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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노동

길잃은 민주노총…산별노조 ‘삐걱’ 지도부 공백 장기화

등록 2013-05-01 22:02수정 2013-05-02 08:10

제123회 세계 노동절인 1일 오후, 서울광장에서 전국노동자대회를 마친 민주노총 금속노조 조합원들과 대학생들이 대한문 앞 쌍용자동차 노동자 분향소로 향하자 경찰이 막아서며 최루액을 뿌리고 있다. 이에 앞서 민주노총은 서울광장에서 ‘선언하라 권리를! 외쳐라 평등세상을!’이라는 슬로건을 내세운 노동자대회를 열고,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산업재해 사망 처벌법 강화, 최저임금 현실화, 의료공공성 강화 등을 요구하는 권리 선언을 발표했다.  김태형 기자 <A href="mailto:xogud555@hani.co.kr">xogud555@hani.co.kr</A>
제123회 세계 노동절인 1일 오후, 서울광장에서 전국노동자대회를 마친 민주노총 금속노조 조합원들과 대학생들이 대한문 앞 쌍용자동차 노동자 분향소로 향하자 경찰이 막아서며 최루액을 뿌리고 있다. 이에 앞서 민주노총은 서울광장에서 ‘선언하라 권리를! 외쳐라 평등세상을!’이라는 슬로건을 내세운 노동자대회를 열고,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산업재해 사망 처벌법 강화, 최저임금 현실화, 의료공공성 강화 등을 요구하는 권리 선언을 발표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학교비정규직노조 배제 움직임에 “쫓아내지 말라” 눈물 호소

‘1산업 1산별노조’ 원칙 무너지고
정치세력화, 조합원 공감 못얻어
대기업 정규직 중심으로 꾸려져
비정규직 조직화할 주체 부족
“18년 깃발 다시 세워야” 지적도
지난 3월20일 경기도 과천시 시민회관.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대의원 500여명이 모인 자리에서 전국학교비정규직노조(학비노조) 조합원 30여명이 눈물로 호소를 했다. “제발 민주노총에 남아 있게 해주세요. 5월까지 (소속될) 연맹을 정하지 못하면 쫓겨나야 한다니요.” 19년차 학교 조리사인 박금자 학비노조 위원장과 조합원들은 “민주노총이 말로는 비정규직을 위한다면서 되레 비정규직 노조를 내쫓는 게 말이 되느냐. 우리는 학교 현장에서도 홀대받고, 이제 민주노총에서조차 이렇게 홀대받아야 하느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학비노조 조합원의 99%는 비정규직 여성이고 대부분 40~50대다. 박 위원장도 2010년 광주·전남지역 학교 현장에서 발로 뛰어 노조를 만들었다. 2011년 4월 학비노조를 출범시킨 뒤 2년 만에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를 2만7000명 가까이 조직해냈다. 학비노조는 급식실의 영양사·조리사·조리원과 사서·행정보조원·스포츠강사 등 80여개 직업군으로 이뤄졌는데, 급식실 조합원이 가장 많다.

노동절인 1일 박금자 학비노조 위원장은 “민주노총은 비정규직을 조직화하겠다며 지난 몇년간 20억여원을 썼는데, 겨우 몇천명을 끌어들이는 데 그쳤다. 우리는 불과 2년 만에 3만명 가까운 여성 비정규직을 조직했다. 민주노총보다 우리가 훨씬 큰 일을 한 것이다”라며 섭섭함을 감추지 않았다.

민주노총에 가입하려는 학비노조한테 민주노총은 지난 1월 “기존 16개 산하 연맹 가운데 한 곳에 가입하지 않으면 규약대로 조처하겠다”고 결정했다. 쫓아낼 수도 있다는 말이다. 학비노조는 지난해 1월 민주노총 중앙집행위원회의 결정에 따라 전국교육노조협의회(전교조·대학노조 등 교육 관련 노조 모임)에 참가해 민주노총 구성원으로서의 권리와 의무를 행사해 왔다. 중앙집행위원회는 2013년 정기 대의원대회 전까지 학비노조를 포함한 전국교육노조연맹(가칭)을 결성하겠다는 결정도 내렸다. 하지만 전국교육노조연맹은 결국 무산됐다. 참여 노조들이 각자의 특수성을 내세우며 연맹을 결성하는 데 뜨뜻미지근한 반응을 보였기 때문이다. 학비노조는 차라리 독자적으로 17번째 새로운 연맹을 만들려고 하지만, 민주노총은 큰 단위의 산별노조를 지향한다는 원칙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거부하고 있는 상황이다.

총연맹인 민주노총이 중재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사이, 이미 조직된 비정규직 노동자 2만7000여명이 민주노총을 떠나야 할 처지에 놓인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창립 18년을 맞은 민주노총이 지금 어디에 서 있는지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노동 현장에서 제기된다.

이뿐만이 아니다. 오는 4일이면 최병승·천의봉씨 등 현대자동차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철탑농성이 200일째를 맞는데다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의 죽음의 행렬이 끊이지 않는 등 중대한 노동 현안은 쌓여만 가는데도, 노동 현장에서 민주노총이 보이지 않는다는 비판이 나온다. 노동 핵심 현안에서 존재감을 잃었다.

상황이 이렇게 된 데는 지난해 11월 초 김영훈 위원장이 사퇴한 뒤 여섯달째 이어지고 있는 민주노총 지도부의 공백 상태가 큰 구실을 했다. 민주노총은 4월23일 서울 노원구민회관에서 임시대의원대회를 열어 이갑용-강진수(위원장-사무총장) 후보 짝에 대한 찬반투표를 했지만 투표자 수가 재적 과반에 못 미쳐 지도부 선출이 무산됐다. 투표자 수 미달로 지도부 선출에 실패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노동계는 이를 두고 민주노총의 고질적 문제인 정파싸움과 대중성 상실이 불러온 참화로 본다. 우선 당일 대의원대회 자체가 가까스로 성립됐다. 918명 대의원 가운데 겨우 절반을 넘는 인원이 참석해 대의원대회가 성사됐다. 지도부 선출이라는 정치적으로 가장 중요한 행사의 참여율이 저조했던 것이다. 대의원들의 무관심이 어느 수준인지 알 수 있다.

 이어 투표수가 재적 인원의 과반에 못 미쳐 개표조차 하지 못하고 지도부 선출에 실패한 점은 정파싸움의 결과라는 해석이 우세하다. 대의원대회에 출석은 한 뒤 투표는 하지 않음으로써 이갑용 후보조가 단독출마한 선거 자체를 무산시키고 재선거를 유도하려는 일부 정파가 의도적으로 한 일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이들 정파가 시대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면서 대중으로부터 멀어졌다는 평가는 지난해 7월 민주노총이 연 ‘노동운동과 정파’ 토론회에서도 지적됐다. 즉 ‘노동해방, 변혁, 자주민주통일’ 등 1980년대식 추상적 목표로는 21세기의 현실에서 대중을 설득할 수 없다는 평가와 함께, 장기적 전략의 수립보다는 다른 정파를 비난하고 발목을 잡으면서 스스로의 존재를 강화시키는 악순환이 계속된다는 혹독한 평가가 나왔다.

 출석은 하고 투표를 하지 않은 학비노조 일부 대의원도 책임에서 자유롭지는 않다. 학비노조 관계자는 “대의원대회에 대의원 16명 가운데 5명이 참석했지만 오후 2시 예정시간을 넘겨 3시30분께 회의가 열리는 바람에 투표를 못하고 나왔다. 6월 총파업 투쟁을 앞두고 오후 4시부터 학교별 총파업 준비모임을 진행하기 위해서였다”고 해명했다.

 좀더 근본적으로는 민주노총이 1995년 세워질 때 목표로 삼은 ‘산별노조 체제로의 전환’이 자리를 제대로 잡지 못한 탓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산별노조는 사업장 단위의 노동운동을 벗어나 같은 산업에서는 단일한 1개의 노조를 만들어 공동 대응한다는 ‘1산업 1산별노조’ 원칙을 내세웠다. 하지만 금속과 보건의료 등을 빼고는 시간이 지나면서 ‘무늬만 산별’일 뿐 실질적으로는 사업장 단위 노조와 다르지 않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1산업 1산별노조 원칙도 흐릿해져 갔다. 현재 민주노총의 16개 연맹 중 공공연맹과 금속노조에는 분류상 다른 산별연맹에 속해야 할 노조들이 섞여들어와 있다.

 ‘기업 프렌들리’를 내세운 이명박 정부의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개정도 산별 체제 약화에 큰 구실을 했다. 이전에는 노조 전임자의 임금 문제를 노사가 자율적으로 협의했으나, 법 개정 이후에는 조합원 수에 연동해 정부가 정하는 수 이상의 전임자를 둘 수 없도록 했다. 상급 노조에 상근자를 파견할 때도 모두 조합비로 임금을 지급해야 하다 보니 재정 부담 탓에 산별노조 운동도 따라서 약화된 것이다. 그 영향으로 민주노총은 상근자 40여명의 임금을 두달치 이상 체불한 상태다.

 한지원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실장은 “산별노조를 통해 공공부문은 정부를 상대로, 민간부문은 사용자단체를 상대로 중앙교섭을 벌이는 게 목표였다. 이를 통해 비정규직 문제와 같은 초기업적 문제를 풀어갈 생각이었는데, 금속·보건·공공부문 등에서의 교섭은 불안정하고 사용자들은 계속 교섭을 기피하고 있다. 민주노총의 지침이 산별로 내려가 현안들이 풀려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민주노총이 16개 연맹을 끌어당기는 구심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다.

 18년 전 노동자의 단결을 내건 민주노총의 깃발이 그새 많이 훼손됐다는 비판도 인다. 대기업 노조 중심의 활동이 주축을 이루다 보니 비정규직 문제를 좀더 적극적으로 껴안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김승호 ‘전태일을 따르는 사이버노동대학’ 대표는 “민주노총이 대기업 정규직 중심이다 보니 비정규직을 조직화할 주체들이 부족한 것 같다. 민주노총이 내부의 다양한 운동단체를 인정하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노동계에서는 민주노총이 이참에 ‘리모델링을 넘어 원점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김승호 대표는 “김영훈 전 위원장이 힘을 쓴 민주노총의 정치세력화는 완전히 실패했다. 60만 조합원을 가지고 정치세력화한다고 집권을 하겠는가? 조직의 힘을 키우고 강화하는 게 더 중요하다. 정치세력화 실패에 대한 정확한 평가와 성찰이 있어야 민주노총이 새롭게 태어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비판의 접점은 민주노총 상층부의 변화 요구로 이어진다. 이남신 비정규노동센터 소장은 “민주노총이 중소영세 미조직·비정규직의 전략조직화 사업을 하기로 한 것은 옳다. 정규직 사업장에서 비정규직들을 조직하는 게 중요한데 이게 말처럼 되지 않는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파 갈등을 넘어 통합적 역할을 할 지도부가 먼저 들어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파 간의 갈등을 넘고 산별노조 운동의 깃발을 다시 세우는 동시에 비정규직 노동자를 적극 보듬어 안기 위해서는 민주노총 앞에 수많은 과제가 놓여 있는 셈이다.

손준현 기자dus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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