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병승씨
‘최병승씨 불법파견’
7년 걸려 확정 됐는데
“부당 해고는 아니다”
시간끌기용 행정소송 결정
현대자동차 사내하청업체에서 일하다 해고된 지 7년 만에 대법원과 중앙노동위원회(중노위)에서 현대차 직원으로 인정된 최병승(36·사진)씨에 대해 회사 쪽이 또다시 행정소송을 내기로 했다. 이번 소송으로 최씨의 정규직 전환은 무산될 위기에 처했다.
13일 현대차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지난 2일 노동사건을 심판하는 준사법기관인 중노위가 ‘현대차가 최씨를 해고한 것은 부당해고’라며 ‘원직에 복직시키고 임금 상당액을 지급하라’고 명령한 데 대해 현대차가 행정소송을 내기로 했다. 회사는 지난 11일 사보 ‘함께 가는 길’을 통해 “중노위 판정문이 도착하는 대로 최씨에 대해 행정소송 등 조처를 취하겠다”고 밝혔다. 중노위 판정문은 조만간 노사에 전달될 예정이다.
하지만 이번 현대차의 행정소송은 ‘시간 끌기’용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최씨는 2005년 2월 불법파견에 따른 정규직 전환을 요구하다 하청업체에서 해고된 뒤 노동위원회에 현대차를 상대로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했다. 중노위는 “현대차를 최씨의 사용자로 볼 수 없다”며 각하 판정했지만, 대법원은 지난 2월 최종적으로 최씨의 손을 들어줬다. 최씨의 경우 불법파견에 해당하므로, ‘2년 이상 파견노동을 했으면 원청에 고용된 것으로 간주한다’는 옛 파견법 조항에 따라 최씨는 이미 2004년부터 현대차 직원이 된 것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대법원 판결은 ‘최씨가 현대차의 직원이라는 점’은 분명히 했지만, 그에 대한 해고가 부당한지는 명확히 판단하지 않았다. 이 점에 대해선 지난 2일 중노위가 부당해고를 인정하는 결정을 내렸다. 앞서 대법원도 “현대차는 최씨와의 근로관계가 성립했는데도 이를 부정하면서 사업장 출입 자체를 봉쇄해 일할 기회를 빼앗는 등 해고를 했다”고 밝혀, ‘부당’이라는 표현만 쓰지 않았지 사실상 부당해고로 판단했다. 결국 모든 쟁점에 대해 최씨의 주장이 옳다는 판단이 내려진 셈이다.
1900여명 하청노동자
‘사용자 인정’ 소송과
노조와 정규직 전환
교섭 앞두고 ‘꼼수’ 지적
그럼에도 현대차는 이번 중노위 결정에 대해 다시 행정소송에 나선 것이다. 원칙적으로는 중노위 결정에 불복할 경우 행정소송을 낼 수 있지만, 최씨의 경우 중노위 결정과 대법원 판결에 비춰보면 승소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김철희 노무사는 “법리적으로는 최씨가 ‘현대차 직원이고 부당해고를 당했다’는 점이 명확해진 만큼 소송에 가도 최씨가 패소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며 “현대차가 법을 무시하고 시간 끌기를 하겠다는 의도”라고 말했다.
당사자인 최씨는 “소송으로 부당해고를 인정받기 위해 이미 7년이란 세월이 걸렸는데, 또다시 소송에 들어가면 10년이 훌쩍 넘어가는 것”이라며 “절대로 정규직화해 주지 않겠다는 회사의 메시지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그렇다면 현대차는 왜 사회적 비난을 감수하면서까지 무리한 행동을 하는 것일까? 최씨가 정규직이 되면, 8000여명의 현대차 사내하청 가운데 불법파견 노동자로서 정규직이 되는 첫 사례가 된다. 최씨에 대한 대법원 판결 이후 ‘정규직이 될 수 있다’는 희망에 부푼 1900여명의 하청노동자들이 현대차를 사용자로 인정해 달라는 소송에 들어갔는데, 최씨가 정규직이 될 경우 이 소송은 물론 올해 불법파견 노동자의 정규직 전환을 위한 노사 교섭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사쪽은 판단하고 있다.
현대자동차 정규직 노조와 비정규직 노조는 지난달 25일 ‘모든 사내하청을 정규직으로 전환한다’는 내용의 공동요구안을 확정해 사쪽에 통보했으며 15일 노사 상견례가 예정돼 있다. 현대차의 사내하청 문제는 고용 유연성 등을 둘러싼 전체 노동계와 경영계의 ‘대리전’ 성격을 띠고 있기 때문에 주목을 받고 있다. 300인 이상 사업장 가운데 41.2%가 현대차처럼 사내하청을 사용하고 있는 만큼, 현대차 투쟁은 전체 노동시장에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전국금속노조 관계자는 “노사 교섭을 앞두고 최씨를 정규직으로 전환하면 하청노동자들의 기대심리가 커져 응집력이 강해질 것을 우려해 최씨를 희생양으로 삼는 것”이라며 “법을 지키고 좋은 일자리를 창출하는 등 현대차가 대기업으로서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방향으로 경영기조가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김소연 기자 dandy@hani.co.kr
현대차 하청노동자 최병승씨 소송 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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