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의제’ 조항 헌법소원 13일 공개변론
‘파견근로 2년땐 원청업체 고용’
현대차 최병승씨 등 승소 근거
대기업들, 대법 판결 불복 헌재로
위헌 땐 ‘비정규 양산 방지’ 존폐 기로
“입법 취지·대법 판결 존중을”
‘파견근로 2년땐 원청업체 고용’
현대차 최병승씨 등 승소 근거
대기업들, 대법 판결 불복 헌재로
위헌 땐 ‘비정규 양산 방지’ 존폐 기로
“입법 취지·대법 판결 존중을”
노동계의 눈길이 헌법재판소로 쏠리고 있다. 현대자동차와 인터컨티넨탈호텔 등이 옛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파견법)의 고용의제 조항이 위헌이라며 낸 헌법소원에 대해 오는 13일 헌재가 공개변론을 여는 등 심리가 본격화하기 때문이다. 노동계는 위헌 결정이 나면 100만여명으로 추산되는 불법파견 노동자들이 사실상 무법지대로 내몰리게 되고 노동계에 대혼란이 초래될 것이라며 우려한다.
■ 고용의제란? 고용의제는 2007년 7월 개정 전까지 유지된 옛 파견법상의 노동자 보호조항이다. ‘파견근로 2년 이상인 노동자는 원청업체에 고용된 것으로 간주한다’는 내용이다. 애초 비정규직 양산이 우려되는 파견법을 제정할 때 정부가 노동계를 설득하기 위해 내놓은 최소한의 안전장치였다.
이번 헌법소원 사건의 당사자 가운데 하나인 현대차 해고노동자 최병승씨를 예로 들면, 대법원은 2010년 7월 현대차 사내하청 노동자이던 최씨의 경우 여러모로 따져볼 때 사내하도급이 아니라 파견에 해당하는데, 제조업은 파견이 금지됐으므로 불법파견에 해당하고, 파견이든 불법파견이든 현대차 공장에서 일한 지 2년이 지난 2004년 3월부터는 현대차 노동자로 간주된다고 선고했다. 고용의제 조항을 적용한 것이다.
하지만 최씨는 5일 현재까지 복직하지 않고 현대차 울산공장 송전탑에서 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컨베이어벨트에서 이뤄지는 정규직과 비정규직 혼재 노동의 경우 적법한 사내하도급으로 보기 어렵다는 대법원의 선고 취지를 고려할 때, 본인만 정규직으로 채용하겠다는 회사 쪽 결정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판단 때문이다. 어쨌건 현대차로서는 이번에 헌재에서 고용의제 조항이 위헌으로 결정날 경우, 최씨를 복직시킬 이유가 사라지는 셈이다.(<한겨레> 4월19일치 10면) 현대차 아산공장의 김준규씨 등 6명, 인터컨티넨탈호텔의 조아무개씨 등 해고노동자들이 이번 헌법소원 사건의 직접 당사자다.
■ 쟁점은? 고용의제 조항은 2007년 7월 ‘고용의무’ 조항으로 바뀌었다. 이전에는 파견 노동이 2년만 지나면 이미 고용된 것으로 간주하다가, 이때부터는 고용할 의무가 기업에 생긴다는 것으로 후퇴했다. 당시 개정은 기업에 유리한 것이었다. 현대차 등 재계는 고용의제 조항의 위헌성 때문에 당시 개정이 이뤄진 것이라고 주장한다. 반면 노동계는 “개정 당시 정부는 오히려 ‘기업이 고용의제를 어기면 소송으로 책임을 물을 수밖에 없으나, 고용의무로 바꾸면 행정명령이 가능해져 고용안정은 더 강화된다’고 설득했다”고 밝혔다.
현대차 등은 고용의제 조항이 기업의 기본권을 침해하고, 명확성의 원칙에도 어긋난다고 주장한다. 현대차 쪽을 대리하는 김앤장 법률사무소는 “고용 계약이라는 것은 당사자들 간의 자기결정권을 근간으로 한 자유계약이 원리인데, 고용의제는 이 같은 자기결정권을 침해한다”고 주장한다. 노동계는 “자유보다 앞선 기본권이 있다”고 맞선다. 경제민주화 조항으로 불리는 헌법 119조도 이러한 사적 영역에 대한 규제를 하고 있지 않느냐는 것이다. 권두섭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법률원장은 “고용의제 조항을 위헌으로 결정한다면 노동자에 대한 최소한의 보호장치가 사라지는 것이다. 기업의 논리대로라면 최저임금법도 사실상 기업의 자유를 침해하니 위헌인 것이다”라고 말했다.
■ 위헌결정이 난다면? 2009년 고용노동부 조사를 보면, 300인 이상 사업장의 사내하도급 노동자는 37만여명이다. 노동계는 이 가운데 상당수를 불법파견이라고 본다. 숫자가 훨씬 많은 300인 이하 사업장 노동자까지 포함하면 현재 불법파견 상태의 노동자는 최대 100만명에 이를 것으로 보기도 한다. 옛 파견법 고용의제 조항에 근거해 근로자 지위 확인소송을 진행중인 현대차 소속 하청노동자만 1500여명에 이르고, 이마트의 경우 고용노동부가 적발한 불법파견 인원만 2000여명, 회사가 정규직 전환을 발표한 파견노동자만 1만여명에 육박한다. 모두 이번 헌재 결정에 따라 운명이 갈릴 수 있다.
위헌이 결정된다면 현재 근로자 지위 확인소송 중인 노동자들은 고용의무 이행 소송으로 청구 취지를 변경해야 하고, 만약 회사 쪽이 고용의무 조항까지 헌법소원을 낸다면 또다시 기약없는 법정 싸움을 이어나가야 한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울산본부 법률원의 정기호 변호사는 “고용의제가 위헌 결정되면 회사가 고용의무 조항까지 헌법소원을 낼 가능성이 높다. 현재 진행중인 불법파견이나 부당해고 소송은 모두 고용의제를 전제로 한 소송이기 때문에 위헌 결정의 파급효과는 상상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노사정위원회 전문위원을 지낸 바 있는 이호근 전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파견법 입법 취지는 기업과 자본의 무분별한 파견노동 남발을 막자는 것이다. 최근 대법원 판례는 이를 인정하고 기업에 경고를 보낸 일종의 신호다. 헌법재판소도 대법원의 판례를 존중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이정국 임인택 기자 jg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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