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사회 노동

소급적용은 안된다 선 그어…‘기업배려 판결’ 비판일듯

등록 2013-12-18 19:48수정 2013-12-18 22:09

갑을오토텍 노동자들이 18일 오후 서울 서초동 대법원 앞에서 임금·퇴직금 청구 소송에 대한 대법원 선고 뒤 망연자실한 표정을 짓고 있다. 대법원은 “회사는 23억원을 지급하라”고 원고 일부 승소로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대전고법으로 돌려보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갑을오토텍 노동자들이 18일 오후 서울 서초동 대법원 앞에서 임금·퇴직금 청구 소송에 대한 대법원 선고 뒤 망연자실한 표정을 짓고 있다. 대법원은 “회사는 23억원을 지급하라”고 원고 일부 승소로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대전고법으로 돌려보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대법 “정기상여금은 통상임금”] 통상임금 판결 내용 보니

“성과에 상관없이 지급이 확정된
근속·기술·자격수당도 통상임금”
명절떡값·휴가비 등은 제외시켜

노사 합의한 ‘통상임금 제외’엔
“근로기준법보다 불리하면 무효
통상임금 논란에 대한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18일 판결은 ‘궁색한 절충’이란 비판을 피하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은 통상임금의 개념과 범위 등 그동안의 법리적 쟁점에 대해선 한층 분명하게 논란을 정리하려 했지만, 정작 이런 법리를 적용하는 데 있어선 ‘기업경영 현실’이나 ‘관행’ 등을 앞세워 추가 임금의 소급 청구는 받아들일 수 없다고 선을 그었다. 거액의 추가 부담을 걱정하는 기업 쪽 입장을 받아들인 결과다.

■ 통상임금의 개념 정리 대법원은 이번 판결을 통해 통상임금을 둘러싼 그동안의 쟁점에 대한 분명한 개념 규정을 시도했다. 대법원은 우선 통상임금이 ‘근로계약에 따른 정상적인 근로시간에 대해 통상적으로 제공하는 근로의 가치’, 즉 소정근로의 대가라고 설명했다. 야근·휴일근로 등 초과근로를 하지 않아도 미리 받기로 확정된 임금이라는 얘기다. 판례를 통해 통상임금의 요건으로 제시해온 정기성·일률성·고정성에 대해서도 그 뜻을 한층 분명히 했다. ‘1개월을 넘는 기간마다 지급되면 통상임금이 아니다’라는 기업 쪽 주장에 대해선, “1개월을 넘어도 일정 기간마다 정기적으로 지급되면 모두 통상임금”이라고 못박았다. 휴가자, 복직자, 징계 대상자에겐 지급이 제한되는 임금이라도 일정 조건이나 기준에 달한 다른 모든 근로자에게 지급된다면 일률성이 있다고 판시했다.

논란이 집중된 ‘고정성’에 대해서도 “초과근로를 제공할 시점에, 업적·성과 등 추가조건과 관계없이 이미 사전에 지급이 확정된 것”이면 고정성이 인정된다고 기준을 밝혔다. 이런 기준이면 미리 액수 등이 정해진 근속수당·기술수당·자격수당은 통상임금이 된다. 일정 근무일수를 채워야 지급되는 임금은 통상임금이 아니지만, 근무일수에 비례해 지급되는 임금은 통상임금이다. 근무실적을 평가해 지급되는 성과급도 최소한의 일정액이 보장되면 그만큼은 통상임금에 해당한다고 대법원은 밝혔다. 대법원은 특히 “지급일 현재 재직중인 노동자에게만 지급하고 그 이전에 퇴직한 노동자에게는 지급하지 않는 김장보너스·휴가비·명절귀향비·단체보험료 등은 소정근로의 대가와 무관하게 ‘재직’만이 지급조건이므로 통상임금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시했지만, 이들 임금 역시 ‘사전에 지급이 확정’돼 통상임금으로 볼만한 것이어서 추가 논란이 예상된다. 이 대목은 이전의 대법원 판례보다 후퇴한 것으로 평가된다.

기업 쪽에서 그 효력을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해온 노사의 ‘통상임금 제외 합의’에 대해, 대법원은 “근로기준법이 정한 기준보다 불리한 근로조건 계약은 무효”라는 노동법의 확립된 원칙을 들어 무효라고 재확인했다. 법리적 문제에선 논란을 상당 부분 정리한 셈이다.

■ ‘소급효 제한 부칙’ 판결? 그러나 대법원은 정작 이런 법리를 적용하는 데선 현실론을 택했다. 법리대로라면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서 제외한 임금 합의는 무효이므로 추가 임금을 청구할 수 있어야 하지만, 대법원은 민법상의 ‘신의칙’을 앞세워 이를 제한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대법원은 “노사가 정기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신뢰’한 상태에서 이를 토대로 임금 합의를 했을 것인데, 지금 와서 이 부분만 무효로 하면 기업으로선 예상치 못한 과도한 지출을 하게 되고 기업의 존립마저 위태롭게 되므로 신의칙상 허용할 수 없다”고 이유를 밝혔다. 기업의 예상 못한 부담이 신의에 반한다는 얘기다. 그런 ‘신뢰’의 근거로는 ‘정기상여금의 통상임금 제외’가 그동안 여러 판결과 노동부의 임금산정지침 등을 통해 ‘관행’으로 정착됐다는 점을 들었다. 대법원은 그러면서 “오늘 판결 이후에는 그런 ‘신뢰’가 있을 수 없음이 명백하므로 신의칙 법리는 이 판결 이후에는 적용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이인복·이상훈·김신 대법관은 소수의견을 통해 “사용자의 그릇된 신뢰를 근로자의 정당한 권리 찾기에 우선할 수 없고, 사용자의 경제적 어려움도 근로자의 권리를 희생시킬 수 있는 근거가 될 수 없다”고 비판했다. 근로기준법이 기본적으로 강행법규인데도 그 취지를 몰각했다는 것이다. 노동법 전문인 한 중견 변호사는 “정책적 이유로 권리를 소급해서 구제하지 않겠다는 판결이 입법기관도 아닌 대법원이 과연 할 말인지 의아하다”며 “강행법규를 위반한 관행을 인정할 수는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대법원이 “통상임금 해결”을 약속한 박근혜 대통령이나 “추가 노동비용이 38조원”이라는 재계 쪽의 아우성을 의식해 ‘정치적 판결’을 한 것 아니냐는 강한 비판이 예상되는 대목이다.

여현호 선임기자 yeopo@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사회 많이 보는 기사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1.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2.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3.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4.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5.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