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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노동

손해배상 할래 회사 나갈래

등록 2014-07-18 19:05수정 2014-07-24 16:29

[토요판] 손배 가압류의 현장
(4) 구미 KEC
많은 사업장에서 손해배상과 가압류는 노조를 파괴하는 데에 악용된다. 이 때문에 회사는 노동자에게 손해배상 청구나 가압류 대상에서 제외해주겠다고 꼬드기며 ‘노조 탈퇴’를 종용한다. 하지만 구미 지역의 반도체업체로 삼성전자와 엘지전자에 주로 납품하는 케이이씨(KEC)는 다르다. 이 회사가 ‘손해배상’을 무기로 직원들에게 요구하는 것은 ‘노조 탈퇴’가 아닌 ‘퇴사’다.

이명박 정부가 고용을 늘리겠다며 노동부의 명칭을 ‘고용노동부’로 바꾼 2008년 케이이씨의 임직원은 연말을 기준으로 총 1106명이었다. 당시 민주노총 금속노조 산하의 케이이씨지회는 전체 직원의 70% 가까운 731명의 노조원을 거느리고 있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을 보면, 지난해 말 케이이씨의 임직원은 677명으로 줄어든다. 지회 노조원은 160명에 불과하다. 지난 6년간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김성훈 지회장은 문서 하나를 공개했다. ‘확약서’라는 제목의 이 문서에는 퇴직을 결심한 한 노동자와 회사 간의 합의 사항이 적혀 있었다. “본인은 회사와 합의하에 희망퇴직을 신청하며, 금일 이후 회사와의 모든 법적 이의제기 및 회사의 정상적인 경영활동을 저해하는 행위를 하지 않겠습니다… 회사는 본인 의사로 합의한 자에 대해 상호분쟁과 관련된 제반 민형사상의 진행을 취하하거나 또는 합의 정신에 의한 원만한 해결을 위해 최대한 협조할 것을 확약합니다.”

김성훈 지회장은 “회사를 그만둬야만 회사가 손해배상 청구에서 제외해주겠다고 확약서를 써준다. 지난 5년여간 회사는 여러 방법과 경로로 희망퇴직을 압박했고, 손해배상으로 압박해 퇴사한 노조원만 150여명”이라고 전했다.

케이이씨 노조가 2010년 6월부터 11월까지 진행한 노동쟁의로 인해 회사는 이듬해 3월 301억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민사소송을 걸어왔다. 회사가 노동쟁의를 이유로 손해배상을 청구한 금액 중에 단연 최고액이었다. 하지만 이듬해 케이이씨는 청구금액을 156억원으로 변경했다. 회사가 보기에도 과도하게 청구했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회사가 법원에 제출한 ‘청구취지 및 청구원인변경신청서’를 보면, “쟁의 이후 불량품 선별 절차를 감행한 결과” 혹은 “증명할 수 있는 자료가 한정적이어서” 등의 이유가 적혀 있다.

케이이씨 노조가 이처럼 막대한 금액을 청구받은 이유는 2010년 6월부터 진행된 노동쟁의와 직장폐쇄, 공장 점거 농성이 결정적이었다. 회사는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하며 법원에 제출한 소장에서 “노조가 근로시간면제한도(속칭 타임오프제도)의 시행으로 유급 노조전임자가 줄어들자 이를 막기 위해 노조전임자 수와 처우 현행유지를 요구했고, 회사는 현행법에 위배되는 내용이므로 교섭 대상이 될 수 없음을 분명히 밝혔다. 그럼에도 노조는 이 사안으로 5차례 간헐적인 파업을 진행하다 전면파업에 돌입했다”고 주장했다. 반면 노조 쪽은 회사가 허위 주장을 하고 있다고 반박한다. 배태선 민주노총 구미지부 사무국장은 “2010년 노조는 당시 3년째 동결인 임금 인상을 단체협상의 최우선 의제로 선정해 협상을 요구했고, 회사는 이에 제대로 응하지 않았다. 타임오프를 빌미로 파업했다는 것은 순전히 날조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노조 쪽은 임단협이 결렬되고 지역노동위와 중앙노동위의 중재를 받고서 절차에 따라 파업을 진행했다는 입장이다.

케이이씨 노동자들이 그나마 안도하는 것은 아직 급여나 부동산 가압류가 걸리지 않았다는 점이다. 배 국장은 “회사가 일부 손해청구에 대해 가압류를 신청했으나, 법원이 기각했다. 그러나 1심 판결이 나오면 상황이 어떻게 변화할지 몰라 노조원들이 불안해하고 있다”고 전했다.

케이이씨는 손해배상 이외에도 ‘정리해고’라는 카드를 자주 빼들어 노동자들을 압박한다. 2012년엔 75명의 정리해고를 예고했다. 노조원을 겨냥한 정리해고였다. 이로 인해 10명의 노조원은 ‘손해배상 청구에서 제외한다’는 회사의 약속을 받고, 희망퇴직을 신청했다. 회사는 그해 임금삭감이 포함된 노사합의를 이끌어낸 후 정리해고 계획을 철회했다. 케이이씨는 올해 3월에도 4월17일부로 148명을 전격 정리해고하겠다고 전격 발표했지만, 정작 당일에 ‘정리해고를 취소한다’는 문자를 발송했다. 케이이씨는 부당노동행위로 인한 소송도 진행하고 있다. 2010년 7월 케이이씨의 기획부가 작성한 ‘비상경영 상황 일보’에는 ‘각 조합원에 손해배상 및 가압류 설정 예정 통지(압박 전략 차원)’ 등의 내용이 담겨 있었다. 검찰은 이 사건을 수사해 전직 임원 1명을 기소했고, 재판이 진행중이다. 배 국장은 “노동자와 회사에 들이대는 법의 잣대가 너무나도 다르다. 검찰의 미온적인 수사로 전직 임원 1명을 기소하는 데에 그쳤다”고 평가했다.

윤형중 기자 hjy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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