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 홍종인(전국금속노조유성기업지회장)
울림마당
2012년 10월 충남 아산의 유성기업 공장 앞 굴다리에서 151일간의 고공농성을 마친 게 엊그제 같은데 또다시 이곳 충북 옥천의 광고탑에 올라 늦가을을 느끼며 겨울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20여일째 22m 높이에서 맞는 차디찬 새벽바람은 온몸에 부딪치고, 성큼 다가온 겨울은 가슴을 시리게 합니다.
배고파서, 너무 힘들어서 죽음을 선택했다는 삼성전자서비스 ‘감정노동자’의 소식에 또 가슴이 미어집니다. 현장에서, 사회에서 이리저리 치이며 죽음과 마주하고 살아가는 것이 21세기 대한민국 노동자의 모습입니다.
저를 이 높은 곳에 오르게 한 이야기를 해볼까요. 2011년 유성기업 사측의 직장폐쇄와 용역깡패의 살인적 폭력, 2012년 용역폭력 청문회와 국정감사에서 드러난 노조 파괴 시나리오에도 올해 불기소(혐의 없음)라는 이름으로 자본은 면죄부를 받았습니다.
1차 수사기관인 고용노동부는 중대 사안으로 보고 유성기업 관계자들을 기소하려 했지만 검찰의 지휘를 받을 수밖에 없어 불기소 송치했다는 답이 가슴을 더욱 아프게 합니다. 이는 현장 탄압 심화, 단체협약 위반, 징계 강행, 노조 파괴 시나리오 재점화 등의 칼날이 됐습니다.
2011년에 이은 판박이. 11명이 해고·출근정지(정직)됐으며 고소·고발과 징계출석요구서가 노동자들에게 날아들었습니다.
가정에 배달된 아들의 경고장을 본 늙은 어미는 잠도 못 이루고 한숨만 길게 내쉬며 눈물만 흘려야 했습니다. 가정불화에 자식과 이별까지 해야 하는 현실이 유성기업 노동자의 삶입니다. 작년에 이어 올해까지 진행된 심리치유 보고서를 보면 심각한 우울증과 스트레스장애 등을 안고 있답니다. 그럼에도 사직서·휴직계를 제출하고 떠나야 합니다. 죽을 것 같다며, 죽어버리겠다고 목놓아 소리치던 조합원들. 이런 벼랑에 선 것이 유성, 그리고 21세기 대한민국 노동자의 현실입니다.
박근혜 정부가 들어섰지만 노동자를 향해서는 묵묵부답입니다. 자본의 부당 노동행위, 탄압의 칼자루를 묵인해주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더이상 노동자가 죽음을 선택하지 않게, 현장에서 죽어가지 않게, 자본의 핍박 속에 병들어가지 않게 해야 합니다. 한 노동자의 아픔은 가족의 아픔이 되고 곧 국민의 고통이 된다는 것을 안다면 부당 노동행위를 뿌리 뽑아야 합니다. 사법 처리를 바르게 해야 합니다.
저는 불법·부당 노동행위를 일삼고 있는 유성기업 사업주와 관계자들이 처벌될 때까지 이 고공에서 내려갈 생각이 없습니다. 추운 겨울 끝에 봄이 오고 새싹이 돋듯 노동자의 삶에도 희망의 새싹이 돋길 바랍니다. 노동취약국이라는 오명을 씻고 새롭게 태어나는 내 조국이 됐으면 합니다.
노동자 홍종인(전국금속노조 유성기업지회장)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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