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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노동

혜화동성당 종탑 농성 88일째…
“하늘마저 비좁아지는 노동자 현실 서럽기만…”

등록 2013-05-09 20:09수정 2013-05-09 22:30

여민희 학습지노조 재능교육지부 조합원이 지난달 30일 서울 혜화동성당 종탑에서 농성을 하고 있다. 정용일 <한겨레21> 기자 <A href="mailto:yongil@hani.co.kr">yongil@hani.co.kr</A>
여민희 학습지노조 재능교육지부 조합원이 지난달 30일 서울 혜화동성당 종탑에서 농성을 하고 있다. 정용일 <한겨레21> 기자 yongil@hani.co.kr
여민희 재능교육 노조원의 편지

노숙농성·삭발·단식·동료 죽음…
6년 접어든 투쟁과 탄압
살아서 노조·단협 복원할 길은
고공농성이란 극단선택뿐
추위와 절망 견디게 하는 힘은
응원해주는 따뜻한 온기
발자국 하나 없이 하얀 눈이 소복이 쌓인 종탑 꼭대기, 눈부신 빛과 함께 맞아주었던 성당의 십자가는 두려움으로 어두운 계단을 올랐던 우리에게 ‘재능교육 투쟁 반드시 승리하고 아이들 곁으로 돌아갈 수 있을 거야. 잘 왔어’라는 위로와 희망의 메시지를 전해줬습니다. 재능교육 농성투쟁 1875일째인 2월6일, 우리는 영하 15도의 한파 속에 침낭 한 장 없이 겨울점퍼를 몇 겹으로 껴입은 채 서울 혜화동성당 종탑 꼭대기에 올랐습니다.

2007년 12월21일 학습지노조 재능교육지부는 학습지 선생님 7000여명의 임금이 적게는 10만원에서 많게는 100만원까지 삭감되는 임금제도의 개선을 요구하며 천막농성을 시작했습니다. 그로부터 6년이 지나는 동안 재능교육은 본사 직원들과 용역업체 직원들을 고용해 20여차례 천막농성장을 부수고 조합원들을 폭행하고 미행했습니다. 은행 통장과 급여를 압류했고 가정집에 찾아가 압류딱지를 붙이고 경매처분을 시도했습니다. 그리고 노동조합의 집기류와 차량마저 압류·경매했습니다.

그것도 모자라 10년 동안 4번이나 갱신한 노동조합과의 단체협약을 일방 파기하고 노동조합을 불법 임의단체라고 명명했습니다. 그리고 노동조합 활동을 이유로 학습지 선생님들을 일방적으로 계약해지했습니다. ‘더불어 살아가는 밝은 미래를 만들겠다’는 종합문화교육기업 재능교육에서 벌어진 일들입니다.

2011년 김진숙 민주노총 지도위원이 한진중공업 85호 크레인에 올랐을 때도, 2012년 울산에서, 평택에서 노동자들이 15만4000볼트 송전탑에 올랐을 때도, 아산에서 노동자가 목에 밧줄을 걸고 굴다리에 올랐을 때도 내가 저들처럼 고공농성이라는 것을 하게 될 것은 상상조차 못했습니다. 올려다보는 것만으로도 아찔한 높이에서 추위를 어떻게 견뎌낼 것이며, 씻는 것은, 화장실은, 그리고 사람인데…, 고립된 생활을 어떻게 버텨낼 수 있을까 싶었습니다. 정권과 권력에 짓밟히면서도 살기 위해, 살리기 위해 하늘생활을 시작할 수밖에 없는 노동자들의 현실, 하늘마저 비좁아질 수밖에 없는 현실이 서럽기만 했습니다.

6년째 거리에서 농성을 하며 겪은 고통 속에서 고공농성이라는 극단의 선택을 하게 된 까닭은 ‘나와 우리가 살 수 있는 최상의 선택’이라는 생각 때문입니다. 1800일이 훌쩍 넘은 거리 노숙농성, 삭발, 단식에 이어 함께 일한 동료의 죽음까지…. 그런 우리가 살겠다고 선택한 방법입니다. 살아서 회사가 일방적으로 파기한 단체협약을 원상회복하고 노동조합의 이름을 가지고 아이들 곁으로 돌아갈 수 있는 방법이라 생각했습니다. 부도덕한 재능교육에 맞서 정의를 찾을 수 있는 방법이라 생각했습니다.

혜화동성당 종탑 꼭대기에 오른 지 88일째, 붉고 탐스러운 꽃망울들이 소리 없이 모습을 감추고 초록의 기운을 더해가는 5월이 시작됐습니다. 한결 가벼워진 차림새의 사람들을 보면서 봄의 따뜻한 기운을 느끼지만, 해가 지는 시간이 되면 종탑에 오른 첫날 입었던 겨울점퍼를 입어야만 합니다. 밧줄로 올려주는 밥을 먹고, 오래된 이 건물이 무너질 것 같은 거센 바람에 공포심을 묻으며 잠자리에 들어야 하고, 물티슈로 몸을 닦아내고, 어쩔 수 없이 해결해야 하는 생리적인 현상들까지…. 수치심 따위를 안고 있을 여유가 없으니 ‘뭐 이 정도쯤이야’ 하며 스스로를 다독입니다. 그렇게 일상에서 분리된 생활에 제법 익숙해졌다고 스스로 기특해하지만, 보고 싶은 사람, 그리운 사람을 볼 수 없는 사무침에 밤을 지새우기도 합니다. 마주 서 있는 재능교육 본사건물을 바라보면서 우리의 정당한 투쟁이 반드시 승리할 것임을 되새기지만 문득문득 다가오는 기약 없는 극단적인 상황에 절망감을 다스리지 못하기도 합니다.

저 멀리 사람들을 만납니다. 손을 흔들고 무전기로 몇 마디 대화를 나눌 뿐이지만, 그래도 잠시 짬을 내어 들러주는 사람들, 퇴근길에 들렀다 가는 사람들, 먼 곳에서 일부러 찾아오는 사람들, 갑자기 생각나서 보고 싶다고 찾아오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매일 저녁 문화제를 합니다. 우리가 외롭지 않게 혜화동 언덕길을 채우고 촛불을 밝혀줍니다. 이제는 해가 길어져 저녁 문화제에서 사람들의 형체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래도 온 분들이 누구인지, 어떤 모습인지 보고 싶어서 망원경으로 한 사람, 한 사람의 모습을 눈에 담습니다. 그리고 메시지로 응원해주는 사람까지 따뜻한 사람들의 온기가 하루하루 버틸 힘이 되고, 그 소중한 희망의 메시지로 씩씩하게 100일을 채워가고 있습니다.

‘탑새’가 된 사람들…고공생태보고서 [한겨레캐스트#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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