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란 노무사(36)
재판 이끈 노무사 이종란씨와 ‘반올림’
황상기씨 만난뒤 반도체 피해 관심
“이제 2심 준비…다시 시작해야죠”
황상기씨 만난뒤 반도체 피해 관심
“이제 2심 준비…다시 시작해야죠”
삼성전자 반도체 노동자들이 산업재해를 인정받기까지에는 이종란 노무사(36·사진)의 4년에 걸친 노력이 있었다.
이 노무사가 삼성전자 반도체공장 노동자 산재 사건을 처음 접한 것은 2007년 7월이었다. 이 공장에서 일하다 스물세살 나이에 숨진 황유미씨의 아버지 황상기씨가 이 노무사가 일하던 민주노총 경기본부 사무실로 찾아왔다. 황씨의 얘기를 듣고는 바로 “뭔가가 있다”고 직감적으로 알아챘다. 가족 가운데 백혈병에 걸린 사람도 없는데다 숨진 황씨가 화학물질을 다루는 세척작업을 맡았기 때문이다. 이 노무사는 그때부터 반도체공장 산재 문제에 뛰어들었다.
2007년 11월 19개 노동·정당·시민단체가 모인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 반올림’을 만들었다. 반도체 관련 자료도 별로 없고 공정 이름조차 낯설었지만, 일을 하면 할수록 ‘진실’을 밝혀내야 한다는 생각이 강해졌다. 백혈병에 걸린 노동자들의 진술을 녹음해 매일 반복해서 들었다. 하도 많이 들어 머릿속에 반도체공장을 그릴 정도였다. 반올림 활동가인 산업의학 전문의 공유정옥씨의 도움도 컸다. 이 노무사는 “우리나라엔 반도체산업 안전보건 관련 책이 하나도 없었다”며 “반올림에서 외국 책을 직접 번역해 공부했다”고 말했다.
반올림이 만들어지자 제보가 이어졌다. 첫 제보는 지난해 3월 스물세살의 나이로 숨진 박지연씨 사례다. 고3 때인 2004년 12월 삼성전자에 입사해 반도체 검수 업무를 맡았던 그는 2007년 ‘급성골수성백혈병’ 진단을 받았고 결국 숨을 거뒀다. 이 노무사는 “투병과정을 지켜보며 너무 힘이 들었다”고 말했다. 피어보지도 못하고 시들어버린 박씨의 죽음은 사람들의 마음을 울렸다. 국회 국정감사에서도 집중적으로 다뤄졌고, 지난해 12월에는 삼성반도체 문제를 다룬 연극도 무대에 올려졌다.
지난 4년은 상처가 많은 날들이었다. 특히 삼성의 태도를 보면 화가 치밀어오르기 일쑤였다고 한다. 이 노무사는 “삼성에서 피해자 가족들을 만나 돈으로 매수하고, 가족들이 싸움을 포기할 때 특히 마음이 많이 아팠다”고 했다. 1심 재판이 끝난 그는 “이제 다시 시작”이라고 말했다. 그는 “2심도 준비해야 하고, 다시 바빠질 것 같다”며 일어섰다.
글 김소연 기자 dandy@hani.co.kr
사진 김정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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