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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노동

여기, 하늘위 2평에… 아직 사람이 있음을…

등록 2013-05-02 20:46수정 2013-05-02 22:02

현대자동차 비정규직지회의 천의봉 사무장(왼쪽)과 해고 노동자 최병승씨가 1일 오후 고공농성중인 울산 북구 명촌동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명촌정문 앞 송전탑에서 철탑 위 생활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왼쪽에는 소변을 본 플라스틱 병이 보인다. 울산/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현대자동차 비정규직지회의 천의봉 사무장(왼쪽)과 해고 노동자 최병승씨가 1일 오후 고공농성중인 울산 북구 명촌동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명촌정문 앞 송전탑에서 철탑 위 생활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왼쪽에는 소변을 본 플라스틱 병이 보인다. 울산/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현대차 고공농성 200일 철탑에서 온 편지 / 최병승
노동을 빼앗긴 노동자들이 잇따라 철탑에 올랐다. 4일이면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사내하청 노동자 최병승·천의봉씨가 정규직화를 요구하며 철탑에 오른 지 200일째다. 이보다 35일 늦게 평택 쌍용자동차 사태 해결을 촉구하며 철탑에 오른 한상균·복기성씨는 165일째, 회사와의 협상을 요구하며 서울 혜화동성당 종탑에 오른 재능교육 해고노동자 여민희·오수영씨는 88일째 고공의 아침을 맞게 된다. 모두 사태 해결의 조짐은 보이지 않는다. 세곳 농성장의 절박한 심정을 담은 기고를 차례로 싣는다.

“포기하지 않게 해주세요.”

아침에 일어나 매일같이 돌아가신 할아버지와 할머니께 기도를 합니다. 가진 게 하나도 없기에 포기할 것도 없지만 그래도 주문처럼 포기하지 말자고 다짐하고 다짐합니다. 걸을 수도 없는 2평 남짓한 하늘 위에 있는 것도 억울한데, 매일 30만원씩 철탑 사용료를 한국전력에 납부하라고 합니다. 좁은 공간에서 비닐을 깔고 생리현상을 해결할 때조차 24시간 감시하는 현대차 경비들과 눈을 마주쳐야 합니다. 불편함이 익숙함으로 바뀌면서 인간이 가진 수치심도 없어졌습니다. 이제는 땅에서 누가 쳐다봐도 밥을 먹고 생리현상을 해결하며 7~8일에 한 번씩 뜨거운 물을 올려 몸을 씻습니다.

하늘생활이 익숙해지는 200일 동안 청와대 주인이 박근혜 대통령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렇게 일하고 싶었던 현대자동차 울산공장은 주야 맞교대에서 주간연속 2교대로 근무 형태가 변경되었고, 낙엽 물든 은행나무가 연둣빛 새싹을 틔우고 있습니다.

슬픈 세상에서 그나마 희망을 찾기 위해 많은 노동자들이 하늘에 오르고 있습니다. 저도 그 희망을 찾아 철탑에 올랐습니다. 철탑 위에서 공포와 두려움을 느끼는 동안 현대차와 10년을 투쟁한 노동자들이 작업을 중단하고 어둠을 뚫고 빛처럼 왔고, 그 빛이 희망이라 믿고 200일을 하늘에서 보내고 있습니다.

주문처럼 매일 기도합니다
포기하지 않게 해달라고…
청와대 주인이 바뀌고
은행나무가 새싹을 틔워도
땅에서는 대답이 없네요

이곳 하늘에 터를 잡자마자, 충남 아산의 굴다리에서 끌려내려오지 않겠다며 목에 줄을 묶은 노동자가 자리를 잡았습니다. 이어달리기를 하듯 경기도 동두천, 평택, 전북 전주, 서울로 농성은 확대되었습니다. 절망하지 않기 위해 어두운 밤하늘을 올라야 했던 그 심정이 느껴져 가슴 아팠습니다. 이어지는 죽음과 분신에 분노하고, 아파하면서도 죽은 동지들 몫까지 반드시 살아서 싸우겠다고 자위하는 나를 보며 안도한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지내온 200일. 아직도 전선줄로 연결된 평택 하늘에 사람이 있고, 젊음의 거리라는 서울 대학로 성당 종탑 위에도 사람이 있습니다. 얼마나 많은 시간이 지나야 내려올지 모르는 막막함을 견디고 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도 현대차 비정규직지회 조합원들의 처지는 변하지 않았습니다. 철탑농성은 200일을 맞고 있고, 철탑 아래에서 농성하던 해고 조합원들은 장소를 옮겨 서울 양재동 현대차 본사 앞 아스팔트 위에 있습니다. 관리자들은 비상 대기조를 만들어 규찰을 서고, 조합원을 찾아다니며 회유하고 있습니다. 양재동 본사 앞에는 계열사인 현대로템과 현대제철 관리자까지 나와 있습니다.

지난 1월 현대차는 대법원 판결을 이행한다며 저를 정규직으로 인사명령하고, 2016년까지 사내하청 노동자 3500명을 정규직으로 신규채용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언론은 정몽구 회장의 대승적 결단이라고 했지만, 10년을 싸운 현대차 비정규직지회 조합원은 반대했습니다. 심지어 특별교섭 자체를 무산시키며 끝까지 싸우자고 했습니다. 신규채용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형사고발, 손해배상·가압류, 징계 등 지난 10년 동안 겪었던 고통을 또다시 반복할 수도 있는데 반대를 합니다.

그것은 대법원 판결과 행정기관(노동위원회) 판정도 이행하지 않고 부당해고를 밥 먹듯이 하는 ‘법 위의 현대차’를 그냥 둔다면, 지난 10년 투쟁이 물거품이 되기 때문입니다. 또 “우리 권리를 얻기 위해 다른 사람의 권리를 침해할 수 없다”는 이유 때문입니다.

만약 현대차 불법파견 문제의 해결이 대법원 판례 기준으로 이뤄진다면 최소한 기아차, 한국지엠, 르노삼성, 쌍용차, 타타대우, 대우버스 등 완성차 업계와 부품사 사내하청 노동자는 모두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사회적 기준이 생깁니다. 또 자동차산업과 비슷한 생산방식을 가진 전자·철강·중공업 사내하청 노동자도 동일한 기준이 적용될 수 있습니다. 이런 이유로 재계의 지원을 받는 현대차가 불법파견을 부정하고, 정규직 전환이 아닌 일부 신규채용을 주장하는 것입니다. 어떤 것도 양보하지 않으려는 현대차는 대법원 판결을 이행하겠다고 밝히고도 ‘중앙노동위원회의 부당해고 재심판결을 취소해달라’는 행정소송을 제기해 ‘9년 동안 9급심 재판’(▷ 부당해고 한번에 ‘9년째·9급심’, 대한민국 정의는 있는가?)이라는 시대의 촌극을 연출하고 있습니다.

3500명 정규직 채용 한다지만
인사명령 따라 농성 중단하면
대법원 판례 개인판결로 축소
정규직 전환 아닌 신규채용은
전국 사내하청 노동자 권리 포기

이런 상황에서 현대차의 인사명령에 따라 철탑농성을 중단하고 출근한다면 우리 스스로 대법원 판례를 개인 판결로 축소하는 것이 됩니다. 현대차 비정규직지회가 정규직 전환이 아닌 신규채용에 합의한다면 ‘3500명 정규직’과 전국 40만 사내하청 노동자의 권리를 맞바꾸는 것이나 마찬가지가 됩니다.

시간과 돈이 없는 노동자는 지쳐갑니다. 2010년과 2012년 대법원 판결을 받기까지 울산공장 비정규직 노동자 161명이 해고되었고, 1000여명이 부당징계를 받았고, 20명이 구속되었습니다. 한 노동자는 죽음을 선택했고, 노동자 두 명은 자기 몸에 불을 붙였습니다. 200억원 가까운 손해배상으로 월급과 부동산 가압류를 당했습니다. 저희는 더 이상 선택할 것이 없습니다. 철탑도 올라가보고 양재동 본사 앞에 비닐 한 장 깔아놓고 잠을 청해도, 불법을 저지른 현대차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있습니다. 벌써 1년 가까이 현대차 비정규직지회와는 어떠한 대화도 할 수 없다고 합니다.

200일 동안 하늘에서 이렇게 착한 사람들을 바라볼 수 있어서 행복했습니다. 불쑥 찾아오는 막막함도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200일이 지나 300일이 되어도 이 착한 조합원들이 저항을 멈추지 않는 한 제가 먼저 포기할 수는 없습니다. 어떻게든 우리는 함께 가야 할 운명이기 때문입니다. 정몽구 회장의 결단을 촉구합니다.

철탑농성 200일 행사(5월4일)를 서울 양재동 현대차 본사 앞에서 진행하기로 했습니다. 많은 분들이 함께해 주시길 바랍니다. 하늘에서 본 가장 아름다운 사람들을 만나보시길 부탁드립니다. 200일을 맞아 하늘 사람이 땅 사람에게 마지막으로 드리고 싶은 말입니다. 최병승/울산 현대차 철탑농성 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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