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초동 대법원 대법정에서 2011년 1월 전원합의체 심리가 열리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2009년 철도파업 불법” 판결
“정말 속상합니다. 2011년 전원합의체 판결은 예외적 경우에만 파업행위를 처벌해야 한다는 취지로 ‘전격성’이라는 요건을 제시한 겁니다. 인권 확장을 위해 노력한 과정이 이렇게 뒤집히는 것인지, 정말 아쉽네요.”
2011년 3월 전원합의체 판결에 참여한 전직 대법관은 2009년 철도노조 파업에 대한 대법원의 유죄 취지 파기환송에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당시 대법관 13명 전원이 수차례 합의 과정을 거쳐 어렵게 내놓은 전향적 판결이 이번에 대법관 4명만 참여하는 소부의 해석에 따라 사실상 무력화됐기 때문이다. 당시 대법원은 헌법이 보장하는 노동자 단체행동권을 하위 법률과 판례가 크게 제약하는 문제에 관해 치열한 논쟁과 고민 끝에 판례를 바꾼 터였다.
3년전 ‘이용훈 대법원’ 체제서
‘전격성’ 요건 도입해
단체행동권 합법화 숨통 ‘양승태 대법원’ 소부 해석으로
‘전격성’ 넓게 해석
‘업무방해죄’ 족쇄 다시 부활 전원합의체 심리 안거치고
전원합의체 판례 무력화
전직대법관 “정도 벗어난 일” ■ 어떤 파업이 정당화될 수 있단 말인가 2011년 대법원이 바꾼 업무방해죄 판례는 ‘전격성’이라는 한 단어로 요약될 수 있다. 예상하거나 대비할 수 없을 정도로 전격적으로 단행돼 사용자에게 큰 피해를 입힌 경우에만 처벌하자는 것이다. 하지만 이번 판결은 2011년 판례를 드러내놓고 부인하지 않으면서도 “철도공사가 부당한 목적의 파업을 강행하리라 예측하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러나 노동계에서는 이런 경우까지 ‘전격성’을 인정한다면 어떤 파업도 합법성을 인정받지 못할 것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양현 철도노조 법규국장은 “사쪽에 수차례 성실 교섭을 촉구했고, 구체적 날짜까지 밝히며 파업을 경고했다. 그래도 ‘전격성’이 있다는 것인데, 앞으로 파업을 하지 말라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판결문을 보면, 당시 철도노조는 대정부 총력투쟁 선포→쟁의행위 돌입 발표→순환파업 투쟁명령→전면파업 돌입 결의 등으로 거듭 파업 방침을 밝히고 수순을 밟았다. 권두섭 민주노총 법률원장은 “파업을 예측하고 대비했다는 사실이 철도공사 내부자료로도 드러나는데, 오로지 대법원만 ‘예측할 수 없었다’고 결론내린 것”이라고 비판했다. ■ 20년 만의 진전이 다시 후퇴하나? 쟁의행위는 당연히 사용자의 업무 지장을 전제로 하는데, 이를 폭넓게 처벌한다면 단체행동권은 자칫 껍데기만 남게 된다. 형법에는 파업을 명시적으로 처벌하는 조항이 없다. 이 때문에 수사기관과 법원은 업무방해죄를 이용해 파업을 억눌러왔다. 대법원은 1991년 “쟁의행위는 본질적으로 위력에 의한 업무방해의 요소를 포함하고 집단적인 작업의 거부, 즉 노무 제공의 거부라도 정당한 쟁의행위가 아니라면 형법상 업무방해죄에 해당한다”고 판시했다. 파업에 업무방해죄 적용을 인정한 첫 판례다. 대법원은 20년이 지난 2011년 판례를 바꿔 업무방해죄 적용 범위를 좁혀놨다. 심하게 기울어져 있던 저울을 일부나마 평형에 가깝게 만들어놓은 것이다. 하지만 보수적이라는 평가를 받는 양승태 대법원장(2011년 9월 취임) 체제의 대법원이 3년여 만에 파업 관련 판례를 사실상 거꾸로 돌려놓은 셈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전직 대법관은 “2011년 전원합의체 판결에 문제가 있다고 하면 다시 전원합의체를 구성해 판례를 변경하는 편이 옳다. 이렇게 해석을 달리해서 사실상 판례를 뒤집는 것은 정도에서 벗어난 일”이라고 말했다. 2011년 ‘쟁의행위에 업무방해죄를 적용하는 것 자체가 위헌적’이라는 소수의견을 낸 김지형 전 대법관은 “(2011년 판례 변경 당시) ‘전격성’의 해석에 따라 무의미한 판결이 될 수 있다는 우려를 소수의견에 담았었다. 그 우려가 현실이 된 셈”이라고 말했다. 노현웅 김민경 김선식 기자 goloke@hani.co.kr ▷관련기사 : 대법, 파업에 업무방해죄 적용 확대 ‘역주행’
‘전격성’ 요건 도입해
단체행동권 합법화 숨통 ‘양승태 대법원’ 소부 해석으로
‘전격성’ 넓게 해석
‘업무방해죄’ 족쇄 다시 부활 전원합의체 심리 안거치고
전원합의체 판례 무력화
전직대법관 “정도 벗어난 일” ■ 어떤 파업이 정당화될 수 있단 말인가 2011년 대법원이 바꾼 업무방해죄 판례는 ‘전격성’이라는 한 단어로 요약될 수 있다. 예상하거나 대비할 수 없을 정도로 전격적으로 단행돼 사용자에게 큰 피해를 입힌 경우에만 처벌하자는 것이다. 하지만 이번 판결은 2011년 판례를 드러내놓고 부인하지 않으면서도 “철도공사가 부당한 목적의 파업을 강행하리라 예측하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러나 노동계에서는 이런 경우까지 ‘전격성’을 인정한다면 어떤 파업도 합법성을 인정받지 못할 것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양현 철도노조 법규국장은 “사쪽에 수차례 성실 교섭을 촉구했고, 구체적 날짜까지 밝히며 파업을 경고했다. 그래도 ‘전격성’이 있다는 것인데, 앞으로 파업을 하지 말라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판결문을 보면, 당시 철도노조는 대정부 총력투쟁 선포→쟁의행위 돌입 발표→순환파업 투쟁명령→전면파업 돌입 결의 등으로 거듭 파업 방침을 밝히고 수순을 밟았다. 권두섭 민주노총 법률원장은 “파업을 예측하고 대비했다는 사실이 철도공사 내부자료로도 드러나는데, 오로지 대법원만 ‘예측할 수 없었다’고 결론내린 것”이라고 비판했다. ■ 20년 만의 진전이 다시 후퇴하나? 쟁의행위는 당연히 사용자의 업무 지장을 전제로 하는데, 이를 폭넓게 처벌한다면 단체행동권은 자칫 껍데기만 남게 된다. 형법에는 파업을 명시적으로 처벌하는 조항이 없다. 이 때문에 수사기관과 법원은 업무방해죄를 이용해 파업을 억눌러왔다. 대법원은 1991년 “쟁의행위는 본질적으로 위력에 의한 업무방해의 요소를 포함하고 집단적인 작업의 거부, 즉 노무 제공의 거부라도 정당한 쟁의행위가 아니라면 형법상 업무방해죄에 해당한다”고 판시했다. 파업에 업무방해죄 적용을 인정한 첫 판례다. 대법원은 20년이 지난 2011년 판례를 바꿔 업무방해죄 적용 범위를 좁혀놨다. 심하게 기울어져 있던 저울을 일부나마 평형에 가깝게 만들어놓은 것이다. 하지만 보수적이라는 평가를 받는 양승태 대법원장(2011년 9월 취임) 체제의 대법원이 3년여 만에 파업 관련 판례를 사실상 거꾸로 돌려놓은 셈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전직 대법관은 “2011년 전원합의체 판결에 문제가 있다고 하면 다시 전원합의체를 구성해 판례를 변경하는 편이 옳다. 이렇게 해석을 달리해서 사실상 판례를 뒤집는 것은 정도에서 벗어난 일”이라고 말했다. 2011년 ‘쟁의행위에 업무방해죄를 적용하는 것 자체가 위헌적’이라는 소수의견을 낸 김지형 전 대법관은 “(2011년 판례 변경 당시) ‘전격성’의 해석에 따라 무의미한 판결이 될 수 있다는 우려를 소수의견에 담았었다. 그 우려가 현실이 된 셈”이라고 말했다. 노현웅 김민경 김선식 기자 goloke@hani.co.kr ▷관련기사 : 대법, 파업에 업무방해죄 적용 확대 ‘역주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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