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가정관리사협회 수원지부 회원들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안아무개(56)씨는 2011년 ‘가정관리사’로 첫 출근을 한 날 당한 모욕을 잊지 못한다고 했다. ‘고객’은 비싼 외국 가구의 먼지를 제대로 닦지 않았다고 화를 냈다. “같은 사람인데, 인격적으로 대하지 않았어요. 마음이 상했지요.”
드라마 속 ‘가정부’들은 이런 일들을 참고 넘어간다. 하지만 안씨는 그러지 않아도 됐다. 안씨에게 그 집을 연결해준 전국가정관리사협회(전가협)에서는 “그 집에 다시 가지 않아도 좋다”고 했다.
윤현미(49) 전가협 수원지부장은 3일 “직업소개소나 알선업체가 고객의 입장에서 일을 한다면, 우리는 가정관리사들 입장에서 일한다. 부당한 처우가 있으면 협회가 나서서 중재한다”고 했다. 전가협은 2004년 한국여성노동자회가 중년 여성들의 ‘가사서비스 일손 연결’을 위해 설립한 단체다.
가정관리사 600여명이 속한 전국 12개 전가협 지부 운영은 ‘아줌마’ 회원들이 직접 한다. 지부장과 사무장도 회원 중에서 뽑는다. 환갑을 앞둔 ‘컴맹’ 아줌마도 지부장이 됐다. 심옥섭(60)씨는 “컴퓨터 하나는 배울 수 있겠다”는 생각에 지부장을 맡아 2011년부터 4년째 회원들의 버팀목이 되고 있다. 그는 “회원들이 고객들한테서 상처 받을 때, 일을 해야 하는데 몸이 아플 때 어떻게 하면 이 사람들을 보호할 수 있을지를 고민한다. 회원들이 나보다 젊으니 친정엄마 같은 마음으로 대한다”고 했다. 전가협은 고객들에게 불만 사항이 있으면 관리사 개인이 아니라 협회로 연락하라고 안내한다. ‘물건을 훔쳐 갔다’ ‘참기름을 따라 간 것 같다’ 등 근거 없는 불만과 항의로부터 회원을 보호하는 것이 지부 간부들의 몫이다.
각각 50여명이 속해 있는 12개 지부는 하나의 ‘공동체’다. 수원지부는 시 읽기, 등산, 양초 만들기 등 소모임을 운영한다. 지난해에는 각자 매달 5만원씩 2년간 모은 돈으로 타이 여행도 다녀왔다. 윤 지부장은 “시를 읽고 감상을 나누는 소모임을 하는데 처음에는 ‘뭐 이런 걸 하냐’고 했던 분이 요즘에는 더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우리는 단지 일만 하는 게 아니다. 이런 활동을 통해 직업에 대한 자존감도 높아지는 것 같다”고 했다.
10년간 이어진 ‘아줌마들의 연대’는 가정부, 파출부, 식모 등으로 아무렇게나 불리던 직업을 ‘가정관리사’라는 떳떳한 이름으로 바꿔놓았다. 그사이 ‘가정관리사 자격증’도 생겼다.
최근 전가협은 가정관리사의 업무를 ‘노동’으로 인정받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 기본 4시간 노동에 대한 ‘직무분석’을 통해 7가지 기본업무와 고객이 추가 비용을 지급해야 하는 추가업무를 구분한 ‘업무 매뉴얼’을 만들었다. 수원지부는 아예 협동조합 형태로 전환해 회원들에게 4대 보험을 적용한다. 가정관리사들은 근로기준법 적용을 받지 못하는 탓에 일반 노동자들보다 보험료 부담이 크다. 한달에 23만원을 내야 한다. 오전·오후 4시간씩 한달을 꼬박 일해도 160만원을 받는 관리사들에게 큰 부담이지만 ‘노동자’로 인정받고 싶다는 열망이 크다.
윤 지부장은 “‘근로자성’을 인정받는 게 얼마나 좋은지 모른다. 당장 내 수입이 줄어든다는 것보다 산재·고용보험이 적용돼 마음놓고 일할 수 있다는 게 더 중요하다”고 했다.
진명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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