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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노동

법 위의 대기업, 불법파견 계속

등록 2011-07-19 20:31수정 2011-07-19 22:29

“현대차 사내하청 노동자, 도급 아닌 고용관계” 대법 판결 1년 됐지만
하청노동자 정규직 전환, 판결 뒤에도 단 한명 없어
해고 104명·징계는 1000여명
지난 13일 울산 북구 양정동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정문 맞은편 상가 건물. 에어컨은커녕 바람조차 통하지 않는 공간에 노동자 20여명이 모여 있었다. 현대차 사내하청 해고노동자들이다. 10분만 앉아 있어도 온몸에서 땀이 줄줄 흐르지만, 이곳은 이들에게 더없이 소중한 공간이다. 복직 투쟁의 거점 구실을 하는 ‘제2의 노조사무실’인 까닭이다. 이들은 회사가 해고자들의 공장 출입을 막자, 지난 2월부터 이 건물 한칸을 빌려 임시 사무실로 쓰고 있다. 올 들어 정규직 전환을 요구하다 해고된 노동자만 104명, 징계자는 1000명을 넘어섰다. 그러나 당장 생계 걱정 등으로 고통을 받고 있는 이들의 처지와 상관없이 495만㎡(153만평)에 이르는 세계 최대 자동차공장인 현대차 울산공장은 24시간 쉬지 않고 돌아가고 있다.

이들 사내하청 노동자들에게 지난해 7월22일은 꿈에도 잊지 못할 날로 기억된다. 어둠 속에서 절망하던 이들에게 한줄기 빛 같은 대법원 판결이 나온 날이다. “현대차 사내하청의 경우 도급(하청)으로 위장한 불법파견에 해당하므로, 파견법에 따라 2년 이상 근무한 노동자는 현대차에 직접 고용된 것으로 본다”는 내용이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결과였다. 지방노동위원회, 중앙노동위원회, 서울행정법원, 서울고등법원에서까지 패소했다가 대법원에서 뒤집어졌다. 판결의 위력은 대단했다. 970명이던 노조 조합원(울산·아산·전주공장)이 2400명까지 늘었다. 정규직이 될 수 있다는 기대가 그들을 노조 깃발 아래 모이게 했다. 지난해 11월에는 250여명의 사내하청 노동자가 울산 1공장을 점거해 25일 동안 조업이 중단되기도 했다.

하지만 법도 투쟁도 대기업 앞에선 ‘무용지물’이었다. 대법원 판결이 나고 1년이 지났지만 아무것도 달라진 게 없다. 현대차는 여전히 불법파견을 하고 있고, 파견법에 따라 정규직이 된 사내하청 노동자는 단 한 명도 없다.

주간 근무를 마치고 공장을 나서던 하청노동자 박수길(가명·38)씨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는데도 회사는 ‘나 몰라라’ 하고 있고, 투쟁하던 우리들만 고통을 받고 있다”며 “뭐 이런 나라가 다 있는지 모르겠다”고 푸념했다. 박씨도 공장 점거농성으로 2개월 정직을 당했다가 최근 복귀했다.

그는 “하청 노동자들은 지금도 현대차 생산시설에서 현대차 부품을 사용하고 현대차가 만든 작업지시서를 보면서 일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법원 판결 취지에 비춰 보면 명백한 불법파견이다. 정규직과 회사도 이를 잘 알고 있다. 의장부에서 자동차 조립을 하고 있는 정규직 김만철(가명·43)씨는 “비정규직이 작업을 하다가 불량을 내면 정규직 관리자가 와서 지적을 한다”며 “같이 일하는 우리도 불법파견인 것을 알고 있다”고 말했다. 현대차 사쪽 관계자도 “대법원 판결을 기준으로 하면 불법파견으로 볼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이 관계자는 “법원 판결이 자동차 산업의 특수성을 반영하지 못해 받아들이기 힘들다”고 말했다.

노동부도 이미 지난 2004년 현대차 사내하청을 불법파견으로 규정하고 고발했지만 검찰이 무혐의로 처리해 현대차는 ‘면죄부’를 받았고, 다시 대법원이 불법파견이라고 인정하면서 하청 노동자들은 투쟁과 소송을 병행하고 있다. 기업 입장에서 사내하청은 ‘꽃놀이패’와 같은 제도다. 같은 비정규직인 계약직이나 파견 노동자는 법적 보호 장치가 있는데 사내하청은 아무런 규제가 없다. 임금은 정규직의 절반만 주면 되고, 해고도 쉽다. 자르고 싶으면 하청업체와 계약만 해지하면 되기 때문에 노동자들과 줄다리기를 할 필요가 없다.

금속노조 정책연구원의 분석을 보면, 현대차 하청 노동자를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데 1년에 약 1200억원이 추가로 들어간다. 이상호 금속노조 정책연구원은 “현대차는 지난 10년 동안 매년 평균 약 2조5000억원의 당기순이익을 내고 있는 만큼, 이 가운데 5%만 투자하면 하청의 정규직 전환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독일의 자동차회사 폴크스바겐은 기업의 사회적 역할을 강조하며, 지난해 파견 노동자 400명을 정규직으로 채용한 데 이어 올해에도 2200명의 파견 노동자를 정규직으로 전환하기로 했다. 오민규 전국비정규직노조연대회의 정책위원은 “정부가 사내하도급(하청) 가이드라인을 발표하고 정치권이 비정규직 대책을 내놓고 있지만, 비정규직 문제의 핵심인 불법파견을 해결하지 못하면 생색내기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울산/김소연 기자 dandy@hani.co.kr


■ 불법파견

불법파견 현대차는 사내하청 업체들과 도급계약을 맺었지만, 노동시간·작업방식 등 업무 전반에서 하청노동자들을 지휘·감독하고 있어 ‘도급’(하청)이 아니라 ‘파견’에 해당된다. 하청으로 인정받으려면 하청업체가 소속 노동자들에 대한 근로 지시와 감독권 행사 등 실질적인 지배력을 갖고 있어야 한다. 제조업에서는 파견이 금지돼 있어 현대차의 경우 불법파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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