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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노동

“유혹·협박에 밀려 촉탁직 전환…7달뒤 해고”

등록 2013-04-16 20:18수정 2013-04-16 22:42

현대차 촉탁직 해고노동자의 절규
사내하청 15개월 되자 압박
정규직 되고 싶어 저항도 못해
“어디 가서 하소연할 데도 없다”
이상명(가명·31)씨는 지난해 7월15일을 잊을 수 없다. 현대자동차 울산공장에서 사내하청 노동자로 일하던 그의 신분이 촉탁계약직(촉탁직)으로 바뀐 날이다. 그리고 7달 뒤인 올해 2월, 그는 변변한 항의 한마디 못하고 쫓겨났다. 울산공장에서 같은 촉탁직으로 일하다 비슷한 시기에 해고된 뒤 지난 14일 스스로 생을 마감한 공아무개(29)씨 사건을 꺼내자 그는 긴 한숨부터 쉬었다. “우리들이 이렇게 파리 목숨입니다.”

이씨가 현대차와 처음 인연을 맺은 건 2011년 4월이었다. 울산공장 엔진생산부에서 만든 새 엔진을 2.5t 트럭에 실어 스타렉스를 만드는 4공장과 제네시스·에쿠스를 생산하는 5공장으로 나르는 일을 했다. 늘 현대차 공장에서 일했지만, 소속은 사내하청업체였다. 고등학교 졸업 뒤 작은 공장에서만 일하는 게 성에 차지 않던 이씨에게 ‘현대차’는 소중한 직장이었다.

사내하청업체에서 1년3개월 정도 일한 지난해 7월, 회사는 ‘촉탁직 전환’이라는 당근을 내밀었다. 단 하루라도 불법파견 노동을 하면 직접고용 의무가 생기는 개정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파견법)이 시행되기 보름 전이었다. 이씨와 같은 고용형태가 불법파견이라는 법원 판결이 나오던 차다. “현대차가 직접 고용을 하는 거다”, “현대차 정규직과 똑같은 혜택을 받는다”는 회사의 감언이설이 있었지만, 불안한 마음에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그러자 “잘리기 싫으면 촉탁직으로 전환하라”는 회사의 협박이 바로 날아들었다. 이때 엔진생산부에서 일하던 60명 가운데 2년 미만 경력의 사내하청 노동자 20여명이 촉탁직으로 전환했다.

촉탁직으로 바뀐 뒤 처음엔 연봉이 1000만원 정도 늘어나 내심 기뻤다. 하지만 곧 생각이 바뀌었다. ‘정규직 처우’는 말뿐이었다. 정규직 노동자들이 하기 싫어하는 뒷정리와 청소는 늘 촉탁직의 몫이었다. 저항의 목소리를 내고 싶었지만 ‘근태가 좋으면 정규직으로 전환할 수 있다’는 장밋빛 희망이 그에게 침묵을 강요했다.

지난 2월 일방적인 해고 통보를 받고 상담을 하러 고용노동부 울산지청에 찾아가자 직원은 대뜸 실업 수당 코너를 안내했다. “거기 찾아가는 70~80%가 다 현대차에서 잘린 촉탁직이에요. 직원들이 현대차에서 왔다고 하면 단번에 알아보고 실업수당 코너로 보냅니다.”

아반떼를 만드는 울산 3공장에서 사내하청으로 타이어 장착 업무를 했던 신영인(가명·30)씨도 이씨처럼 촉탁직으로 전환했다가 지난 2월 해고당했다. 작은 기계공장에 취업한 신씨는 공씨의 죽음에 대해 “조금만 더 버텼으면 좋았을 텐데…. 어떻게든 살아야죠. 나이도 비슷한데 마음이 아픕니다”라며 안타까워했다.

이들처럼 촉탁직으로 현대차 울산공장에서 일하는 이들은 1400여명으로 추산된다. 현대차 쪽은 사내하청 노동자에게 대법원이 불법파견 판결을 내리고 정규직 전환에 대한 사회적 압박이 강해지자 이들을 촉탁직으로 전환한 뒤 계약기간이 끝나면 해고하고 있다.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정규직 노동자의 고용 안정을 위한 ‘인간 쇼바’ 기능을 하는 동안 이들 촉탁직은 ‘쇼바의 쇼바’로 쓰이다 버림받는 처지다.

일부 노동자는 촉탁직 전환을 거부하다 해고당하자 법원에 소송을 냈다. 하지만 대법원 판결까지 받으려면 또 몇 년이 걸릴 게 틀림없다. 공익인권법재단 ‘공감’의 윤지영 변호사는 “외형상 노동자 스스로 촉탁직을 선택한 것이기 때문에 강요에 의한 것이 입증되지 않으면 법률적으로도 보호받기 힘들다”고 말했다.

금속노조는 이날 성명을 내어 “현대차는 촉탁직 기간제 노동자들의 열악한 노동실태를 근본적으로 개선하는 대책과 함께 고인의 죽음 앞에 엄숙히 사과하라”고 요구했다.

이정국 기자 jg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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