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5호선은 전체 구간 50.2㎞가 지하 30여m 깊이의 터널로 되어 있다. 한번 운행에 나서면 왕복 3시간을 어두컴컴한 정면 선로만 보고 달린다.
[토요판] 르포
지하철 기관사 하루체험
지하철 기관사 하루체험
지하철 기관사에겐 얼굴이 없다. 이따금 들려오는 육성 안내방송으로, ‘저기, 사람이 있다’는 것을 환기할 따름이다. 얼굴 없는 기관사가 운전하는 지하철에 매일 우리는 몸을 싣는다.
지난달 12일 서울 지하철 5호선을 운전하던 40대 기관사가 자신이 매일 지나던 선로에 몸을 던졌다. 그는 일반인보다 기관사들에게서 7배 높게 발병한다는 공황장애를 앓아왔다. 그에게 닥친 일을 개인의 죽음보단 ‘어느 기관사의 죽음’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지하 30여m에서 홀로 수천명의 안전을 책임지고 달리던 기관사의 하루는 어떤 것이었을까. 직접 지하철 5호선 운전실에 올라 기관사의 맨얼굴을 만나보기로 했다. 회사와 소속 사무소에서의 처지를 고려해 기관사의 이름과 나이, 취재 일시 등은 일부 수정했다.
승객은 기어이 몸을 들이민다. 머리든, 다리든, 가방이든, 뭐 하나라도 먼저 출입문 안쪽으로 구겨넣으면 문을 열어주겠지 하는 계산이다.
“앗싸! 언니, 빨리 와!” 5호선 개화산역에서 출발하는 상일동행 열차가 문을 닫을 찰나, 20대 여성이 계단에서부터 10여m를 총알같이 뛰어와 출입문에 몸을 걸친 채 친구를 부른다. 기관사가 승강장에 설치된 폐회로텔레비전(CCTV) 화면 3~4개를 샅샅이 뒤져도 보이지 않던 승객들은 화면 밖 어딘가에서 달려와 출입문 안쪽으로 몸을 날리곤 했다. 어른 손바닥 두 개를 펼쳐놓은 듯 작은 크기의 폐회로텔레비전은 운전실과 5~6m 떨어져 있어 속속들이 보이지 않고 곡선으로 휘어진 승강장 끝에서 벌어지는 일은 더욱이 확인하기 어렵다.
화면 밖 어디에선가 몸을 날리는 승객들
탄광의 갱도를 닮은 터널
탁한 공기, 진동, 쇳소리가
오감을 두루 짓누른다
그 와중에 방송하랴 문닫으랴
마음을 놓을 새는 없다 2분 지각!
관제실 재촉과 승객들 항의…
3시간 운행이 끝나면 또 3시간
이러다 열차 고장이라도 나면?
혼자라는 생각에 겁이 난다 승객들이 몸을 날려도, 기어이 기관사는 출입문을 닫아야 한다. “30초만 늦어도 승객 숫자가 갈리거든요.” 도시철도공사 소속으로 올해 경력 13년차인 윤상민(43) 기관사가 승객을 한아름 태운 뒤 1~2명의 ‘낙오자’들을 두고 떠나며 말했다. “이 역에서 10초 늦어지면 다음 역에선 기다리는 승객이 더 늘어 20초 늦어지고 그다음 역에선 30초 늦어지는 악순환이 거듭된다”는 설명이었다. 5호선 터널은 탄광의 갱도를 닮았다. 50.2㎞의 51개 역 모든 구간이 지하에 잠겨 있다. 게다가 1995년 개통을 시작한 서울 지하철 5~8호선 터널은 비용을 낮추기 위해 1기 지하철인 1~4호선 터널에 견줘 65㎝가량 낮게 설계됐다. 전동차 하나가 겨우 빠져나갈 정도로 좁은 터널을 바라보며 기관사는 3시간을 달린다. 한 평 반(5㎡)쯤 되는 운전실은 한낮인데도 컴컴했다. “형광등이 없나요?” 그제야 윤 기관사가 호롱불처럼 침침한 형광등을 켠다. 승객들에게 노출되는 게 꺼려져 형광등을 끈다고 했다. “승객들이 무서워요. 전부 거대한 적같이 느껴질 때도 있어요.” 앞차 운행이 늦어지거나 고장으로 잠시만 열차가 멈춰서도 승객들은 운전실 문을 발로 뻥뻥 차며 기관사를 재촉한다. 처음 기관사가 됐을 땐 그도 불을 밝힌 채 승강장의 아이들과 환한 웃음을 나누곤 했다. 좁은 운전실의 절반은 무전기·컴퓨터 등 전자기기들이 차지했다. 기관사가 몸 둘 곳은 낡은 갈색의 합성피혁 의자 하나다. 근무일지 등을 담은 가방도 둘 데가 마땅찮아 바닥 아무 데나 팽개쳐 둔다. 기자는 세심한 윤 기관사가 미리 준비해 온 낚시의자를 펴고 앉았다. 운전실에 오른 지 30분도 채 지나지 않아 불쾌지수가 올라간다. 텁텁한 공기, 전동차의 진동, 선로에서 들려오는 금속성 소음이 오감을 두루 짓눌렀다. “답답하죠? 전 편하게 사는 성격인데 저 같은 사람도 운전하기 너무 힘들 때가 있어요. 그럴 땐 차고 뭐고 다 버리고 뛰쳐나가고 싶어져요.” 윤 기관사가 기자를 다독였다. 전동차 운전실의 평균 이산화탄소 농도는 2200ppm 정도다. 노출 기준(5000ppm)엔 못 미치지만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300~400ppm)에 견줘 6~7배에 이르고 겨울철 주택의 실내 이산화탄소 농도(1000ppm)에 견줘도 2배나 농도가 짙다. 윤 기관사는 “산소가 부족하니 때로 멍해지는 기분을 느낀다”고 설명했다. 상황이 이런데도 도시철도공사는 2007년 환풍기 가동 횟수를 줄이고 터널 구간의 형광등을 끄는 등 절전으로 비용을 아꼈다며 국무총리 표창까지 받았다. 전동 그라인더로 쇠를 갈아내는 듯 불쾌한 쇳소리도 귀를 찔렀다. 곡선 구간을 지날 때 바퀴와 선로 사이의 마찰 때문에 생기는 소음이다. 운전실의 평균 소음은 60~70dB(데시벨) 수준이다. 역시 노출 기준(90dB)을 넘어서진 않지만 기관사들은 날마다 3시간 이상 이런 소음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된다. 그래도 귀마개를 할 순 없다. 안내방송도 해야 하고 관제실에서 이따금 전해지는 무선 연락에도 귀를 기울여야 한다. 윤 기관사는 “나도 소음성 난청이 있는데, 가는귀 먹은 기관사들끼리 얘기하면 목소리가 커진다”며 피식 웃었다. 초 단위 쪼개지는 일상, 분 단위 평가되는 노동
기관사의 일상은 분·초 단위로 쪼개진다. 시계를 자주 보는 습관은 직업병이다. 개화산사무소 소속인 윤 기관사는 이날 아침 6시38분부터 개화산역~상일동역 구간 왕복 열차를 운전한 뒤 낮 12시44분에 다시 개화산역에서 왕복 운전을 했다. 기관사의 근무 ‘다이야’(운행표·다이어그램) 중에서도 호된 일정이다. 운전을 앞둔 기관사는 열차 출발 30분 전 사무소에 출근해 그날의 운행 기록, 선로 상황 등을 점검한 뒤 근무복으로 갈아입고 10분 전 승강장 앞머리에 와 선다. 군자역을 지날 때쯤 관제실로부터 연락이 왔다. “열차가 늦어지고 있으니 빨리 가라네요.” 몇 분이나 늦었을까. “2분 늦었어요.” 1시간 남짓한 시간 동안 두번째 온 무전이었다. 두 차례 재촉을 당하자 기관사의 마음도 급해진다. 자동운전 시스템에서는 열차 속도를 수동으로 조절하지 못하기에 운행 간격을 조절하려면 출입문을 빨리 닫는 수밖에 없다. “이럴 때 사고가 나는 법이거든요. 더 조심하긴 해야죠.” 열차가 5분 늦으면 열차 지연으로, 10분 늦으면 사고로 기록된다. 기록은 고스란히 기관사의 근무평정에 영향을 미칠 뿐 아니라 18명으로 구성된 한 조, 150여명이 몸담은 사무소까지 모두 ‘연좌제’로 책임을 진다. “혼자 욕먹고 끝날 일이 아니라 사고가 나면 모두 책임을 져요. 입사할 땐 고장나면 ‘당황하지 말라’는 게 제1원칙이었는데 지금은 ‘무조건 빨리 고쳐라’가 지상명령이죠.” 종착지인 상일동역에 도착하자 기관사의 몸놀림이 바빠졌다. 1시간30분의 편도 운전이 끝났다. 2시6분에 도착해야 하는데 시계를 보니 2시9분이다. 돌아가는 열차는 12분 출발이니 3분 동안 차를 정위치하고 160m 길이의 열차 가운데를 가로질러 반대편 운전실로 이동해야 할 참이었다. 윤 기관사가 그새 “화장실 다녀오라”고 권했다. 화장실은 한 층을 올라가야 하는데 주어진 시간은 3분! 그야말로 엄두가 나지 않아 꾹 참고 기관사의 뒤를 따랐다. 이런 까닭에 기관사들은 운전 전후에 물 마시는 걸 삼간단다. “이번 역은 8호선 열차로 갈아타실 수 있는 천호, 천호역입니다.” 윤 기관사가 안내방송을 위해 마이크를 들었다. 대부분 녹음방송으로 안내하지만 환승역 등 특별히 주의를 기울여야 할 땐 기관사가 육성으로 안내한다. “육성으로 해야 승객들이 그나마 주의를 기울여요.” 방송을 해줘도 못 내린 승객들이 때론 운전실로 직접 전화를 건다. “안내도 제대로 안 해주고, 기관사는 뭐하러 있느냐”는 항의다. 안전이 기관사의 필요충분조건인 때도 있었다. 자동운전을 넘어 무인운전까지 기술적으로 가능해지면서 회사가 또는 사회가 기관사에게 요구하는 기대치도 높아졌다. 1995년 개통한 5~8호선은 1974년 개통한 1~4호선과 달리 처음부터 자동운전을 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췄다. 회사는 “자동운전이니 두 명이 탈 이유가 없다”며 차장 없이 기관사가 혼자 운전하는 1인 승무 시스템을 도입했다. 그러나 자동운전 중에 실제 ‘자동’으로 조절되는 것은 운행 속도와 정차뿐이다. 운행시간 내내 기관사는 마음을 놓을 틈이 없다. 기자의 질문에 답하면서도 윤 기관사의 시선은 정면에 꽂혀 있었다. 차량이 정지선에 맞춰 멈춰서면 출입문은 자동으로 열리지만 승객이 무사히 타는지 폐회로텔레비전을 확인한 뒤 안내방송을 하고 출입문을 닫아야 하기 때문이다. “평소엔 문제가 없어요. 하지만 열차가 고장나거나 지연될 때 혼자 있는 게 가장 두려워요.” 출퇴근 시간 5호선 열차엔 2500~3000여명의 승객이 올라탄다. 수천명을 싣고 가다 열차가 고장나도 수리는 물론 관제실 연락, 승객 통제, 안내방송까지 모두 기관사 혼자의 몫이다. 건강에 별다른 이상이 없는 윤 기관사도 3시간짜리 운전을 하루 2차례 도는 날이면 2회째 운전에서 돌아오는 길엔 집중력이 바닥난다. “이쯤 되면 습관적으로 운전하는 거죠.” 자연스레 공황장애로 자살한 동료 기관사 이아무개씨에 대한 얘기가 나왔다. 윤 기관사는 “2003년에 동료 기관사가 선로에 뛰어들었을 땐 예외적인 사건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번엔 특정인만의 문제가 아니라 나도 그럴 수 있겠다 싶어 겁이 왈칵 났다”며 한숨을 쉬었다. ‘2인 승무제’ 도입해야 모두가 행복하다
1인 승무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전문가들은 “9년 전 대구지하철 사고 당시에도 기관사 혼자 있어 현장을 수습하기 어려워 참극이 벌어졌다”고 설명한다. 실제로 한 연구결과를 보면 1인 승무 기관사의 사고 경험률이 46%였고 2인 승무는 26%로 큰 차이가 났다. 이 때문에 도시철도노동조합은 일본의 도쿄처럼 혼잡률(전동차 안에 승객이 가득 찬 정도)에 따라 승객이 많이 타는 일부 구간, 일부 시간대에라도 차장과 기관사가 함께 타는 2인 승무제를 도입해야 기관사 건강은 물론 시민 안전도 보장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오후 3시44분 소속 승무사무소인 개화산역으로 돌아온 것으로 윤 기관사는 이날 운전을 마쳤다. 이튿날은 야근이라 저녁 출근이다. 9일 단위로 돌아가는 근무 패턴에서 도시철도 기관사들은 주간근무 2차례, 야간근무, 비번, 휴무를 마친 뒤 다시 주간, 야간, 비번, 휴무를 거친다. 출퇴근 시간은 날마다, 분기마다 달라진다. 그 패턴이 60가지가 넘는다. 잠드는 시간, 식사시간도 날마다 바뀐다. 야근을 하는 날엔 막차와 첫차 사이 3~4시간 동안 차량기지의 지하 휴게실에서 쪽잠을 청한다. 그래도 그는 “기관사는 열차의 꽃”이라며 “내가 박원순 서울시장만큼 중요한 일을 하고 있다고 믿는다”고 했다. 서울 지하철 5~8호선을 운영하는 도시철도는 해마다 행정안전부의 지방공기업 경영평가 1위를 휩쓸어왔다. ‘시민과 함께 행복한 5678’이라는 슬로건에 충실했을 터이다. 5호선 왕십리역 승강장에 마련된 승객을 위한 쉼터 ‘행복지대’도 그 증거 중 하나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역은 지난달 기관사가 몸을 던져 숨진 곳이기도 하다. 윤 기관사가 기자를 돌아보며 말했다. “기관사가 행복해야 우리 시민들도 행복을 지키는 것 아니겠어요?” 글 엄지원 기자 umkija@hani.co.kr 사진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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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5호선 열차 기관사는 3시간여의 운행시간 내내 좁은 운전실에서 운행과 정차는 물론 승객 안내 및 스크린도어 개폐 여부 등을 확인하느라 쉴 새 없이 바쁘다. 기관사의 입장을 고려해 얼굴을 가렸다.(위) 지하철이 멈추면 정차역 앞면에 설치된 볼록거울을 통해 승객들의 승하차 상황을 살핀다.
탁한 공기, 진동, 쇳소리가
오감을 두루 짓누른다
그 와중에 방송하랴 문닫으랴
마음을 놓을 새는 없다 2분 지각!
관제실 재촉과 승객들 항의…
3시간 운행이 끝나면 또 3시간
이러다 열차 고장이라도 나면?
혼자라는 생각에 겁이 난다 승객들이 몸을 날려도, 기어이 기관사는 출입문을 닫아야 한다. “30초만 늦어도 승객 숫자가 갈리거든요.” 도시철도공사 소속으로 올해 경력 13년차인 윤상민(43) 기관사가 승객을 한아름 태운 뒤 1~2명의 ‘낙오자’들을 두고 떠나며 말했다. “이 역에서 10초 늦어지면 다음 역에선 기다리는 승객이 더 늘어 20초 늦어지고 그다음 역에선 30초 늦어지는 악순환이 거듭된다”는 설명이었다. 5호선 터널은 탄광의 갱도를 닮았다. 50.2㎞의 51개 역 모든 구간이 지하에 잠겨 있다. 게다가 1995년 개통을 시작한 서울 지하철 5~8호선 터널은 비용을 낮추기 위해 1기 지하철인 1~4호선 터널에 견줘 65㎝가량 낮게 설계됐다. 전동차 하나가 겨우 빠져나갈 정도로 좁은 터널을 바라보며 기관사는 3시간을 달린다. 한 평 반(5㎡)쯤 되는 운전실은 한낮인데도 컴컴했다. “형광등이 없나요?” 그제야 윤 기관사가 호롱불처럼 침침한 형광등을 켠다. 승객들에게 노출되는 게 꺼려져 형광등을 끈다고 했다. “승객들이 무서워요. 전부 거대한 적같이 느껴질 때도 있어요.” 앞차 운행이 늦어지거나 고장으로 잠시만 열차가 멈춰서도 승객들은 운전실 문을 발로 뻥뻥 차며 기관사를 재촉한다. 처음 기관사가 됐을 땐 그도 불을 밝힌 채 승강장의 아이들과 환한 웃음을 나누곤 했다. 좁은 운전실의 절반은 무전기·컴퓨터 등 전자기기들이 차지했다. 기관사가 몸 둘 곳은 낡은 갈색의 합성피혁 의자 하나다. 근무일지 등을 담은 가방도 둘 데가 마땅찮아 바닥 아무 데나 팽개쳐 둔다. 기자는 세심한 윤 기관사가 미리 준비해 온 낚시의자를 펴고 앉았다. 운전실에 오른 지 30분도 채 지나지 않아 불쾌지수가 올라간다. 텁텁한 공기, 전동차의 진동, 선로에서 들려오는 금속성 소음이 오감을 두루 짓눌렀다. “답답하죠? 전 편하게 사는 성격인데 저 같은 사람도 운전하기 너무 힘들 때가 있어요. 그럴 땐 차고 뭐고 다 버리고 뛰쳐나가고 싶어져요.” 윤 기관사가 기자를 다독였다. 전동차 운전실의 평균 이산화탄소 농도는 2200ppm 정도다. 노출 기준(5000ppm)엔 못 미치지만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300~400ppm)에 견줘 6~7배에 이르고 겨울철 주택의 실내 이산화탄소 농도(1000ppm)에 견줘도 2배나 농도가 짙다. 윤 기관사는 “산소가 부족하니 때로 멍해지는 기분을 느낀다”고 설명했다. 상황이 이런데도 도시철도공사는 2007년 환풍기 가동 횟수를 줄이고 터널 구간의 형광등을 끄는 등 절전으로 비용을 아꼈다며 국무총리 표창까지 받았다. 전동 그라인더로 쇠를 갈아내는 듯 불쾌한 쇳소리도 귀를 찔렀다. 곡선 구간을 지날 때 바퀴와 선로 사이의 마찰 때문에 생기는 소음이다. 운전실의 평균 소음은 60~70dB(데시벨) 수준이다. 역시 노출 기준(90dB)을 넘어서진 않지만 기관사들은 날마다 3시간 이상 이런 소음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된다. 그래도 귀마개를 할 순 없다. 안내방송도 해야 하고 관제실에서 이따금 전해지는 무선 연락에도 귀를 기울여야 한다. 윤 기관사는 “나도 소음성 난청이 있는데, 가는귀 먹은 기관사들끼리 얘기하면 목소리가 커진다”며 피식 웃었다. 초 단위 쪼개지는 일상, 분 단위 평가되는 노동
기관사의 일상은 분·초 단위로 쪼개진다. 시계를 자주 보는 습관은 직업병이다. 개화산사무소 소속인 윤 기관사는 이날 아침 6시38분부터 개화산역~상일동역 구간 왕복 열차를 운전한 뒤 낮 12시44분에 다시 개화산역에서 왕복 운전을 했다. 기관사의 근무 ‘다이야’(운행표·다이어그램) 중에서도 호된 일정이다. 운전을 앞둔 기관사는 열차 출발 30분 전 사무소에 출근해 그날의 운행 기록, 선로 상황 등을 점검한 뒤 근무복으로 갈아입고 10분 전 승강장 앞머리에 와 선다. 군자역을 지날 때쯤 관제실로부터 연락이 왔다. “열차가 늦어지고 있으니 빨리 가라네요.” 몇 분이나 늦었을까. “2분 늦었어요.” 1시간 남짓한 시간 동안 두번째 온 무전이었다. 두 차례 재촉을 당하자 기관사의 마음도 급해진다. 자동운전 시스템에서는 열차 속도를 수동으로 조절하지 못하기에 운행 간격을 조절하려면 출입문을 빨리 닫는 수밖에 없다. “이럴 때 사고가 나는 법이거든요. 더 조심하긴 해야죠.” 열차가 5분 늦으면 열차 지연으로, 10분 늦으면 사고로 기록된다. 기록은 고스란히 기관사의 근무평정에 영향을 미칠 뿐 아니라 18명으로 구성된 한 조, 150여명이 몸담은 사무소까지 모두 ‘연좌제’로 책임을 진다. “혼자 욕먹고 끝날 일이 아니라 사고가 나면 모두 책임을 져요. 입사할 땐 고장나면 ‘당황하지 말라’는 게 제1원칙이었는데 지금은 ‘무조건 빨리 고쳐라’가 지상명령이죠.” 종착지인 상일동역에 도착하자 기관사의 몸놀림이 바빠졌다. 1시간30분의 편도 운전이 끝났다. 2시6분에 도착해야 하는데 시계를 보니 2시9분이다. 돌아가는 열차는 12분 출발이니 3분 동안 차를 정위치하고 160m 길이의 열차 가운데를 가로질러 반대편 운전실로 이동해야 할 참이었다. 윤 기관사가 그새 “화장실 다녀오라”고 권했다. 화장실은 한 층을 올라가야 하는데 주어진 시간은 3분! 그야말로 엄두가 나지 않아 꾹 참고 기관사의 뒤를 따랐다. 이런 까닭에 기관사들은 운전 전후에 물 마시는 걸 삼간단다. “이번 역은 8호선 열차로 갈아타실 수 있는 천호, 천호역입니다.” 윤 기관사가 안내방송을 위해 마이크를 들었다. 대부분 녹음방송으로 안내하지만 환승역 등 특별히 주의를 기울여야 할 땐 기관사가 육성으로 안내한다. “육성으로 해야 승객들이 그나마 주의를 기울여요.” 방송을 해줘도 못 내린 승객들이 때론 운전실로 직접 전화를 건다. “안내도 제대로 안 해주고, 기관사는 뭐하러 있느냐”는 항의다. 안전이 기관사의 필요충분조건인 때도 있었다. 자동운전을 넘어 무인운전까지 기술적으로 가능해지면서 회사가 또는 사회가 기관사에게 요구하는 기대치도 높아졌다. 1995년 개통한 5~8호선은 1974년 개통한 1~4호선과 달리 처음부터 자동운전을 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췄다. 회사는 “자동운전이니 두 명이 탈 이유가 없다”며 차장 없이 기관사가 혼자 운전하는 1인 승무 시스템을 도입했다. 그러나 자동운전 중에 실제 ‘자동’으로 조절되는 것은 운행 속도와 정차뿐이다. 운행시간 내내 기관사는 마음을 놓을 틈이 없다. 기자의 질문에 답하면서도 윤 기관사의 시선은 정면에 꽂혀 있었다. 차량이 정지선에 맞춰 멈춰서면 출입문은 자동으로 열리지만 승객이 무사히 타는지 폐회로텔레비전을 확인한 뒤 안내방송을 하고 출입문을 닫아야 하기 때문이다. “평소엔 문제가 없어요. 하지만 열차가 고장나거나 지연될 때 혼자 있는 게 가장 두려워요.” 출퇴근 시간 5호선 열차엔 2500~3000여명의 승객이 올라탄다. 수천명을 싣고 가다 열차가 고장나도 수리는 물론 관제실 연락, 승객 통제, 안내방송까지 모두 기관사 혼자의 몫이다. 건강에 별다른 이상이 없는 윤 기관사도 3시간짜리 운전을 하루 2차례 도는 날이면 2회째 운전에서 돌아오는 길엔 집중력이 바닥난다. “이쯤 되면 습관적으로 운전하는 거죠.” 자연스레 공황장애로 자살한 동료 기관사 이아무개씨에 대한 얘기가 나왔다. 윤 기관사는 “2003년에 동료 기관사가 선로에 뛰어들었을 땐 예외적인 사건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번엔 특정인만의 문제가 아니라 나도 그럴 수 있겠다 싶어 겁이 왈칵 났다”며 한숨을 쉬었다. ‘2인 승무제’ 도입해야 모두가 행복하다
1인 승무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전문가들은 “9년 전 대구지하철 사고 당시에도 기관사 혼자 있어 현장을 수습하기 어려워 참극이 벌어졌다”고 설명한다. 실제로 한 연구결과를 보면 1인 승무 기관사의 사고 경험률이 46%였고 2인 승무는 26%로 큰 차이가 났다. 이 때문에 도시철도노동조합은 일본의 도쿄처럼 혼잡률(전동차 안에 승객이 가득 찬 정도)에 따라 승객이 많이 타는 일부 구간, 일부 시간대에라도 차장과 기관사가 함께 타는 2인 승무제를 도입해야 기관사 건강은 물론 시민 안전도 보장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오후 3시44분 소속 승무사무소인 개화산역으로 돌아온 것으로 윤 기관사는 이날 운전을 마쳤다. 이튿날은 야근이라 저녁 출근이다. 9일 단위로 돌아가는 근무 패턴에서 도시철도 기관사들은 주간근무 2차례, 야간근무, 비번, 휴무를 마친 뒤 다시 주간, 야간, 비번, 휴무를 거친다. 출퇴근 시간은 날마다, 분기마다 달라진다. 그 패턴이 60가지가 넘는다. 잠드는 시간, 식사시간도 날마다 바뀐다. 야근을 하는 날엔 막차와 첫차 사이 3~4시간 동안 차량기지의 지하 휴게실에서 쪽잠을 청한다. 그래도 그는 “기관사는 열차의 꽃”이라며 “내가 박원순 서울시장만큼 중요한 일을 하고 있다고 믿는다”고 했다. 서울 지하철 5~8호선을 운영하는 도시철도는 해마다 행정안전부의 지방공기업 경영평가 1위를 휩쓸어왔다. ‘시민과 함께 행복한 5678’이라는 슬로건에 충실했을 터이다. 5호선 왕십리역 승강장에 마련된 승객을 위한 쉼터 ‘행복지대’도 그 증거 중 하나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역은 지난달 기관사가 몸을 던져 숨진 곳이기도 하다. 윤 기관사가 기자를 돌아보며 말했다. “기관사가 행복해야 우리 시민들도 행복을 지키는 것 아니겠어요?” 글 엄지원 기자 umkija@hani.co.kr 사진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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