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승헌 기자
현장에서
서울중앙지방법원이 지난주 현대자동차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낸 근로자 지위 확인 소송에서 이들의 정규직 지위를 인정한 판결을 내린 데 이어, 25일 기아자동차 사내하청 노동자들에 대해서도 불법 파견임을 인정했다. 하지만 현대차는 24일 법원 판결에 항소했고, 기아차도 사실상 항소 수순을 밟고 있다. ‘양보는 없다’는 현대·기아차의 강경 입장에 사내하청 노동자들은 지난한 법정 다툼을 다시 이어가야 할 처지다.
현대·기아차의 강경한 태도는 임금 및 단체협상에서도 마찬가지다. 한국지엠(GM)과 쌍용자동차가 지난해 대법원 판결 이후 상여금을 통상임금에 반영하면서 일찌감치 임단협을 마무리했지만 현대·기아차는 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해 달라는 요구에 “(현대차 관련) 법원 판결을 기다리자”는 주장만 되풀이하고 있다. 노조가 부분 파업에 나서자 “생산 차질이 우려된다”며 목소리를 높이는 장면도 어김없이 나왔다.
문제가 생기면 ‘노조 탓’을 드는 구태의연함과, ‘당장의 손실’을 내세우며 양보나 타협보다 단호함을 앞세우는 것은 현대·기아차 노무관리의 한 특징이다. 통상임금 문제에서는 ‘법원 판결 존중’을 외치면서도, 사내하청 관련 판결을 앞두고는 ‘당사자 합의’를 강조하며 사내하청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채용에 나서 소 취하를 유도하는 것을 두고 ‘이중적’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현대·기아차는 2000년대 들어 ‘품질 경영’을 내세워 체질 개선에 주력했다. 그 결과 2002년 235만대였던 전세계 판매량이 지난해 756만대로 늘었다. 통 큰 베팅으로 한전 터 인수자로 선정된 뒤에는 “100년 앞을 내다본 결정이자 제2 도약의 계기”라고 말할 자신감도 있다. 하지만 노사관계를 보는 시각이나 노무관리는 여전히 ‘오랜 옛날’에 머물러 있다.
현대·기아차 안에서도 노동자를 대하는 방식이 이제는 바뀌어야 한다는 공감대가 일정 부분 형성돼 있다는 말이 나온다. 단지 ‘회사의 공식 입장’과 다른 의견을 내는 게 자칫 ‘항명’으로 비칠 수 있는데다 특유의 하향식 의사결정 구조라는 벽이 다른 목소리가 공개적으로 나오는 것을 막고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사내하청 판결에 대해 항소할지 말지는 현대·기아차에 주어진 법적 권리가 분명하다. 하지만 항소를 선택하기 전에, 신차를 만들고 신사옥을 짓는 것만으로 ‘제2 도약’이 가능할지는 생각해 볼 필요가 있어 보인다. 박태주 고용노동연수원 교수는 “사내하청 노동자를 상대로 시간 벌기용으로 보일 수 있는 소송을 이어가면 손실이 더 클 것”이라며 “(그 시간에) 고용 안정과 내부적 유연성(물량 이동 등) 확보 방안을 고민해 생산성을 높이는 방법을 찾는 등 변화의 시작점으로 삼는 게 장기적으로 득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박승헌 기자 abc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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