이 불가피하다”는 여론이 세를 얻고 있다. 더는 교섭 테이블에 앉아봐야 얻을 게 없다는 인식 때문이다. 문제는 행동에 들어갔을 때 어떤 결과가 나올 것이냐다. 박유기 금속노조 위원장은 “파업은 언제든 가능한데, 그 뒤에 어떻게 갈지 전망이 불투명하다”고 말했다. 반면 이상수 지회장은 “우리가 언제는 좋은 조건에서 파업한 적 있느냐. 그럼 우리가 비정규직이 아니다”라며 씁쓸하게 웃었다.
전종휘 기자 symbi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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