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지분 전량매각 통보에 고용불안
최근 노조파괴 전략을 담은 ‘에스(S)그룹 노사전략’ 문건 공개로 논란을 빚고 있는 삼성그룹의 계열사에 노동자들이 자발적으로 조직한 노동조합이 설립될 전망이다. 현재 삼성그룹에는 생명·화재·호텔신라 등 9개 계열사에 노조가 존재하지만, 노동계는 서류상으로만 존재하고 활동을 거의 하지 않는 이른바 ‘휴면 노조’라고 지적해왔다. ‘에스그룹 노사전략’ 문건에서도 일부 노조를 ‘페이퍼 유니언’(종이 노조)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삼성디스플레이와 미국 코닝사의 합작회사인 삼성코닝정밀소재(삼성코닝) 노동자로 구성된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의 신영식 위원장은 14일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노동조합 설립신고서를 오늘 고용노동부 천안지청에 제출했다”고 밝혔다. 신고 조합원은 비대위원 10명이나, 정식 조합 등록이 되면 전체 사원 4000여명 가운데 최소 1000명이 가입할 것으로 비대위는 보고 있다.
삼성코닝은 초박막 액정표시장치(TFT-LCD)에 들어가는 기판 유리 생산을 주력으로 하는 회사로, 지난해 매출이 3조2000억원에 이른다. 이런 ‘알짜’ 회사에서 노동자들이 노조 결성을 준비하게 된 것은 급작스레 닥친 고용불안 때문이다.
삼성코닝의 지분 42.6%를 보유한 삼성디스플레이는 지난달 23일 해당 지분을 코닝 본사에 모두 파는 내용의 협약을 맺었다. 홍석현 중앙일보 회장이 가진 지분 7.32%도 함께 넘기기로 했다. 대신 삼성은 코닝 미국 본사의 최대 주주가 될 예정이다. 삼성은 코닝 쪽 경영권을 행사하지 않을 방침이라고 밝혔다.
신영식 위원장은 “지분을 넘기겠다는 협약이 있던 지난달 23일 아침, 사장 전자우편 한통으로 회사가 팔렸다는 사실을 처음 접했다. 노동자 아무도 이 사실을 몰랐다. 배신당한 느낌이었다. 언제는 삼성가족이라고 하더니 한순간에 호적에서 파버린 꼴이다”라고 말했다.
노동자들은 자신들이 격랑에 던져지면서도 그 사실을 알지 못한 배경으로 ‘삼성의 무노조 경영’을 꼽았다. 노조가 있었다면 회사 주인이 바뀌는 중대한 사건을 앉아서 당하지는 않았을 거라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지분매각 협약 체결 엿새 만인 지난달 29일 노조 결성을 위한 비대위가 설립됐다. 온라인 카페에는 1300여명의 노동자가 가입해 성원을 보냈다. 카페에는 “고용승계한다, 인위적인 구조조정 없다 하지만, 고용인원을 받을 뿐 보장해주는 건 아니다” 등 고용 불안을 호소하는 글이 상당수 올라 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의 권영국 변호사는 “무노조 경영을 앞세운 삼성에서 노동자들이 자발적으로 노조를 결성한 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라고 평가했다.
이정국 이형섭 기자 jg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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