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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노동

현대차 비정규직 해결, ‘뒷짐진 검찰’이 걸림돌

등록 2013-05-02 20:27수정 2013-05-02 21:19

불법파견 수사 지지부진
법학교수 35명 정몽구 회장 고발
“검찰이 눈치보는 것 같다
일반사건 경우라면 3년동안
피고발인 조사 안할 수 있나”

수사 속도 안내는 검찰
“칼로 무자르는 것처럼 만만찮아
정상적으로 울산노동청 지휘”

지난 2월5일 밤 9시, 계열사 빵집을 부당 지원한 혐의를 받은 신세계그룹 정용진(44) 부회장이 12시간의 조사 끝에 서울중앙지검을 빠져나갔다. 그 뒤 서울지방노동청은 불법파견과 노조 사찰 등 부당노동행위 혐의 조사를 위해 이마트 본사와 지점 13곳 등을 세 차례에 걸쳐 압수수색했다. 한 달여 뒤인 3월25일, 이마트는 진열 도급사원 9100여명을 정규직으로 전환한다고 발표한다. 그 뒤 서울지방노동청이 정 회장의 소환조사를 검토하고 있다는 소식이 나오자, 이마트는 4월4일 노조 쪽과 노조활동 보장 및 해고자 복직에 합의했다. 5월2일에는 이마트 의류판매 직원 1657명의 정규직 전환을 발표했다.

이 흐름을 보면 한 가지 법칙을 발견할 수 있다. 검찰과 고용노동부의 조사가 있고 나서 이마트의 전향적인 조처가 뒤따른 것이다. 사주 소환과 압수수색 같은 ‘사법적 압박’이 문제를 해결하는 데 큰 구실을 한 셈이다.

‘철탑농성 200일’을 맞는 현대차 불법파견 문제는 어떨까. 노동계와 법조계는 여태껏 제대로 된 ‘사법적 압박’이 없었다고 지적한다.

처음 현대차의 불법파견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른 때는 2004년 12월이다. 당시 울산지방노동청과 전주지방노동청은 “현대차가 사내 협력업체를 이용해 형식적으로 도급계약을 맺고 불법으로 노동자를 파견했다”며 정몽구 현대차 회장과 임원, 사내하청 업주 등 128명을 기소 의견으로 울산지검에 송치했다. 정 회장을 불법파견을 받은 사업주로 판단한 것이다. 하지만 검찰은 2년 뒤인 2006년 12월 “적법 도급”이라며 불기소처분을 내렸다. 이에 불복한 노동자들이 항고했으나 검찰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노동계는 이때 울산지검이 내린 결정이 1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현대차 비정규직 사태 해결을 가로막는 원인이라고 본다. 그 뒤 이어진 수많은 현대차의 불법파견 소송에서 노동자들이 연거푸 패한 빌미를 제공했다는 것이다.

상황은 2010년 7월 대법원 판결로 역전된다. 대법원은 사내하청 노동자 최병승씨 등이 제기한 불법파견 및 부당해고 청구소송에서 “현대자동차의 하청업체 근로자들은 현대차와 근로자 파견관계가 있다”며 하급심 판결을 모두 뒤집고 ‘불법파견’을 인정했다.

금속노조는 이 판결을 근거로 그 다음달에 현대자동차 주요 임원과 현대차 울산공장 사내하청업체 대표자 118명을 검찰에 고발하고, 2012년 6월에는 정몽구 현대차 회장과 울산 공장장을 추가로 고발했다.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파견법)은 불법파견을 보낸 사업자와 이를 받은 사업자를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노동자들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구속력이 강하다는 대법원의 판결이 나왔으니, 이를 근거로 검찰이 현대차 경영진 처벌에 나서리라고 믿었다.

하지만 고발 3년째에 접어든 이 사건에서 정 회장과 임원 어느 누구도 아직까지 기소되지 않았다. 노동계와 법률 전문가들이 의아해하는 지점이다. 검찰의 ‘수사 의지’를 의심하는 목소리가 나올 법하다.

지난해 12월에는 이를 보다 못한 전국의 법학전공 교수 35명이 “엄중한 법적 책임을 물어달라”며 정몽구 회장을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했다. 이 소송을 대리하는 김남희 변호사는 “검찰이 수사를 회피하고 있는 것 같다. 고발인들조차 조사를 안 했다. 경험상 고발 3달 안에는 기초조사가 끝나는 게 정상이다. 검찰의 직무유기로밖에 볼 수 없다”고 말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소송 대리를 맡는 정기호 변호사도 “검찰이 눈치를 보는 것 같다. 제대로 수사를 안 하고 있다. 일반 사건의 경우라면 3년 동안 피고발인 조사도 끝내지 않았다는 건 상상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실제 수사는 울산지방노동청이 검찰의 지휘를 받아 진행하고 있는데, 울산지방노동청 관계자는 “불법파견이 의심되는 노동자가 6000명에 달한다. 이를 다 조사하려면 시간이 오래 걸릴 수밖에 없다. 이미 중요한 사안들에 대해선 현장 조사를 마쳤고, 일부 현대차 임원에 대한 소환조사를 끝냈다”고 말했다. 대법원의 확정판결로 ‘불법파견을 받은 사업주’임이 확인된 정몽구 회장에 대한 조사 계획은 없을까? 이 관계자는 “중요 인물 조사는 검사 지휘를 받는다. 하지만 아직까지 정 회장을 조사하라는 지휘를 받은 적은 없다”고 말했다. 즉, 검찰에서 사건의 핵심 피의자에 대해 아직까지 조사하라는 지휘를 단 한번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언제 수사가 끝날까? 이 관계자는 “현장 사정이 복잡하고 인력이 부족하다는 점을 알아달라. 정확한 수사 마무리 시점은 알 수 없다. 하지만 올해 안으로 끝나지 않겠나”라고 답했다.

울산지검의 태도도 다르지 않다. 울산지검 관계자는 “이 사건이 칼로 무 자르는 것처럼 만만치 않다. 현재 정상적으로 울산지방노동청을 지휘해 수사하고 있다. 수사 속도가 느리거나 한 것은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이 관계자는 2006년 불기소 처분에 대해선 “그때와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대법원 판결도 있고 현대차의 생산공정도 달라졌다”고 말했다.

지엠(GM)대우 사건을 다룬 검찰의 태도는 현대차 불법파견 사건과는 많이 다르다. 사실상 같은 불법파견에 대한 고발 사건에서 창원지검은 2007년 12월 데이비드 닉 라일리 전 사장과 6개 사내하청 사장들을 벌금 300만~700만원에 약식기소했다. 이에 불복한 경영진은 정식재판을 청구했으나 대법원은 지난 2월 회사가 파견법을 위반했다고 확정판결했다. “벌금 몇백만원 갖고 경영진이 반성하겠느냐”는 비난이 노동계에서 나왔으나, 법원이 자동차회사 경영진에 대해 불법파견 유죄를 인정했다는 점에서는 의미가 작지 않다.

김상록 현대차 울산 비정규지회 정책부장은 “검찰이 현대차 수사를 뭉개고 있는 동안 노동자들은 불법파업에 참여했다며 400명이나 조사를 받았다. 노조를 수사할 때는 전광석화 같았다. 이 가운데 형사처벌을 받은 사람도 부지기수다. 검찰이 수사를 더디게 하면 할수록 그 과정에서 우리 노동자는 범법자가 된다. 이게 제대로 된 수사냐”라며 검찰을 비판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의 노동위원장을 맡고 있는 권영국 변호사도 “수사의 원칙은 신속과 엄정성이다. 그 가운데 제일 중요한 게 신속성이다. 증거 인멸의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고발한 지 1년, 3년이 다 되도록 핵심 피의자 소환조사도 하지 않는 것은 사실상 검찰의 직무유기다. 검찰은 혐의가 있느냐 없느냐를 고민하기 전에 조사 먼저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정국 기자 jg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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