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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노동

“50년 전에는 ‘공순이’…지금은 ‘비정규 인생’”

등록 2014-09-17 21:30수정 2014-09-18 05:42

박근혜 대통령이 1976년 서울 구로공단 여공들이 군대에 입대하는 행사에 참석해 격려하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박근혜 대통령이 1976년 서울 구로공단 여공들이 군대에 입대하는 행사에 참석해 격려하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구로공단 50돌

기념식장 앞 노동자 손팻말시위
행사전 ‘50인 선언’ 발표하기도
“박 대통령, 피눈물 산업화 사과를”

공단 노동자 절반가량 비정규직
“저임금 시달리는 삶 변하지 않아”
“50년 전에는 공순이 인생, 50년 뒤에는 비정규 인생.”

17일 오전 11시께 서울 구로구에 있는 서울디지털산업단지(옛 구로공단)의 한국산업단지공단 앞에서 40여명의 노동자가 손팻말 시위를 벌였다. 1964년 한국 첫 국가산업단지로 출발해 산업화를 이끈 구로공단의 50번째 생일을 축하하는 행사 주최 쪽으로서는 불쾌하게 여길 만한 일이다. 이날 행사의 구호는 “산업화의 주역에서 창조경제 거점으로”다. 50년 전 아버지 박정희 대통령이 시작한 구로공단의 50살 생일을 기념하는 자리에 딸 박근혜 대통령이 참석했다.

박 대통령은 축사에서 한국의 폭발적인 경제성장을 언급한 뒤 “이런 성과는 전국 각지의 산업단지와 그곳에서 묵묵히 일해 온 기업인과 근로자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말했다.

노동자들은 대통령의 칭찬을 곧이곧대로 듣지 않았다. 구로공단에서 일해 온 노동자 50명은 이 행사에 앞서 오전 9시께 기자회견을 열고 ‘구로 노동자 50인 선언’을 발표했다. 주로 여성이었다. 선언은 “박근혜 대통령이 먼저 피눈물의 산업화 시기에 대한 반성과 사과를 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1968년 한국수출산업공업단지(현 서울디지털산업단지)에서 열린 제1회 무역박람회 개막식에 참석한 박정희 전 대통령 모습. 한국산업단지공단 제공
1968년 한국수출산업공업단지(현 서울디지털산업단지)에서 열린 제1회 무역박람회 개막식에 참석한 박정희 전 대통령 모습. 한국산업단지공단 제공
아버지 박 대통령 시절 구로공단 여공들은 하루 12시간은 기본이고 15시간이 넘는 살인적인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면서도 ‘라보때’(라면으로 보통 때운다)라는 말이 유행할 정도로 궁핍한 삶을 살아야 했다. 1970년 전태일 열사가 남긴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라는 외침은 실제 기계처럼 취급받은 노동자의 절규였다. 동시에 그들은 “공순이”라는 모멸적 부름 속에서 살았다.

국가는 노동자를 ‘산업역군’이라고 추어올리면서도 이들 ‘역군’의 권리는 인정하지 않았다. 노조를 만들면 구속했고 쟁의행위 기미만 보이면 경찰의 방관 속에 구사대의 쇠파이프와 각목이 날아들었다. 노동청은 노동자 편이 아니었다.

2000년 서울디지털산업단지로 이름을 바꾼 구로공단 노동자들의 삶은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서울남부지역 노동자권리찾기 사업단 ‘노동자의 미래’가 지난해 초 구로공단 노동자 2685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를 보면, 절반가량(45.9%)이 비정규직이다. 15.7%는 최저임금(4860원) 미만을 받는 저임금 노동자다.

이날 50인 선언에는 1985년 구로동맹파업 당시 대우어패럴 노조 사무장으로 철야농성을 조직했다는 이유로 구속된 강명자(51)씨가 이름을 올렸다. 그는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공단 생활 30년 동안 바뀐 게 있다면 내 손에 핸드폰이 생기고 유리벽 건물이 많이 들어선 것이다. 그땐 그나마 정규직이었으나 지금은 비정규직이 넘쳐난다. 저임금에 시달리는 노동자의 삶은 변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강씨는 지금도 구로공단에서 미싱을 돌린다.

박근혜 대통령이 2011년 10·26 재·보궐 선거운동 첫날 서울 디지털산업단지를 방문해 직장인들과 식사를 하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박근혜 대통령이 2011년 10·26 재·보궐 선거운동 첫날 서울 디지털산업단지를 방문해 직장인들과 식사를 하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기륭전자 조합원들은 그렇게 비정규직이 된 여공의 불안정한 삶을 웅변한다. 1895일에 걸친 투쟁 끝에 2010년 복직에 합의했으나 회사는 지난해 12월30일 구로공단에서 도망이사를 갔고, 여공들은 17일까지 아홉달째 텅 빈 사무실 농성을 이어갔다. 이들은 이날 저녁 서울 광화문 인근에서 ‘사회적 합의 파괴는 범죄다’라는 이름의 문화제를 열었다.

전종휘 기자 symbi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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