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사회 노동

26년 새마을호 정비기술 버리고, 경의선 전동열차 맡으라니…

등록 2014-04-10 20:40수정 2014-04-10 22:31

1988년 입사 뒤 줄곧 서울 수색차량사업소에서 일하다 코레일의 ‘순환전보 및 정기 인사교류’로 강제전출된 박창권씨가 10일 오전 경기도 파주시 문산차량사업소로 처음 출근해 일터를 바라보고 있다. 파주/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1988년 입사 뒤 줄곧 서울 수색차량사업소에서 일하다 코레일의 ‘순환전보 및 정기 인사교류’로 강제전출된 박창권씨가 10일 오전 경기도 파주시 문산차량사업소로 처음 출근해 일터를 바라보고 있다. 파주/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코레일 강제전출 첫날 | 26년차 박창권씨의 하루
10일 아침 7시48분, 박창권(53)씨는 서울 은평구 증산동 디지털미디어시티역 문산행 경의선 열차를 탔다. 한 정거장만 가면 하루 전까지 일하던 코레일 수색차량사업소지만 박씨는 수색역에서 내리지 않았다. 이날로 경기도 파주시 문산차량사업소로 ‘강제전출’된 탓이다. 박씨는 “1988년 입사해 지금껏 수색차량사업소에서 일했다. 그때 첫 출근할 때는 설렘과 걱정으로 가슴이 쿵쾅거렸는데, 오늘은 걱정뿐”이라고 말했다. 그는 코레일이 ‘순환전보 및 정기 인사교류’를 명분으로 이날 전보 발령을 낸 726명 중 한 명이다. 지난해 정부의 수서발 고속철도(KTX) 자회사 설립을 철도 민영화의 신호탄으로 여겨 23일간의 파업에 힘을 보탠 박씨는 ‘순환전보’를 바라거나 신청한 적이 없다.

새마을호·무궁화호를 끄는 기관차만 26년째 정비해온 베테랑 기술자 박씨는 이날부터 경의선 전동열차를 맡는 ‘신참 정비사’가 됐다. 그는 2주 동안 새로 교육을 받아야 한다. 낯선 환경에 적응하는 일만큼이나 ‘안전 문제’가 걱정이다. “한 분야의 장인이 되려면 10년 넘는 시간이 필요하다. 열차는 사람 손으로 정비하기 때문에 근무기간이 길수록 노하우가 쌓인다. 하루에도 수많은 사람이 타는 열차의 정비사를 갑자기 바꾸면 기술력이 떨어져 사고가 날 수도 있는데….”

입사해 줄곧
수색차량사업소서 일했다
무궁화·새마을호 전문
도면 안봐도 정비 가능하다

갑자기 문산차량사업소로 발령
경의선 전동열차 정비하란다
박씨는 전보 신청한 적 없다

박씨를 기다린 건 2주 신참교육
새마을-전동차는 완전히 다른 분야
“시민 안전엔 관심 없다는 뜻”

“사고가 날 수도 있는데…”
박씨의 출근길이 천근만근이다

사람들 눈에는 비슷해 보이겠지만 고속철도(KTX), 일반열차(새마을·무궁화호), 광역열차(전철·지하철)의 설계·연식·운행방식은 전혀 다르다. 박창권씨가 맡아온 일반열차 기관차는 열차를 몰 수 있는 엔진 위주로 정비한다. 하지만 새로 맡게 될 경의선 전동차는 동력과 객차가 하나로 합쳐져 있고 중점 정비 대상도 출입문, 방송장치, 난방시설 등이다. 베테랑 기관사이기도 한 박흥수 사회공공연구소 열차담당 객원연구원은 “20년 넘게 일하며 쌓은 경험과 전문성 덕에 도면을 보지 않아도 무궁화·새마을호 기관차를 정비할 수 있는 사람들을 완전히 다른 분야로 보내는 건 비효율적인데다 시민 안전엔 관심이 없다는 뜻”이라고 짚었다.

코레일은 ‘순환전보’의 이유로 ‘인력 불균형 해소’를 내세웠지만 박창권씨의 생각은 다르다. 이번 전보는 1994년 ‘전국기관차협의회’의 파업과 2000년 철도노조 위원장 직선제 확보를 위한 철도 공동투쟁본부의 싸움 이후 처음으로 실행되는 대규모 전보다. 과거의 전보는 ‘징계’ 차원에서 이뤄졌고, 강제전출된 직원들이 심적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하고 자살하는 상황까지 벌어졌다. 2003년 ‘어용노조’를 몰아내고 민주화된 철도노조가 맺은 단체협약에 ‘징계 차원의 비연고지 전보 금지’를 명시한 것도 이런 나쁜 선례 때문이다. “문제가 많아서 강제전출을 못 하게 만들었는데 과거로 돌아간 것 같다. 파업 전부터 파업에 참여하면 강제전출될 거란 소문이 돌았다. 철도노조가 민영화를 반대하니 조합원들의 결속력을 약화시키려 강제전출한다고밖에는 생각할 수 없다.” 박창권씨가 희부연 봄하늘을 바라보며 말했다.

회사에 대한 배신감으로 얼룩진 박창권씨의 이날 출근길은 천근만근이다. 아침 9시 문산차량사업소 2층 회의실에 도착한 박씨 등 전출자 15명의 귀로 한 조합원이 휴대전화로 연결한 방송 뉴스가 흘러들었다. “철도노조 조합원 두명이 수색역에 있는 45m 철탑에 올라가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습니다….”

김민경 기자 salmat@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사회 많이 보는 기사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1.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2.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3.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4.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5.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