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상임금 대응 어떻게… 윤상직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오른쪽 둘째)이 19일 오전 서울 남대문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초청 기업 시이오(CEO) 조찬간담회’ 시작 전 통상임금에 대한 대법원 판결과 관련해 기업인들과 이야기하고 있다. 오른쪽부터 이승한 홈플러스 회장, 윤 장관, 김도훈 산업연구원장, 김종갑 지멘스 회장, 김진형 남영비비안 사장. 연합뉴스
노사간 정기상여금 제외 합의와
기업의 ‘경영상 어려움’ 인정땐
추가임금 청구해도 노동자 패소 전망
합의 여부·기업경영사정 놓고
소송별로 첨예한 논쟁 예상돼
대형로펌 내세울 대기업 유리할 듯
기업의 ‘경영상 어려움’ 인정땐
추가임금 청구해도 노동자 패소 전망
합의 여부·기업경영사정 놓고
소송별로 첨예한 논쟁 예상돼
대형로펌 내세울 대기업 유리할 듯
대법원이 정기 상여금을 통상임금으로 인정하면서도 노동자들의 추가임금 소송을 제한하며 제시한 ‘신의성실의 원칙’이 논란을 빚고 있다. 법조·학계·노동계는 대단히 이례적이고 논쟁적이라는 반응이다. 노동법 관련 하급심에서 단 한차례도 인정하지 않은 ‘신의칙’으로 노동계에 비교적 유리하던 통상임금 소송의 흐름을 끊은 결과, 이번 판결의 최대 수혜자는 대기업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대법원은 18일 통상임금 전원합의체 판결을 하면서 이미 정기 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하지 않기로 한 사업장의 노조가 뒤늦게 이 문제를 제기하는 경우 “기업에 중대한 경영상 어려움을 초래하거나 기업 존립을 위태롭게 한다는 사정이 인정”되면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하기 때문에 허용되지 않는다고 결정했다. 정기 상여금을 제외하는 노사 합의가 관행인데다 대개 총액 기준으로 임금을 합의한 뒤 다른 임금 부분은 다 받아놓고 나중에 와서 정기 상여금 문제만 제기하는 것은 신의성실의 원칙을 깨뜨리는 행위라는 것이다.
이런 논리는 통상임금 소송에서 기업들이 주되게 주장해온 논리로, 현재 법원에 계류 중인 것으로 알려진 160여건의 통상임금 관련 소송과 추가 제기될 소송을 좌우하는 새 불씨가 될 전망이다.
노사가 임금협상을 통해 정기 상여금을 통상임금에서 제외하기로 합의한 부분에 신뢰 관계가 있다고 볼 것인지, 무노조 사업장의 신뢰 관계는 어떻게 증명될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동자들이 소를 제기해 기업의 존립을 위협하는지의 판단을 두고 노사가 첨예하게 다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법원에 계류 중인 통상임금 관련 나머지 소송에서 노동계가 크게 불리해졌다는 분석이 많다. 갑을오토텍 노동자들을 대리한 김기덕 변호사(새날 법률사무소)는 “현재 노사 간 진행되는 임금 소송은 거의 노조가 있는 사업장에서 어떤 방식으로든 노사 간 임단협을 한 곳이다. (향후 소송에서) 신의칙이 새롭게 문제될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 통상임금 소송에서 노사 합의의 수준이 높은 대기업에선 강하게 ‘신의칙 위배’를 제기해왔다. 박근혜 대통령이 “해결하겠다”고 약속했던 한국지엠의 임금 소송(노동자 쪽 2심 승소)에서도 회사 쪽 핵심 반론이 “정기 상여금은 통상임금에 포함하지 않기로 노사가 합의했고, 근속 기간과 근무 일수에 따라 지급한 비고정적 금품이라서 통상임금이 아니다”는 것이었다. 갑을오토텍도 관리직 퇴직자였던 김아무개(48)씨가 정기 상여금이 포함된 통상임금으로 계산해 퇴직금 500만원을 더 달라고 제기한 이번 소송에서 “(퇴직 전인) 2009년 이전에는 상여금 통상임금 여부에 전혀 이의를 제기하지 않다가 2009년 이후부터 주장하는 것은 신의칙에 반한다”고 맞섰다.
송영섭 전국금속노조 법률원장은 “과거 통상임금 소송에선 임금성 외 보지도 않았던 사안인데, 신의칙을 이유로 기업 손을 들 가능성이 심각하게 커졌다”고 말했다.
나머지 통상임금 소송에서 노동자 쪽을 더욱 어렵게 하는 요인은 대법원이 신의칙을 제기하면서 함께 제시한 “중대한 경영상 어려움”과 “기업 존립을 위태롭게 한다는 사정”이다. ‘중대한 경영상 어려움’ 등은 판독이 어렵고 법관의 주관이 가능한 탓이다. 정리해고의 합법적 근거인 ‘긴박한 경영상 이유’도 쌍용자동차 대량해고 등에서 갈수록 첨예한 노사 분쟁의 이유가 되어 왔다. 도재형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중대한 경영상 어려움이나 회사 존립은 주장하기 나름으로, 회사의 권리만큼 노동자의 권리 행사는 보지 않겠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형동 한국노총 중앙법률원 실장은 “회사의 어려움이 없을 만큼, 가령 3년치 소급분을 1년치로만 줄여 소송하면 된다는 말이냐”고 비판했다.
결국 이번 판결은 통상임금 논란을 수면 위로 밀어올린 한국지엠, 현대차와 같은 대기업과 대형로펌의 승리라는 해석이 나온다.
‘노동법 대가’로 불리는 김지형 전 대법관(지평지성 변호사)은 “이번 전원합의체에서 신의칙 적용을 갖고 가장 다툼이 컸던 것 같다. 나름 엄격히 기준을 제시하려고 노력한 것 같다”면서도 “신의칙은 기업들이 그간 소송에서 내놓았던 입장으로 그런 반응들이 법리적으로 반영된 것 같다”고 말했다.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
신의성실의 원칙 권리의 행사와 의무이행은 신의를 좇아 성실히 해야한다’는 민법에 근거한 원칙 가운데 하나다. 계약 관계에서 나에 대한 상대방의 신뢰를 헛되게 하지 않기 위해 나도 성실하게 상대방에게 응해야 한다는 일종의 의무 개념이다. 권리 남용을 막고 공공성을 높이기 위한 때 적용된다.
신의성실의 원칙 권리의 행사와 의무이행은 신의를 좇아 성실히 해야한다’는 민법에 근거한 원칙 가운데 하나다. 계약 관계에서 나에 대한 상대방의 신뢰를 헛되게 하지 않기 위해 나도 성실하게 상대방에게 응해야 한다는 일종의 의무 개념이다. 권리 남용을 막고 공공성을 높이기 위한 때 적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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