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가 13일 오후 서울 서초동 대법원에서 2009년 쌍용차 대량해고 사태는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에 따른 것으로 유효하다는 취지의 대법원 판결이 나온 뒤 법정 밖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쌍용차 해고노동자·가족 표정
대법원 판결에 쌍용차 해고 노동자와 가족들 눈물만…
밤잠 설치며 상경 노동자들 법정 맴돌며 바닥만 내려봐
“또 다른 결단을 내릴 시점…우리들을 잊지 말아달라”
대법원 판결에 쌍용차 해고 노동자와 가족들 눈물만…
밤잠 설치며 상경 노동자들 법정 맴돌며 바닥만 내려봐
“또 다른 결단을 내릴 시점…우리들을 잊지 말아달라”
13일 오후 2시20분께,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 10명이 대법원 선고 뒤 법정을 나섰다. ‘해고는 유효하다’는 대법원 판결을 귀로 직접 들은 이들의 입은 굳게 닫혀 있었다. 법정 문 앞을 선뜻 떠나지 못한 채 바닥만 내려다봤다. 건물 밖에서는 인원 제한 때문에 법정에 들어가지 못한 해고자 30여명이 언 손을 비비며 기다리고 있었다.
10여분 뒤, 대법원 건물을 나서는 이들은 울퉁불퉁한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리거나, 동료의 어깨를 두들겼다. 아랫입술을 질끈 깨문 이도 있었다. 차마 패소 취지 판결을 입 밖에 꺼내지 못했다. 법정 밖에서 ‘좋은 소식’을 기다리던 동료들의 얼굴은 패배를 직감하고 금세 굳어졌다.
기자들 앞에서 이창근 쌍용차 노조 정책기획실장이 입을 열었다. “재판부는 쌍용차 노동자들만이 아니라 2000만 노동자에게 비수를 꽂았다.”
대법원 정문에서 연 기자회견에서 이창근 실장은 “기울어질 대로 기울어진 대법원이 노동자의 고통을 쥐어짜는 숙주라는 것을 오늘 확인했다. 대법원의 판결은 대단히 비참했다”고 말했다. 그는 “솔직한 이야기로 6년 동안 싸워보니까, 별별 것을 다하며 싸워 보니, 잘 모르겠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고, 남은 해고자들을 어떻게 보듬어야 할지, 어떻게 위로할지 모르겠다”고 했다. 김득중 쌍용차 노조위원장은 “향후 법률적 대응을 계속할 것이며, 빠른 시일 안에 6년을 함께 싸웠던 동료들과 또다른 결단들을 할 것이다. 끝까지 쌍용차 해고 노동자들을 잊지 말아달라”고 당부했다.
회견이 끝난 뒤 대법원 정문 앞에는 수십장의 종이가 허공에 흩날렸다. ‘김정우’, ‘이창근’, ‘양형근’, ‘김득중’, ‘김정욱’…. 승소가 확정되면 해고자들이 각자 자신의 이름이 쓰인 종이를 들고 기념사진을 찍기로 했지만, 이제는 무용지물이 된 것들이었다. 해고자 김수경씨가 자기 이름이 적힌 종이를 줍더니 양손으로 펴들었다. “이렇게 들고 찍으려고 했는데…”라며 그는 말을 잇지 못했다.
해고자들이 경기 평택시에서 대법원 판결을 참관하려고 관광버스를 빌려 출발한 시각은 이날 낮 12시께였다. 하지만 김씨는 “새벽 3시에 일어났다”고 했다. 그는 “(법정에서) 파기환송이라는 말이 뭔지 몰랐는데, 졌다는 것이더라. 동료들이 절망하는 모습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고 했다. 그는 “대법원 청사 한가운데에 ‘자유’, ‘평등’, ‘정의’라고 적혀 있더라. 그 말을 지키는 대법원이 됐으면 좋겠다”는 말을 남기고 동료들과 함께 버스에 올랐다.
간신히 벼랑을 타고 올라온 사람을 다시 밀어뜨린 것과 같은 판결에 해고자 가족들도 울분을 토했다. 쌍용차 가족대책회의의 권지영 위원장은 “고법이 숙고해 내린 판결에도 불구하고 최고 법원인 대법원이 정리해고를 이렇게 쉽게 판결해도 되나 그런 생각이 든다”고 했다. 그는 “기대를 엄청 했다. 정말 이 나라가 실망스럽다”고 했다. 역시 해고자 아내인 설경애씨의 목소리에도 힘이 풀려 있었다. “속상해요. 어젯밤 잠도 못 자고 설렜는데…. 이젠 우리 가족한테 희망이 없어져버렸어요.”
정환봉 홍용덕 기자 bon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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