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견법 자체가 간접고용 인정
‘2년 뒤 직접고용’ 규정했지만
기업, 민법상 도급 활용해 회피
“위장도급 근절할 통합법령 필요”
‘2년 뒤 직접고용’ 규정했지만
기업, 민법상 도급 활용해 회피
“위장도급 근절할 통합법령 필요”
불법파견 논란이 현대자동차와 삼성전자서비스를 비롯해 엘지전자, 인천공항공사, 티브로드 등 사기업과 공공부문 가리지 않고 확산되고 있다. 의혹의 대상이 된 기업들이 같은 사실관계를 두고도 “불법 파견이 아니라 합법 도급”이라는 주장을 내놓는 데 대해, 도급이 불법파견을 가리는 위장막으로 이용되지 않도록 강력히 규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도급은 특정 영역의 일의 완성을 다른 업체에 맡기는 민법상의 업무 방식으로 규제가 덜하나, 파견은 노동자를 다른 업체에 보내는 인력운용 방식으로 노동법상 규제가 강한 편이다. 최근 불거진 불법파견 논란은 원·하청이 형식상 도급 관계를 맺고 있지만 실제로는 노동자 파견이라는 게 핵심이다.
■ 파견법이 불러온 불법파견 역설적이게도 노동계는 ‘불법파견’의 주범으로 1998년 제정된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파견법)을 꼽는다. 국내 노동법이 줄곧 유지해온 ‘직접 고용’의 원칙을 한순간에 무너뜨린 탓이다. 그 전에는 1961년 제정된 직업안정법에 의해 ‘근로자 공급 사업’(파견)이 엄격하게 금지됐다. 파견법은 다만 소속 회사와 실제 일하는 회사가 다른 데서 오는 비인간적인 노동 형태를 제한하기 위해 파견 기간을 2년으로 엄격하게 제한했다. 그 기간을 지나면 파견받은 회사가 노동자를 직접 고용하라는 것이다.
최근 일고 있는 불법파견 논란은 삼성·현대 등 대기업들이 직접고용의 부담을 지지 않으려 사실상 파견의 형태로 협력사 노동자를 부리면서도 파견법의 규제를 회피하려 도급제도를 방패처럼 이용하는 과정에서 불거진 것이다. 파견은 실제 사용자가 직접 작업지시와 근태관리를 할 수 있지만, 도급에서는 금지된다.
도급은 사적 자치를 존중하는 민법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에 노동법에 있는 각종 규제와는 거리가 멀다. 파견법에서 그나마 정한 업종제한이나 고용의무 등의 조항은 도급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도급은 사실상 노동시장에선 무법지대나 다름없는 것이다.
최근 불법파견 의혹을 받고 있는 기업들은 하나같이 “합법적 도급”이라고 주장한다. 불법파견임을 입증하는 데는 오랜 기간이 걸린다는 사실을 악용하는 것이다. 공익인권법재단 공감의 윤지영 변호사는 “현행법이 정한 도급 개념으로는 불법파견을 막기란 쉽지 않다. 노동법상으로 도급을 규제할 수 있는 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 노동계 “사내하도급법 추진 안 된다” 불법파견 문제에 대한 대책이라며 새누리당은 ‘사내하도급 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사내하도급법) 제정을 추진하고 있다. 도급 가운데 하청회사 직원이 원청회사로 가서 일하는 사내하도급으로 피해를 보는 노동자를 보호하자는 게 취지다. 법률안은 사내하도급 노동자의 차별 금지와 법 위반 사업주의 처벌 등을 규정하고 있다. 언뜻 보면 사내하도급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한 법률로 보인다.
하지만 노동계는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이 법이 원칙적으로 금지해야 할 사내하도급을 합법화시킨다고 보기 때문이다. 현대차의 사례처럼, 원청 사용자가 자신의 회사에서 일하는 노동자에게 작업지시와 근태관리를 하지 않기는 어렵다. 이 때문에 노동 전문가들은 “사내하도급은 곧 불법파견이나 다름없다”고 지적한다. 오민규 비정규노조연대회의 정책위원은 “이 법은 파견도 도급도 아닌 ‘사내하도급’이라는 제3의 지대를 설정하고, 노동법적 규제를 풀어 간접고용을 허용하는 법”이라고 비판했다.
이 법이 기존에 있던 불법파견 규제마저 되레 무력화시킬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민주노총 금속노조 법률원의 송영섭 변호사는 “사내하도급은 겉으로는 진성 도급으로 보이지만 실상은 불법파견인 경우가 많다. 사내하도급법 제정은 사실상 불법파견을 제도화하자는 것인데, 불법파견을 규제했던 기존 노동법조차 껍데기만 남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 ‘직접 고용’ 원칙 되살려야 전문가들은 근로기준법과 직업안정법에서 정한 ‘직접 고용’의 원칙을 회복하는 것이 근본적인 해결책이라고 본다. 국제노동기구(ILO)는 2006년 채택한 ‘고용관계에 관한 권고’에서 “위장된 고용관계를 척결하기 위한 국가정책을 마련할 것”을 권고했다.
노동계는 노동 관련 법을 개정해 직접고용의 원칙을 확립하고 △도급과 파견 개념의 명확화 △사용자 개념의 확장 △하청노동자 차별 금지 △불법파견 사용자 처벌 강화 등을 법제화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장기적으로는 도급으로 위장한 불법파견이 뿌리내리지 못하도록 파견과 노동문제로서의 도급 등을 하나로 모아 통합 법령을 만들어야 한다는 얘기도 나온다.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 전문위원을 지낸 이호근 전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통합 법령을 만들자는 움직임이 있어 왔지만 누구 하나 선뜻 나서지 못하는 상황이다. 불법파견이 사회 전반의 문제가 된 만큼 장기적인 안목을 갖고 정부와 노동계가 나서 하루빨리 입법화 작업에 착수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정국 기자 jg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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