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사회 노동

“조별 속도경쟁 붙여 화장실에서 빵으로 끼니”

등록 2014-01-06 19:39수정 2014-01-06 22:10

지난해 5월7일 서울 서초구 서초동 삼성본관 앞에서 열린 전 삼성반도체 노동자 이윤정씨 1주기 추모 기자회견에서 참석자들이 삼성전자의 직업병 인정 등을 요구하고 있다.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지난해 5월7일 서울 서초구 서초동 삼성본관 앞에서 열린 전 삼성반도체 노동자 이윤정씨 1주기 추모 기자회견에서 참석자들이 삼성전자의 직업병 인정 등을 요구하고 있다.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싱크탱크 광장] 삼성 반도체 공장 전직 여성노동자들 인터뷰
21세기 디지털 시대에 무노조 경영 전략을 고수해온 삼성 노동자들의 노동상황은 어떤가? 김진희 경희사이버대 교수가 삼성전자 노동권의 현주소와 문제점을 분석한 내용을 중심으로 이를 살펴본다.

김 교수는 만 17~18살에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에 입사해 7~10년 넘게 일한 3명의 여성을 집중 인터뷰했다. 그 내용은 최근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다시, 삼성을 묻는다-삼성과 한국 사회의 선택’이란 제목의 두번째 토론회에서 발표됐다. ‘삼성의 노동통제와 노동권’이란 제목의 이 토론회는 삼성노동인권지킴이가 주관하고 학술단체협의회, 함께하는시민행동,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 등이 공동주최했다.


■ 속도는 생명이다? “12인치 웨이퍼(반도체의 얇은 판)가 캐리어(운반체)에 25개 들어가면 무게가 8㎏ 정도인데 너무 바쁘게 돌아가니까 들고 뛰었어요. 특히 8인치 웨이퍼는 많이 들고 다녔죠. 하루 100박스까지 들고 다니기도 했어요. 요즘은 수레가 도입됐지만, (제가 다닐 때는) 모두 손으로 옮겼죠.”

삼성전자 반도체공장에서 일했던 여성노동자 ㄱ씨의 증언이다. 그는 “조끼리 경쟁을 붙여서 조장이 다른 조는 10분 만에 가는데, 우리 조는 15분이나 걸린다고 다그치곤 했다”고 전했다. 전직 삼성전자 여성노동자 ㄴ씨는 “반도체 메모리 생산에서 수율(투입량 대비 완성품 비율)을 높이기 위해 각 조마다 경쟁을 붙이거나 노동 성과를 바탕으로 인사고과를 부여하는 방법으로 노동 통제가 이뤄지기 때문에 ‘속도는 곧 생명’이었다”고 폭로했다.

‘속도 경쟁’은 식사도 거르고 화장실 가는 것도 참는 최악의 상황으로 이어진다. 전직 삼성전자 여성노동자 ㄷ씨는 “식사를 하러 가면 작업 속도가 떨어지기 때문에 밥을 먹지 않을 때가 많았다”고 했다. 그는 또 “옆사람이 식사를 하러 가면 한사람이 두사람 몫을 봐야 하고 자칫 실수하면 안 된다는 조바심 때문에 1시간이 2~3시간 일하는 것처럼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했다.

이들을 인터뷰한 김진희 경희사이버대 교수는 “‘하루에 몇 끼를 먹느냐’고 물었더니 ‘한끼나 두끼를 먹는다’고 하더라. 이게 하루이틀이 아니라 5년, 7년씩 이런 생활을 했다”고 말했다. 여성노동자들에게는 화장실 가는 것도 쉽지 않았다. 방진복을 갈아입고 다시 에어샤워의 과정을 거치기까지 대략 10여분의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ㄱ씨는 “화장실에 가지 않으려고 다들 물을 적게 마신다”고 했다. ㄴ씨는 “식사와 화장실을 동시에 해결하기 위해 화장실에서 빵을 먹곤 했다”고 전했다.

식사 거르고 화장실도 참아야
가족주의 내세워 휴가도 눈치
안전교육은 노동자 아닌
제품 보호하기 위한 내용
방사선·화학약품 노출 빈발

■ 화학물질 공개는 영업비밀? 세 여성노동자는 “작업장에서 사용되는 화학물질이 어떤 종류이고, 얼마나 사용되는지 영업비밀이라는 이유로 명확히 밝히지 않는다”고 입을 모았다. 그러나 남성 엔지니어들에게는 ‘영업비밀’이라는 화학물질 목록이 적힌 ‘환경수첩’이 배포되고 있다. 환경수첩에 적힌 작업에 사용된 화학물질에는 트리클로로에틸렌(TCE) 등 발암성 물질 6종, 불임과 유산을 유발하는 디메틸아세트아미드 등이 포함됐다. ㄷ씨는 “노동자들에 대한 안전교육이 있긴 하지만 화학물질의 유해성이나 피해를 방지하는 교육이 아니라 제품을 보호하는 내용이었다”고 했다. 그는 또 “과열된 생산성 경쟁으로 노동자들은 장갑 등 최소한의 보호장비를 착용하지 않거나 작업 속도를 늦추는 인터록(보호장치)을 해제하고 작업하는 일이 수시로 발생한다”고 증언했다.

김진희 교수는 “불규칙한 식사와 장시간 노동으로 피로가 누적되고 스트레스가 쌓여 면역력이 떨어진 상황에서 방사선과 화학약품에 노출되는 경악할 상황이 반복됐다”며 “특히 여성노동자들이 삼성전자에 입사할 때 나이가 만 17~18살에 불과한데, 이 시기에는 면역력에 치명적인 손상을 입는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의 이런 분석은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에서 백혈병 등 암 질환 환자가 나온 것과 관련해 눈길을 끈다.

■ 사람 잡는 ‘유사가족주의’ 노조 없는 삼성전자에서 자리잡은 것이 ‘유사가족주의’다. ㄴ씨는 “여성노동자들의 입사일을 생일에 버금가게 중시해 애사심과 유사가족주의적 관계를 강화한다”고 전했다. ㄱ씨는 “회사는 분임조 활동을 권장하고 활동비까지 지원한다. 분임조에서는 ‘어떻게 하면 능률을 높일 수 있는가’에 대한 토론을 하고 아이디어가 채택되면 금전적 보상까지 따른다”고 했다. 그러나 유사가족주의는 휴가조차 마음 놓고 쓰지 못하는 덫을 놓는다. ㄷ씨는 “몸이 아파도 휴가를 내면 내 언니, 내 동생에게 업무가 가중되니 눈치를 보게 된다”고 했다. ㄱ씨는 “휴가는 형제자매의 결혼식과 부모님 회갑뿐이다. 생리휴가는 상상도 못한다. 휴가를 내면 ‘제정신이냐’ 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ㄴ씨는 “한번은 선배 언니가 계속 배가 아프다고 화장실을 자주 가니까 다들 눈치를 줬는데 알고보니 급성맹장염이었다”고 말했다.

토론자로 나선 박진 다산인권센터 상임활동가는 “과거 삼성이 ‘또하나의 가족’이라는 기업 광고로 상까지 받았는데, 회사를 전근대적인 ‘가족이데올로기’로 접근해 봉사를 강요하고 여성의 노동권과 인권을 침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삼성의 노동 착취와 인권 유린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삼성에는 여전히 노조가 거의 없다. 여성노동자들은 “감히 삼성에서 노조가 생길 수 있을까”라며 엄두를 내지 못한다고 김 교수는 전했다. ㄱ씨는 “관리자들이 ‘끼리끼리 모여서 회사 이야기 하는 것을 삼가라’, ‘혹시 그런 움직임이 있으면 이야기하라’고 경고한다”고 폭로했다. ㄴ씨는 “여성노동자 대부분이 순진한 농촌 출신들인데다 다들 피곤해서 다른 생각을 하기도 어렵다”고 했다. ㄷ씨는 “노사협의회가 있긴 하지만 작업자 어느 누구도 자신들의 이해를 대변해 줄 것으로 기대하지 않는다”고 했다.

김진희 교수는 “노동자의 기본적인 권리인 단결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 등 노동3권마저 보장되지 않고 있다”며 “인간의 자유와 존엄이 부정되는 곳을 민주주의 사회라고 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공장 안에서 거대한 폭력에 의해 인간의 존엄성을 말살하고 인권을 침해하는 것은 묵과할 수 없는 범법 행위”라고 강조했다.

■ 삼성식 노동 통제 삼성의 노동 통제는 비단 삼성전자의 여성노동자들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조돈문 가톨릭대 교수는 의원회관에서 열린 토론회에서 기조 발제를 통해 삼성은 그룹 차원에서 조직적으로 노동자 통제 체제를 운영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조 교수는 “삼성은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행위와 인적 관계 및 심리 동향까지 회사에 의해 감시·포착되고 있다고 느끼게 한다. 그 결과 노동자들은 일상적으로 감시당하고 있다는 심리 상태 속에서 감시 주체가 원하는 행동을 보이고 암묵적 지시까지 이행하는 철저한 자기검열을 거치게 된다”고 설명했다. 조 교수는 삼성의 노동 통제 방식을 △물리적 강제력 △물질적 보상 △조직 규범 △사회적 관계 등 4가지로 나눠 설명했다. 우선 물리적 강제력은 “신체적 폭력, 승진 및 고과 불이익, 징계와 해고 등 고통을 수반하는 신분상 불이익과 생존의 위협”이라고 했다.

물질적 보상은 “임금과 인센티브 등 물질적 혜택을 제공해 노동자들의 순응을 유도하는 통제 방식”이고, 조직 규범은 “조직의 목표를 수용하고 조직의 규범을 준수해 조직적으로 순응하게 하는 통제 방식”이라고 했다. 마지막으로 사회적 관계는 “노동자들이 순응하지 않으면 사회적 관계망으로부터 배제해 소외감을 주고 순응하면 사회적 관계망 속에서 포용해 심리적 안정감을 주는 통제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조 교수는 “일제강점기 양조장으로부터 세습한 삼성의 시대착오적 무노조 경영 전략의 결과물”이라고 설명했다.

삼성이 우리 사회에서 존경받는 기업이 되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까. 한인임 노동환경건강연구소 연구원은 우선 삼성에 대해 “국내법과 국제법, 국내 규제와 국제 규제를 지키고 자율적 국내외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 기준에 맞는 기업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충고했다. 한 연구원은 당국에 대해서도 “현행법을 엄격히 집행하고, 선진국처럼 중대 재해를 일으킨 기업에 징벌적 손해배상을 부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시민사회의 지속적인 기업 감시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김동훈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 수석연구원 cano@hani.co.kr

>>> ‘다시, 삼성을 묻는다’ 3~6차 토론회

삼성노동인권지킴이가 주관하고 학술단체협의회, 함께하는시민행동,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 등이 공동주최하는 ‘다시, 삼성을 묻는다-삼성과 한국 사회의 선택’ 3차와 4차 토론회가 1월10일과 24일 오후 2시부터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제2간담회실(202호)에서 잇따라 열린다.

3차 토론회는 한양대 김정주 교수의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삼성 예외주의를 중심으로 발표되며, 4차 토론회에서는 경기대 류성민 교수의 삼성의 인사노무관리방식 등을 놓고 열띤 토론이 벌어진다.

2월에 있을 5차와 6차 토론회는 7일과 21일 서울 공덕동 한겨레신문사 3층 청암홀에서 개최된다. 5차에서는 삼성의 법조지배 사례와 대안을 김성진 변호사가 발표하고, 6차 토론회에서는 김서중 성공회대 교수가 삼성의 언론지배를, 박갑주 변호사가 삼성 엑스(X)파일 사건을 통해 본 삼성의 사회적 지배란 제목으로 발제를 한다. 마지막 토론회인 6차에서는 특히 종합토론이 있을 예정이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참여를 바란다.


지난달 20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다시 삼성을 묻는다-삼성과 한국 사회의 선택’ 2차 토론회의 모습.
지난달 20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다시 삼성을 묻는다-삼성과 한국 사회의 선택’ 2차 토론회의 모습.

삼성 사업장 불법 과태료 건당 고작 8만3000원

정부의 공식 통계상 삼성의 노동자 산업재해율은 매우 낮다. 삼성의 몇몇 계열사는 과거 10여년간 무재해 달성으로 산재보험료를 환급받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기록이 과연 실상을 제대로 반영하는 것일까?

한인임 노동환경건강연구소 연구원은 삼성의 산업재해 통계를 믿을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 이유와 관련해 한 연구원은 우선 삼성중공업 등 주요 12개 계열사가 지난 6년간 554건에 달하는 산업안전보건법을 위반했다는 사실을 든다. 2013년 2월 고용노동부가 삼성반도체 화성공장을 상대로 한 특별감독 결과에서도 1934건의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사례가 확인됐다. 최근 몇 년간 삼성 사업장 곳곳에서 노동자가 숨지거나 다치는 사건·사고 또한 낮은 산재율을 무색하게 한다. 삼성전자 반도체공장에서의 백혈병 등 암 및 희귀 질환 환자의 수치는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반올림)에 접수된 것만 138명에 이른다. 이 가운데 56명은 이미 숨졌다. 삼성에스디아이(SDI)에서도 백혈병과 간암으로 인한 사상자가 잇따랐다. 화성공장 불산 누출 사고는 최근 4년간 세차례나 일어나 10여명의 사상자가 발생했고, 삼성정밀화학에서도 물탱크 붕괴로 대학생 등 3명이 숨졌다.

‘반올림’의 이종란 노무사는 “반올림에서 제보받은 삼성반도체 공장 노동자 가운데 90%가 암 환자이고, 5%가 희귀난치성 질환자였다. 화학물질에 노출돼 20대, 많아야 30대에 암에 걸린 사람들”이라며 “그런데도 삼성은 산재를 은폐하기 위해 피해 당사자만 회유하는 것이 아니라 정부기관과 병원 등을 상대로 전방위 로비를 펼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렇다면 왜 이런 산업재해가 되풀이되는 것일까? 산재의 직접적인 원인을 두고선 삼성 쪽 주장과 피해자 쪽 주장이 크게 엇갈리지만, 삼성의 산재 처리 방식에는 문제가 있어 보인다. 이에 대해 한 연구원은 ‘삼성의 산업재해 발생 원인과 처리 방식’이라는 주제의 기조 발제에서 △현행법 무시 △정부의 솜방망이 처벌 △삼성의 로비력 △정부의 관리 부실 등 4가지를 문제로 꼽았다. 예컨대 6년간 554건의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에 대한 처벌은 단지 과태료 4644만원이었다. 건당 평균 8만3000원에 불과한 수치였다. 한 연구원은 “노조가 있는 삼성 계열사에서 노조가 직접 조사를 하니, 13건 중 11건이 실제 산업재해를 은폐한 것이 드러났다”며 “삼성의 오래된 무노조 전략은 산업재해 은폐 과정에서도 크게 한몫하고 있었다”고도 지적했다. 이어 한 연구원은 “삼성이 현재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해 간다면 국민에게 존경받는 것은 그만두더라도 향후 큰 사회적 저항에 직면할 수 있다”며 “삼성이 사회적 책임 기준에 맞는 기업으로 거듭나야 인류사회에 공헌하겠다는 삼성의 목표가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글·사진 김동훈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 수석연구원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사회 많이 보는 기사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1.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2.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3.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4.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5.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