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심한 갈등과 안타까운 희생을 낳은 2009년 쌍용자동차 정리해고 사태에 대해 대법원이 사실상 사쪽에 ‘완승’을 안겨주면서 해고자들의 ‘상처’가 아물 기회가 사라졌다. 대법원은 정리해고와 관련해 사쪽을 편드는 판례를 점차 강화해왔고, 이번 판결도 그런 판례들을 무기 삼아 정리해고가 정당하다고 ‘선언’했다.
■ 항소심 판결 전면 부정-“손실액 추정 합리적” 이번 사건의 주요 쟁점인 회계보고서의 ‘유형자산 손상차손 과다계상’에 대해, 항소심인 서울고법 재판부는 회사가 2008년 재무제표를 작성하면서 유형자산 손상차손(손실)을 지나치게 늘려 잡았다고 판단했다. 기존 차종인 액티언, 카이런, 렉스턴은 2009년 또는 2010년 단종을 전제로 예상 매출수량을 추정했지만, 2013년까지 어떤 신차도 출시되지 않는다고 가정해 신차 예상 매출수량은 누락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현재 이런 차종들은 수출용으로 계속 생산되는 등 당시 사쪽 계획대로 되지 않았다. 2011년에는 코란도C를 새로 출시했다.
유형자산 손상차손이란, 기계를 100억원에 샀지만 매출 감소 등으로 기계를 가동해 얻을 수 있는 이익과 처분·잔존가액을 포함한 액수가 50억원에 불과하다면, 50억원의 손상차손이 발생한다는 개념이다. 쌍용차는 이런 방법으로 5176억여원의 손상차손을 산정해 결과적으로 부채비율을 561.3%로 높여 잡았다. 이는 정리해고의 이유인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를 뒷받침하는 유력한 근거였다. 하지만 쌍용차는 이런 예측대로 기존 모델을 단종시키거나 신차 개발을 중단하지 않았다. 이에 노조 쪽에서는 손상차손 수치가 조작됐다는 주장까지 제기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미래에 대한 추정은 불확실성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 합리적이고 객관적인 가정을 기초로 했다면 추정이 다소 보수적으로 이뤄졌더라도 합리성을 인정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쌍용차는 2008년 하반기부터 극심한 유동성 위기를 겪어 신차 출시 여부가 불확실한 상태였고, 단종이 계획됐던 기존 차종의 경쟁력이 약화된 상태였다”고 판단했다.
항소심은 쌍용차가 정리해고 전 무급휴직 등 조처를 하지 않다가 정리해고 이후에야 시행한 점 등을 들어 해고 회피 노력을 다하지 않았다고 봤다. 또 해고자들도 충분히 무급휴직 등의 방식으로 고용을 유지할 수 있었다고 했다. 반면 대법원은 “정리해고에 앞서 부분휴업, 임금동결, 순환휴직, 사내협력업체 인원 축소, 희망퇴직 등의 조처를 실시”한 점을 들어 해고 회피 노력을 다했다고 밝혔다.
■ 보수적 대법원의 ‘해고 자유’ 확대 정리해고를 무효라고 판단한 서울고법 재판부는 “정리해고는 근로자의 잘못이 없는 근로관계 단절이므로 엄격히 해석해야 한다”며 정리해고 규모의 합리성을 회사가 증명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경영 판단의 문제에 속하는 것이므로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경영자의 판단을 존중해야 한다”는 식으로 경영자의 재량을 폭넓게 인정했다.
이번 판결은 최근 수년 사이 정리해고 인정 폭을 점차 확대해온 대법원 판결 경향의 연장선에 있다. 이번 쌍용차 재판부는 지난해 6월에 나온 대법원 1부(주심 박병대 대법관)의 판결을 인용했는데, 당시 재판부는 “기업의 잉여인력 중 적정한 인원이 몇 명인지는 상당한 합리성이 인정되는 한 경영자의 판단을 존중하여야 한다”고 했다.
정리해고는 1998년 근로기준법에 도입될 때도 노동계의 거센 반발을 부른 바 있다. 그나마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나 “해고를 피하기 위한 노력을 다하여야 한다”는 법조문이 노동계를 달래는 ‘카드’로 존재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여러 차례 판례를 통해 이런 두 기준을 느슨하게 해석하면서 ‘해고의 자유’를 확장시켜주는 쪽으로 움직여왔다. 이번 판결을 두고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가 “그동안 대법원이 경영상 해고의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와 관련해, 장래에 올 수 있는 위기에 대처하기 위해 객관적으로 합리성이 있을 경우도 인정된다고 폭넓게 본 것을 재확인한 것”이라며 환영한다는 입장을 내놓은 것이 이번 판결의 의미를 반증하고 있는 셈이다.
심재진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최근 들어 대법원이 ‘긴박한 경영상의 사유’를 완화하고 있는 가운데, 이번 판결로 경영 위기가 있을 때 정리해고 인원 규모를 훨씬 더 늘려도 용인하는 판례가 굳어지고 있다. 갈수록 사용자 쪽에 더 유리하게 선고하고 있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정리해고에 관한 근로기준법 조항을 사실상 무력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 같다”고 했다.
이경미 정환봉 박승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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