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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노동

“23명이 말 한마디 못 듣고 해고”…‘임대 노동자’의 비애

등록 2014-10-01 22:10수정 2014-10-02 13:02

건국대 주차 정산원으로 일하던 이봉오씨가 9월12일 자신의 일터였던 서울 광진구 화양동 건국대 주차정산소 앞에서 손팻말을 든 채 1인시위를 벌이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건국대 주차 정산원으로 일하던 이봉오씨가 9월12일 자신의 일터였던 서울 광진구 화양동 건국대 주차정산소 앞에서 손팻말을 든 채 1인시위를 벌이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심층 리포트] 브레이크 없는 나쁜 일자리, 간접고용
② 차별받는 ‘실낱 목숨’
하얀색 아반떼 승용차가 주차장 차단기 앞에 멈추자 전광판에 글자가 떴다. “요금 1500원.” 주차 정산원한테 돈을 건네니 차단기가 열렸다. 아반떼가 나간 자리는 회색 에스엠5(SM5)가 채웠다. 멈춰선 차 위로 “미래를 위한 도약, 세계를 향한 비상”이라 적힌 펼침막이 바람에 흔들렸다. 지난달 3일 서울 광진구 건국대 ‘건국문’ 앞 풍경은 주차 정산원 이봉오(63)씨가 일하던 2주 전과 다르지 않았다. 바뀐 건 일 하는 사람뿐이다.

“요금을 가장 많이 받은 게 어린이날 하루 건국문 정산소에서 630만원 받은 거에요. 건국대에 정산소가 세 개 있는데 상허문의 매상은 다른 두 곳의 10분의 1밖에 안 돼요. 건국문 앞에는 어린이대공원이, 일감문 앞에는 결혼식장이 있거든요.” 건국대 주차정산원으로 8년을 일한 이씨는 1500여대를 수용할 수 있는 주차장이 손바닥 보듯 훤하다. 서울 강남에서 200평 세차장을 임대해 운영하던 이씨는 8년 전 땅 주인이 건물을 세우려해 세차장 일을 접었다. 그 뒤 찾은 새 직업이 주차 정산원이다. 성실히 일한 덕에 주임으로 승진도 했다. 하지만 8월19일 주차장을 임대 운영하던 업체가 바뀌며 그도 직장을 잃었다.

건국대 주차정산원 이봉오씨
8년간 일했지만 통보없이 쫓겨나
하청업체 KT텔레캅으로 바뀌면서
이전 회사 노동자들 고용승계 거부

23명중 12명 학교서 45일째 농성중
이씨 “하청업체 바뀌면서 생긴 일
원청인 학교가 고용승계 책임져야”
건국대 “임대계약 회사 권한” 외면

그날 이씨는 평소처럼 오후 6시에 출근했다. 이씨의 자리에는 이미 다른 사람이 앉아 있었다. 사전 통지는 없었다. “스물 세 명이 말 한 마디 못 듣고 해고당하는 게 사람 사는 세상에서 있을 수 있는 일이에요? 가능한 일입니까?” 그날을 떠올리던 이씨의 목소리가 커졌다. 23명 중 이씨와 동료 11명은 그날부터 건국대 본관인 행정관에서 농성을 시작했다. “고용승계 비정규직 노동자의 절실함”, “해고는 살인이다 고용승계 보장하라”. 농성장에 걸린 대자보와 펼침막에 가장 많이 쓰여 있는 글자는 “고용승계”다.

건국대는 주차장을 임대 운영한다. 원청이 도급계약을 맺은 하청업체에 도급비를 지급하는 용역과 달리, 임대계약에선 임대업체에 해당 업무 운영권을 주고 그 수익의 일부를 원청이 받는다. 건국대는 “인력 파견 용역이나 간접고용과 달리 외주 임대는 일정 임대료만 받고 사업 운영과 관련된 건 전적으로 해당 기업이 알아서 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 말 안에도 파견, 용역, 간접고용, 외주, 임대 등 법적으로 명확하지 않은 여러 개념이 섞여있다. 김종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연구실장은 “상시 지속 업무를 비용 절감 등의 이유로 제3자에게 맡기는 건 모두 아웃소싱이며, 계약 형식이 도급이든 임대든 관계없이 고용형태로 따지면 간접고용에 해당한다”고 짚었다.

간접고용에선 원청이 하청업체를 바꾸는 순간 하청업체 노동자는 졸지에 실직자가 된다. 건국대는 지난 5년간 주차장을 운영하던 아마노코리아와 임대 계약이 올해 끝나자 케이티(KT) 텔레캅과 새 계약을 맺었다. 케이티텔레캅은 다시 주차장 관리 업무를 ‘다래파크텍’이라는 업체에 하청을 줬다. 재하도급이다. 업체가 바뀌자 아마노코리아에 고용돼 일하던 주차관리원 16명과 유도요원 6명, 미화직 1명 등 직원 23명의 고용이 승계되지 않았다. 업체가 바뀌는 과정에서 이씨 같은 간접고용 노동자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아마노코리아도 재계약에 자신이 있다고 하고 ‘아무래도 일하던 사람을 계속 쓰겠지’ 싶어 고용승계가 되리라 믿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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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용자와 고용주가 다른 ‘삼각고용’의 구조에서 간접고용 노동자의 ‘해고’는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사각지대에 놓이기 일쑤다. 이씨는 아마노코리아에서 5년간 일했지만, 2년 이상 일하면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하는 ‘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기간제법)’에 따른 정규직이 되지는 못했다. 이 법이 “사업의 완료 또는 특정한 업무의 완성에 필요한 기간을 정한 경우” 등을 정규직 전환의 예외조항으로 두고 있는데, 사용자들이 이를 악용해서다. 공공노조 서울경인지역공공서비스지부 하해성 조직부장은 “사용자들이 근로계약기간을 원청과 하청의 계약기간까지로 명시하기 때문에 대부분 간접고용 노동자들은 하청업체의 정규직조차 되기 어렵다”며 “10년을 일해도 언제든지 합법적으로 계약이 종료될 수 있기 때문에 늘 불안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새 임대계약을 맺은 케이티텔레캅 관계자는 “무인정산 시스템을 도입하며 인력을 줄일 수밖에 없었고 이 시스템을 다룰 수 있는 사람이 필요했다”고 고용승계 거부 사유를 밝혔다. 그러나 이씨는 이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업체만 바뀌었지 주차 요금 정산이라는 업무가 바뀐 게 아니잖아요. 새로 일을 시작하는 사람보다 오랫동안 일 한 사람이 업무도 능숙한데 하루아침에 왜 일하던 곳에서 쫓겨나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12명 중 2명은 건국대에, 2명은 케이티텔레캅의 다른 사업장에 고용승계하고 나머지는 빈자리가 생기면 그때 고용하겠다는 게 케이티텔레캅 쪽의 태도다. 전원 고용승계를 요구하는 노동자들과는 간극이 넓다.

전에 일하던 회사는 떠나고 새 회사가 외면하는 사이 따져 물을 곳을 잃은 이씨 등은 건국대에서 농성을 시작했다. 업체가 어디였든 그들은 5년 동안 ‘건국대 주차 정산원’이었기 때문이다. 건국대는 원청이 늘 그렇듯 ‘내가 알 바 아니다’는 태도다. 건국대 관계자는 “고용승계를 원래 소속 업체인 아마노코리아가 아닌 학교에 요구하는 것은 상식적으로 맞지 않다”며 “(케이티텔레캅의) 고용 여부도 임대 계약을 맺은 회사의 권한이라 학교가 개입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5년 전 아마노코리아로 바뀔 때 고용승계된 이씨와 달리 당시 새로 입사한 사람들은 1년 단위로 계약을 맺었다. 계약 기간이 끝나지 않아도 회사나 소장 눈 밖에 나면 사표를 요구받았다. “사표 안 써도 되는 건데 ‘내가 잘못했으니까 그만둬야 하나보다’ 해서 사표 쓰고 나갔어요. 수도 없이 그랬죠. 지난해 현장소장이 ‘노조를 만들지 말아달라’고 했을 때 ‘학교와 계약기간 끝날 때까지 한 명도 해고하지 않겠다’는 조건으로 승낙했어요.” 노동권을 포기하면서까지 해고 걱정에 시달리는 동료를 챙기려 한 이씨의 노력은 업체가 바뀌며 물거품이 됐다.

“지금까지 건국대에서 일했고 건국대가 업체를 바꿔 생긴 일이니까 건국대가 책임져달라는 겁니다. 원청과 업체가 조금만 신경 쓰면 고용승계가 가능하잖아요.” 이씨는 1일에도 농성장에서 복직을 꿈꾸며 잠들었다. 45일째 한뎃잠이다.

김민경 기자 salma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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