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8일부터 울산 북구 양정동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명촌중문 근처의 송전탑에서 고공농성중인 현대차 사내하청 해고노동자 최병승(왼쪽 사진)씨와 현대차 비정규직 노조 천의봉 사무국장이 19일 서로의 모습을 촬영한 사진. 최병승 트위터 갈무리
현장 / 현대차 비정규직 철탑 고공농성
송전탑에 안전벨트 묶고 매달려
비·바람 피할 데 없고 감전 위험
앉았다 일어섰다 말곤 못 움직여
회사, 가족·친구 통해 잇단 회유
“법 어기고 버티는 회사 이기고싶다” 21일 오후 울산 북구 양정동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명촌중문 근처의 송전탑은 강한 바람이 불자 부르르 몸을 떨었다. 앙상한 철근만으로 짜인 50m 높이의 송전탑 중간쯤, 아파트로 치면 8~9층 높이에 매달린 현대차 사내하청 해고노동자 최병승(36)씨와 현대차 비정규직노조 천의봉(31) 사무국장은 거센 바람이 불 때마다 날아갈 듯 위태로워 보였다. 천 사무국장은 “송전탑 옆으로 난 철길로 기차가 지나가기만 해도 송전탑이 아래부터 들썩거려 불안하다”고 말했다. 두 사람은 번지점프를 할 때 묶는 안전벨트로 사각의 송전탑 귀퉁이에 몸을 묶고 있다. 송전탑에 오른 지 닷새째, 앉았다 일어섰다 하는 것 말고는 몸을 움직이는 게 불가능한 탓에 다리에 마비가 자주 온다. 20일 오후엔 김진숙 민주노총 지도위원이 다녀갔다. 송전탑은 지난해 1월 김 지도위원이 올랐던 한진중공업 85호 크레인보다도 위태롭다. 85호 크레인에는 좁지만 비바람을 피할 수 있는 조종실이 있었고, 짧으나마 거닐 수 있는 계단과 복도도 있었다. 하지만 송전탑에는 비나 바람을 피할 공간이 아예 없다. 철근과 철근 사이 텅 빈 공간을 가로 1m, 세로 2m 넓이 합판으로 막아 겨우 다리를 뻗고 앉을 수 있을 뿐이다. 아찔한 높이에 매달려 있는 이들을 끌어내리려 현대차는 지난 17일 추락을 막기 위한 안전장비도 갖추지 않은 경비용역업체 직원들을 송전탑으로 올려보내기도 했다. 최씨는 “고공농성중인 비정규직 노동자든, 우리를 끌어내리려는 경비 노동자든 누구든 떨어져 죽어도 된다는 거냐”며 “현대차가 상식을 가지고 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비가 올 것이라는 예보에 비정규직노조가 이날 텐트를 올려보내려 했지만 현대차는 직원 400여명을 보내 이를 가로막았다. 비정규직노조 관계자는 “월요일에 비가 온다는데 벼락까지 치면 감전의 가능성이 있어 방전복을 올려보낼까 고민중”이라며 “합판도 본드로 압축한 거라 물에 젖으면 부서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런 불안에 비하면 식사나 용변 등 생리적인 현상을 해결하는 것은 차라리 견딜 만한 일이다. 최씨는 “뻥 뚫린 공간에서 생리 현상을 해결하는 게 민망한 게 사실”이라면서도 “땅보다 불편하긴 하지만 버틸 만하다”며 헛헛하게 웃었다. 현대차는 두 사람의 가족과 지인들을 통한 회유와 압박을 계속하고 있다. 두 사람이 농성을 시작한 지 하루 뒤인 18일 밤에는 천 사무국장이 속한 하청업체 사장과 현대차 직원이 천 사무국장의 홀어머니가 사는 경북 의성 집을 찾아가 “송전탑에서 내려오면 정규직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천 사무국장은 “어머니에게 전화로 ‘여기서 내려가면 죽도 밥도 안 된다. 나중에 내려가서 어디 조용한 데 놀러 가자’고 말씀드리기는 했는데 걱정을 많이 하신다”고 말했다. 하루에도 몇번씩 ‘의성경찰서에서 전화가 와서 너를 내려오게 하라고 한다’는 친구들의 전화도 받고 있다. 최씨와 천 사무국장을 버티게 하는 것은 ‘일하고 싶다’는 의지다. 최씨는 “위에서 공장을 자주 내려다본다”며 “같이 일하고 투쟁했던 동지들과 들어가서 함께 일하고 술도 한잔하고 싶다”고 씁쓸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어 최씨는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고용하라는 결정을 현대차가 받아들이지 않는 동안 무수한 사람들이 고통을 겪었다”며 “이렇게 법을 어기고 남에게 피해를 입히면서 버티는 현대차를 꼭 이기고 싶다”고 말했다. 오는 26일에는 이들과 뜻을 함께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송전탑으로 모여들 계획이다. 현대차 울산공장뿐 아니라 전주공장과 아산공장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하루 전면파업을 벌이고 송전탑 아래 모이는 ‘울산공장 포위의 날’을 준비하고 있다. 울산/신동명 허승 기자 raison@hani.co.kr <한겨레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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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람 피할 데 없고 감전 위험
앉았다 일어섰다 말곤 못 움직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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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 어기고 버티는 회사 이기고싶다” 21일 오후 울산 북구 양정동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명촌중문 근처의 송전탑은 강한 바람이 불자 부르르 몸을 떨었다. 앙상한 철근만으로 짜인 50m 높이의 송전탑 중간쯤, 아파트로 치면 8~9층 높이에 매달린 현대차 사내하청 해고노동자 최병승(36)씨와 현대차 비정규직노조 천의봉(31) 사무국장은 거센 바람이 불 때마다 날아갈 듯 위태로워 보였다. 천 사무국장은 “송전탑 옆으로 난 철길로 기차가 지나가기만 해도 송전탑이 아래부터 들썩거려 불안하다”고 말했다. 두 사람은 번지점프를 할 때 묶는 안전벨트로 사각의 송전탑 귀퉁이에 몸을 묶고 있다. 송전탑에 오른 지 닷새째, 앉았다 일어섰다 하는 것 말고는 몸을 움직이는 게 불가능한 탓에 다리에 마비가 자주 온다. 20일 오후엔 김진숙 민주노총 지도위원이 다녀갔다. 송전탑은 지난해 1월 김 지도위원이 올랐던 한진중공업 85호 크레인보다도 위태롭다. 85호 크레인에는 좁지만 비바람을 피할 수 있는 조종실이 있었고, 짧으나마 거닐 수 있는 계단과 복도도 있었다. 하지만 송전탑에는 비나 바람을 피할 공간이 아예 없다. 철근과 철근 사이 텅 빈 공간을 가로 1m, 세로 2m 넓이 합판으로 막아 겨우 다리를 뻗고 앉을 수 있을 뿐이다. 아찔한 높이에 매달려 있는 이들을 끌어내리려 현대차는 지난 17일 추락을 막기 위한 안전장비도 갖추지 않은 경비용역업체 직원들을 송전탑으로 올려보내기도 했다. 최씨는 “고공농성중인 비정규직 노동자든, 우리를 끌어내리려는 경비 노동자든 누구든 떨어져 죽어도 된다는 거냐”며 “현대차가 상식을 가지고 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비가 올 것이라는 예보에 비정규직노조가 이날 텐트를 올려보내려 했지만 현대차는 직원 400여명을 보내 이를 가로막았다. 비정규직노조 관계자는 “월요일에 비가 온다는데 벼락까지 치면 감전의 가능성이 있어 방전복을 올려보낼까 고민중”이라며 “합판도 본드로 압축한 거라 물에 젖으면 부서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런 불안에 비하면 식사나 용변 등 생리적인 현상을 해결하는 것은 차라리 견딜 만한 일이다. 최씨는 “뻥 뚫린 공간에서 생리 현상을 해결하는 게 민망한 게 사실”이라면서도 “땅보다 불편하긴 하지만 버틸 만하다”며 헛헛하게 웃었다. 현대차는 두 사람의 가족과 지인들을 통한 회유와 압박을 계속하고 있다. 두 사람이 농성을 시작한 지 하루 뒤인 18일 밤에는 천 사무국장이 속한 하청업체 사장과 현대차 직원이 천 사무국장의 홀어머니가 사는 경북 의성 집을 찾아가 “송전탑에서 내려오면 정규직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천 사무국장은 “어머니에게 전화로 ‘여기서 내려가면 죽도 밥도 안 된다. 나중에 내려가서 어디 조용한 데 놀러 가자’고 말씀드리기는 했는데 걱정을 많이 하신다”고 말했다. 하루에도 몇번씩 ‘의성경찰서에서 전화가 와서 너를 내려오게 하라고 한다’는 친구들의 전화도 받고 있다. 최씨와 천 사무국장을 버티게 하는 것은 ‘일하고 싶다’는 의지다. 최씨는 “위에서 공장을 자주 내려다본다”며 “같이 일하고 투쟁했던 동지들과 들어가서 함께 일하고 술도 한잔하고 싶다”고 씁쓸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어 최씨는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고용하라는 결정을 현대차가 받아들이지 않는 동안 무수한 사람들이 고통을 겪었다”며 “이렇게 법을 어기고 남에게 피해를 입히면서 버티는 현대차를 꼭 이기고 싶다”고 말했다. 오는 26일에는 이들과 뜻을 함께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송전탑으로 모여들 계획이다. 현대차 울산공장뿐 아니라 전주공장과 아산공장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하루 전면파업을 벌이고 송전탑 아래 모이는 ‘울산공장 포위의 날’을 준비하고 있다. 울산/신동명 허승 기자 raison@hani.co.kr <한겨레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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