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노동자 변선영(51)씨의 하루는 서울 노원구 광운대 학생들보다 일찍 시작된다. 새벽 5시께 나와 2층부터 3층까지 강의실, 복도, 화장실까지 변씨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이 없다. 지난 5일 오전 광운대에서 만난 변씨는 화장실과 문 뒤 등 학교 곳곳에 ‘숨겨둔’ 빗자루와 대걸레를 찾아 복도를 청소하고 있었다. “학생들이 아침부터 수업을 들으니까 조용조용히 치우고 다녀요.”
오전 6시부터 오후 3시까지 일하게 돼 있는 변씨의 시급은 얼마 전까지 올해 최저임금인 5210원이었다. 몇년 전 남편 사업이 어려워진 뒤 이 일에 뛰어든 변씨는 2012년부터 줄곧 최저임금을 받았다. 노동조건도 ‘최저’였다. 몸이 아파 쉬어야 했던 동료는 그대로 해고됐고, 청소도구마저 변덕스러운 소장 눈치를 봐야 얻을 수 있었다. 변씨는 “같이 일하는 언니들이 ‘청소하고 경비하는 우리네들은 사람 취급 못 받는다’고 그랬어요. 최저임금 받으니까 최저 인생, 밑바닥 인생인가 싶기도 했고요”라고 말했다.
하지만 변씨의 올해 시급은 이제 6200원이 됐다. 지난해 말까지 받던 최저임금 시급 4860원에서 1340원이 오른 금액이다. 무려 27.6%의 임금 인상률이다. 1월부터 소급적용도 받게 됐다. 변씨가 몸담고 있는 공공운수노조 서울경인지부(서경지부)가 용역업체들과 지난달 26일 임금협약에 합의한 결과다.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그 전엔 언감생심이던 명절 상여금을 1년에 18만원씩 받기로 했다. 서경지부에 가입한 다른 학교 청소노동자들은 식대도 다달이 9만원을 받는다. 광운대는 아침·점심에 국과 밥을 제공해주는 점을 고려해 올해는 일단 식대를 받지 않기로 양보했다. 어린이집 차량 운전사로 일하는 남편과 함께 네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는 변씨는 “내 인생 첫 임금협약이에요. 전에는 최저임금이 뭔지도 몰랐어요. 회사가 올려줘서 월급이 매년 오르는 줄 알았죠”라고 말했다. ‘6200원의 기적’이 즐거운 변씨는 ‘조합원의 시급을 6200원으로 인상한다’는 올해치 임금협약서를 품속에 고이 간직하고 있다.
서울 성북구 월계동 광운대학교 청소노동자로 공공운수노조 조합원인 변선영씨가 자신들의 휴게실로 쓰이는 물탱크실 옆 공간에서 열악한 근무환경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이 변화는 모두 지난해 10월 서경지부에 가입한 뒤 일어났다. 변씨가 처음부터 ‘6200원의 기적’을 믿었던 건 아니다. 변씨의 동료 노동자 박순옥(59)씨가, 앞서 서경지부에 가입한 인덕대에서 일하는 동네 이웃에게서 “집단교섭 덕에 임금도 오르고 주5일 근무를 하게 됐다”는 이야기를 듣고 지난해 10월 서경지부에 ‘덜컥’ 가입했을 때까지도 그랬다.
변씨는 “노조가 생기면 용역업체 소장이 함부로 할 수도 없고, (우리가) 하고 싶은 말도 다 할 수 있다고 했는데, 처음엔 다들 (노조에 가입하면 해고될까) 무서워 벌벌 떨었어요. 최저임금보다 많이 받는다는 말도 우리는 못 믿었죠”라고 떠올렸다. 그러나 이사장의 손자 집 청소 같은 ‘상납 노동’에서 폭언과 성희롱까지, 용역업체 소장의 횡포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마음이 간절했다. 결국 해고 운운하는 소장의 협박에도 환경미화 노동자 86명 중 49명이 노조에 가입했다. 변선영씨에게 6200원은 ‘인간 선언’인 셈이다.
더욱 뜻깊은 일은 올해 최저임금보다 990원이 더 많은 시급과 명절 상여금 등을 광운대 청소노동자만 받는 게 아니라는 사실이다. 고려대·경희대·연세대·이화여대·홍익대 등 서울지역 대학 14곳에서 환경미화나 경비, 시설관리를 하며 서경지부에 가입한 노동자들 모두에게 적용된다.
그 뒤에는 집단교섭의 힘이 있었다. 개별 대학 노조가 각각의 용역업체와 임금 등을 협상하는 게 아니라 초기업 노조인 서경지부에 소속된 노동자 대표들이 용역업체 대표들을 모아놓고 협상을 한 끝에 얻어낸 열매다. 이남신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소장은 “가장 취약한 저임금 여성 노동자들을 조직화하고 집단교섭을 통해 전체 업종 차원의 조건을 상향평준화하고 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그 과정이 순탄했던 것만은 아니다. 광운대 청소노동자들은 지난해 노조를 만든 뒤 용역회사에 집단교섭을 요구했다 거절당하자 12월5일 한나절가량 총장실을 점거했다. 그 뒤 집단교섭 테이블은 마련됐으나 업체는 노조의 요구를 완강히 거부했다. 끝내 3월3일 하루짜리 파업을 벌이고서야 회사 쪽을 교섭 자리에 끌어낼 수 있었다.
‘연대의 힘’으로 자기 권리를 찾은 변씨의 시선은 이제 더 낮은 곳을 향한다. 최저임금의 비현실성을 몸소 겪었기에 인상을 요구하는 집회에 누구보다 열심히 참석했다. 27일 결정된 2015년 최저임금은 5580원. 변씨의 시급 6200원과 비교하면 많이 부족하다. “같은 처지에 있는 모두가 몇 달 동안 함께 소리 내서 6200원을 얻어냈잖아요. 이제 최저임금밖에 못 받는 사람들에게도 관심을 가질 거예요.”
김민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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