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오전 9시 해고자 109명 전원복직 등을 요구하며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 옆 대형 전광판에 올라 고공농성에 들어간 임정균(38)씨가 부인한테 편지를 남겼다. 임씨는 이 편지에서 해고자들과 관련해 “이들의 힘든 하루하루와 아픔이 막 전해져와서 하루하루가 너무 아프다”라며 이번 고공농성 돌입에 대한 자신의 마음을 밝혔다. 임씨가 소속된 민주노총 서울본부 희망연대 노조 쪽의 동의를 얻어 편지 전문을 게재한다. 원문에서 일부 오탈자만 고쳤다.
사랑하는 당신에게.
내가 노조에 가입한 지 어느덧 2년이란 시간이 지나고 있는 것 같구나. 처음과는 다르게 조금씩 변해가고 있는 내 모습을 지켜봐줘서 고마워. 많이 힘들었을 텐데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게끔 옆에서 묵묵하게 응원해주고 힘든 일 괴로운 일이 있을 때면 같이 울어주고 즐거워하고 괴로워해주는 당신이 있었기 때문에 힘을 낼 수 있었어. 지금 내가 하려는 것을 말하지 못 한 거 정말 미안해. 나중에 알게 되면 정말 많이 놀라고 힘들 거라는 거 알아. 하지만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이 이것 말고는 없다는 생각에 결정하고 하는 거라 이 못난 남편 이해해줘. 오빤 아직도 강하고 강하잖아.
사실 많이 두렵다. 처음 해보는 거라. 많이 떨리기도 하다. 하지만 ‘해고 대오’들 생각하면 정말 미쳐버릴 것 같아. 미안하고 죄송해서. 그 사람들과 얘기하면서 느낀 건데 회사에 대한 원망보다도 사랑하는 사람한테 배신당한 것 같대. 젊은 시절 회사를 위해서 누구보다 잘 하고 열심히 하려고 노력도 하고 했는데…. 이제는 별로 필요 없어서 버려진 것 같다고 많이들 아파해. 무슨 회사가 이럴까? 어떤 회사 사람들이 이런 생각을 할까? 109명이란 사람들을 해고시켜놓고 5개월 넘게 노숙하는 사람들을 향해 ‘배가 덜고픈 것 같다’고 말하는 회사는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 아, 답답하고 욕이 나온다. 요즘 더욱 더 심해진 것 같아. 해고 대오 사람들과 만나면 내가 죄인이 된 것 같아. 해고 대오 사람들 앞에서 잘 하고 있다고, 여러분 존경한다고 멋지게 얘기하고 희망도 주고싶고 이길 수 있다고 확신도 줘야하는데, 그냥 해고 대오들 앞에 서서 말을 하면 목이 메이고 눈물이 먼저 나. 내가 사랑하는 사람, 가족도 있지만, 어느새 해고 대오들도 내 가족같이 된 것 같아. 이들의 힘든 하루하루와 아픔이 막 전해져와서 하루하루가 너무 아프다. 이런 선택한 나를 이해해줘.
난 따뜻한 방에서 자고 있는데 우리의 해고 동지들이 점점 추워지는 길바닥에서 자고 있다고 생각하니 매일매일 하루가 지옥이다. 아이들 앞에서는 재미 있는 아빠, 좋은 아빠, 당신 옆에서는 든든한 배우자, 회사에서는 일 잘 하는 직원이 돼야만 했는데…. 그런데 내 마음 속 한구석은 계속 망가지고 있었나봐. ‘내가 이렇게 즐겁고 행복해도 되나’라고…. ‘내가 정말 시간이 길어지면서 우리 해고 동지들을 처음처럼 생각 안하고 있는 건가’하는 생각이 들었어. 며칠이 될지 얼마나 있을지 지금은 알 수가 없어. 몸 상하지 않고 건강하게 내려올지 아님 어찌될지도 모르겠다. 술을 먹어도 잠이 안 와.
너와 애들은 옆에서 자고 있는데. 이쁜 우리 똥강아지에게 너무 미안하고 매일 아빠 일찍 들어오라고 말하는 아이들에게 말하면 너무 놀랄 것 같기도 하고 그래서 혼자 결정하게 된 거 다시 한번 미안해. 그냥 애들이 ‘아빠 왜 안 들어오냐’고 하면 좋은 회사 만들기 위해 당분간 못 들어온다고 잘 말해줘. 미안해. 항상 부탁만 해서. 이제껏 나랑 살면서 좋은 거 맛난 거 맘편하게 해주고 싶었는데, 몸도 고생, 마음도 고생만 시킨 못난 남편이라 점점 할 말이 없다.
하지만 말야. 누구보다 너를 사랑하는 거 알지? 그건 그 누구보다 더 잘 할 수 있다. 한번만 더 나를 믿어주고, 내려오게 되면 크게 말해줄게, 사랑해라고….
2014년 11월11일 못난 남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