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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노동

“우린 홍길동 신세, 진짜 사장을 사장이라 못 불러요”

등록 2013-08-21 20:34수정 2013-08-22 10:24

김효찬 현대자동차 비정규직지회 전주지회장
김효찬 현대자동차 비정규직지회 전주지회장
좌담 / 노동자들이 말하는 불법파견


김효찬 현대자동차 비정규직지회 전주지회장
아이 아파서 조퇴한다니
그냥 퇴사하라던 시절도 겪어
역시 가장 힘든건 고용 불안

기업들이 노동자들의 희생이 깔린 불법파견으로 막대한 수익을 거두면서도 막상 고용과 노동자의 기본권 보장이라는 사회적 책임은 외면한다는 게 노동계의 지적이다. 이윤 논리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정부도 진실에 눈감기는 마찬가지다. 심지어 문제를 바로잡아야 할 공공부문마저도 불법파견을 일삼고 있다고 현장 노동자들은 증언한다.

불법파견 의혹을 받고 있는 현대자동차 비정규직지회의 김효찬 전주지회장, 삼성전자서비스지회의 위영일 지회장, 인천공항지역지부의 조성덕 지부장 등 3명의 노동자와 2003년 대법원으로부터 원청 회사가 직접 고용한 것으로 인정받은 뒤 정규직으로 전환된 에스케이(SK)의 왕종현씨가 지난 6일 서울 마포구 한겨레신문사에 모여 자신들이 처한 현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위영일(이하 위) 정규직이 되고 달라진 점이 있나요?

왕종현(이하 왕) 많죠. 임금이나 복지 같은 처우가 정규직과 똑같아졌어요. 무엇보다 가장 좋은 건 불합리한 부분에 대해서 당당하게 말할 수 있다는 거죠.

조성덕(이하 조) 인천공항의 경우는 용역업체가 3~5년마다 바뀌어요. 작년 기준으로 실태조사를 했는데, 공항지부 소속 하청 노동자들 평균 근속연수가 7.4년 정도였어요. 사실상 정규직처럼 부리면서 대우는 여전히 비정규직 신세인 거죠. 예를 들면 검색 업무를 하는 비정규직 직원이 공항공사 직원을 검색하려고 하면 “개가 주인 무는 거 봤냐?” 이런 식으로 말해요. 말 그대로 모멸이죠. 유령 취급 받는 거예요.

조성덕 인천공항지역지부 지부장
조성덕 인천공항지역지부 지부장
조성덕 인천공항지역지부 지부장
출퇴근 교통비 월 30만원 차이
정규직은 리무진 버스
비정규직은 일반버스 타래요

김효찬(이하 김) 현대차 불법파견 문제는 1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요. 2004년에 노동부가 이미 불법파견이라고 봤어요. 당시 검찰이든 정부든 이 문제를 해결했다면, 지금 같은 투쟁은 없었을 거예요. 정부와 자본이 사실상 손을 놓고 있었어요. 현대차의 문제만이 아니라, 사회 전반에 간접고용 노동자가 확산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든 거예요. 우리 동지들이 가장 힘들어 하는 게 고용불안이에요. 언제 잘릴지 모르는 거죠. 지금은 노조가 생겨서 그나마 나아졌어요. 예전엔 아이가 아파서 병원에 데려가야 한다고 조퇴 신청하면 ‘내일부터 나오지 말라’는 연락이 왔어요.(일동 한숨)

우리는 전태일 열사가 외쳤던 것처럼 ‘삼성은 근로기준법을 지키라’고 외칠 뿐이에요. 그동안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은 회사가 알아서 챙겨준다’는 말에 속았어요. 동료 직원에게 남은 건 병든 육체뿐이에요. 제가 올해 마흔다섯인데, 아직도 100만원짜리 사글세 살아요. 미래가 없어요. 우리들이 일어난 건 일종의 민중 봉기예요. 역사를 보면 민중 봉기가 몇 번 있었잖아요. 그때마다 민중들이 원하는 건 ‘배고파서 못살겠다’였어요. 지금 우리가 그래요.

임금차별이 가장 문제죠. 인천공항의 경우 임금이 정규직 대비 46%에 불과해요. 제가 13년차인데 연봉이 2700만원이에요. 1년차 때랑 차이가 없어요. 인천국제공항공사 13년차 정규직은 1억원이 넘어요. 인천공항은 세계적으로 알아주는 공항이에요. 8년 연속 공공기관 평가 1위예요. 그게 누구 덕인가요? 우리 같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노력으로 만들어진 거예요. 정규직들은 그 성과를 고스란히 받아가요. 좀 치사하지만 교통비 얘기 좀 할게요. 인천공항은 출퇴근 교통비가 많이 들어요. 비정규직이라고 교통비 할인해주는 거 아니거든요. 그런데 정규직은 한달에 45만원 교통비가 나오고 우리는 15만~18만원이에요. 책정 기준이 기가 막혀요. 정규직은 리무진 버스를 기준으로 했고, 비정규직은 일반 버스 요금을 기준으로 했대요.

비정규직 문제가 심각한 건 자녀들에게도 영향을 끼친다는 데 있어요. 현대차 전주공장 근처에 송천동이 있는데 정규직이 많이 살아요. 그 가운데 비정규직 노동자들도 섞여 있죠. 자녀들은 같은 학교를 다니는데, 친구들끼리도 계급을 나눠요. 아빠가 뭐하는지 확인하기 전까지만 친구예요. 서로 아빠의 신분이 확인되면 어울릴 수 없는 상황이 돼버리죠.

별것 아닌 작은 부분도 비정규직들에게는 비수로 다가오죠. 저도 비정규직으로 있을 때 명절 선물에 얽힌 일화가 있어요. 그때는 에스케이 공장에서 일하지만 용역업체 직원이기도 하니 명절 때 선물이 두개가 나왔어요. 하나는 원청업체 선물, 하나는 제가 속한 하청업체 선물인 거죠. 그런데 같이 일하던 정규직 노동자가 “너네는 좋겠다. 선물 두개 받아서” 이러는 거예요. 기가 막혔죠.

위영일 삼성전자서비스지회 지회장
위영일 삼성전자서비스지회 지회장
위영일 삼성전자서비스지회 지회장
비정규직 처우 개선돼야
정규직 가치도 보전되지요
중요한 건 ‘단결’입니다

전자제품 수리하러 갈 때 정규직들은 법인 리스 차량이 나와요. 저희들은 개인차로 돌아다녀요. 유류비도 개인이 지불해요. 비정규직 임금은 건당 수수료가 기본이에요. 건수를 많이 올려야 월급을 그나마 보존받을 수 있는 구조예요. 그런데 예를 들어보죠. 냉장고 수리 때문에 한 가정에 들르면 그 가정이 갖고 있는 삼성 제품들은 다 봐준다고 봐야 해요. 고객들이 물어보니까요. 일일이 다 대답해도 건수는 결국 1건이에요. 결국 노동 착취예요. 회사는 얼마나 좋겠어요. 손 안 대고 코 푸는 거죠. 고객들 클레임 해결해주는데 임금은 적게 주니….

우리가 낸 근로자 지위 확인 소송은 친자 확인 소송이나 비슷해요. 우리를 낳은 아버지가 누구냐는 것처럼 우리를 고용한 사람이 누구냐는 거죠.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한 홍길동 같은 신세라고나 할까요.

정규직이 됐을 때 왕종현 동지는 소감이 어땠나요?

저희가 행정법원에서 지고 고등법원 판결로 이겼거든요. 판사가 판결문을 읽는데 이겼다는 거 알고는 다 듣지도 않고 뛰어나갔어요. 당시 4명이 정규직 전환됐거든요. 화장실로 들어가 바로 집에 전화를 걸었죠. 그런데 말이 안 나오는 거예요.(눈물) 집사람도 흐느끼더라고요.

에스케이는 판결나고 바로 정규직 전환을 했나 보군요. 현대차랑은 다르네요.

당시 노사가 재판 결과를 받아들이겠다고 합의를 했어요. 현대차와 상황이 다른 것은 당시 에스케이 사업장을 다 합쳐도 비정규직이 100명이 안 됐어요. 회사 쪽에선 부담이 없었을 거예요.

인천공항은 공공부문의 간접고용 문제가 집약된 곳이에요. 인천공항공사가 작년 순익이 5100억원인데, 이 돈은 그동안 줘야 할 임금을 안 주면서 만든 거나 다름없어요. 체불임금이라고 보는 게 맞죠.

공항은 개인회사도 아닌데, 이윤을 남기려고 간접고용을 한다는 건 문제인 거 같아요.

비정규직을 사용하는 이유가 단기·단순업무이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결코 그렇지 않아요. 대부분 공항을 유지하기 위한 필수 업무들이에요. 그런데도 인천공항이 외주화의 롤모델이 되고 있는 상황이에요. 정부가 각종 평가에서 매번 1위를 주니 오히려 간접고용을 장려하는 거밖에 안 되는 거죠.

왕종현 에스케이 정규직 전환 사원
왕종현 에스케이 정규직 전환 사원
왕종현 에스케이 정규직 전환 사원
소송해서 정규직 되고 보니
불합리한 것을 당당하게
말할 수 있다는 게 좋아요

결국 패자는 국민, 노동자예요. 언제까지 국민들의 희생을 요구할 건가요? 우선 기업의 인식 전환이 있어야겠지만, 비정규직 노동자들 스스로 각성해야 해요. 똑같이 사과를 옮기는데 정규직이 옮기면 1만원, 비정규직이 옮기면 3000원. 이게 말이 되나요.

우선 기업의 생각이 바뀌어야 해요. 대기업의 경우 그 속에서 희생했던 노동자들이 기업을 키운 거 아닌가요? 이제 창출한 이익을 노동자들에게 돌려줄 때죠.

민주노총이 정규직·비정규직을 나눠서 각개전투 안 했으면 좋겠어요. 단위사업장별로 해결하는 것은 힘들어요. 하나로 묶어 큰 투쟁을 해나가야 해요.

정규직과의 연대가 힘들더라고요. 정규직들의 자리를 지키려는 욕망이 큰 거 같아요. 안타까운 현실이죠.

기업의 전략인 거 같아요. 정규직을 소수화하면서 혜택을 많이 주고 ‘노노 갈등’을 조장하는 거죠.

민주노총에 요구하고 싶은 게 있어요. 민주노총 조합원 80만명 가운데 비정규직은 3%밖에 안 돼요. 만약 조합원 늘리려고 한다면 두배는 늘릴 수 있어요. 민주노총 소속 정규직 조합원들이 비정규직 노동자들 한 사람씩만 가입시켜도 160만명이에요. 정규직·비정규직이 손을 잡으면 지킬 것도 많고 고칠 것도 많아요.

비정규직 처우가 개선돼야 정규직 노동도 가치가 보전되는 거예요. 비정규직 노동자가 기본적 대우를 받지 못하면 정규직도 그만한 대접을 받는 거죠. 비정규직의 투쟁은 사회 변화를 이끌어내는 운동이에요. 비정규직을 이대로 두면 그 과오는 정규직이 떠안게 돼 있어요. 나중에는 ‘너 비정규직 될래?’ 이런 식으로 기업이 협박을 해올 겁니다. 노동탄압은 반복돼요.

공공운수노조 산하의 부산지하철노조는 투쟁할 때 정규직부터 비정규직까지 연합해 같이 싸워요. 그래서 별명이 ‘골리앗 노조’예요. 항상 성과도 좋죠. 노노를 갈라놓는 자본이 만든 논리에 노동자들 스스로 말려들면 안 돼요.

단결이 중요하죠. 원론적이지만 결국 이렇게 모아지네요. 지금 성과가 없더라도 후대에는 성과가 나올 겁니다.

일동 맞습니다. 단결이 제일 중요하죠.

진행·정리 이정국 기자 jg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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